테러와 전쟁 그리고 증오가 지배하는 시대
늘 그랬듯이 중동에서 또 전쟁이 발발했다. 20세기 중반부터 거의 10년마다 중동은 세계를 뒤흔드는 전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전쟁의 여파는 매번 세계의 지형도를 바꿨다. 오일쇼크를 동반한 중동전쟁은 페트로달러 중심의 경제질서를 만들었다. 미국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난 걸프전은 팍스아메리카나의 시작을 알렸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기점으로 세계화 속도는 빨라졌지만 각지에서 분열과 충돌이 발생했다. 중동의 봄은 짧았고 극단주의세력은 혼란을 빌미 삼아 미국의 그늘 아래 세력을 불렸다. IS가 등장하면서 테러는 전 세계로 확산됐다.
갈등이 증가하고 위기가 고조되면서 서로를 감시하고 적대하는 증오는 상식이 됐다. 파시즘이나 다름없는 극우주의는 민족주의의 탈을 쓰고 역병처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난민과 테러가 유럽의 발목을 잡는 동안 동아시아는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극심한 양극화로 인한 사회갈등이 아시아를 새로운 격전지로 만들어버렸다. 장기침체의 공포가 확산되면서 불안은 온 세상을 뒤덮었다. 겁에 질리면 인간은 평정심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극심한 공포와 긴장이 치솟다 보면 끝은 늘 전쟁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전쟁은 늘 더 큰 전쟁과 혼란을 낳는다.
모든 갈등은 대화가 단절되면서 시작된다. 논리와 교리는 이해를 차단하고 차이는 차별의 근거가 된다. 서로의 올바름을 강요하게 되면서 상대방에 대한 인간적인 존중과 배려 모두 사라졌다. 진리로 세상을 자유롭게 만들겠다던 계몽주의는 유럽열강에 의해 제국주의로 변질됐다. 러시아전쟁과 중동전쟁 역시 평화와 정의를 빌미로 내걸었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학살과 살육을 벌였던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세계사에 기록된 비극을 인류는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이번 중동전쟁 역시 늘 그랬듯이 큰 변혁을 촉발하는 방아쇠가 될 것이다.
전쟁의 명분은 없다. 대의라는 포장지로 둘러싼 욕망만이 있을 뿐이다. 2020년대 전쟁의 키워드는 석유나 영토 혹은 자원이 아니다. 증오다. 상대를 같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비인간화가 뿌리 깊이 내재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는 대부분 독일과 소련이 맞붙는 동부전선에서 나왔다. 2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짓말처럼 포화 속에서 삭제당했다. 서부는 같은 유럽인들의 전쟁이었지만 동부는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인종과 사상 간의 전쟁이었다. 파시즘과 코뮤니즘이 격돌하면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전쟁범죄가 자행됐다. 학살의 조건은 다르다는 이유 단 하나뿐이었다. 유럽과 중동에서 종교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류는 그대로다.
증오는 잡초와 같아서 한 번 뿌리내리면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뽑아도 땅 속 깊은 곳에 박힌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첨단기술을 손에 넣게 되면서 혐오의 뿌리는 더 깊어졌다. AI가 만들어내는 알고리즘은 우리를 이해하지 않는다.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본능적으로 끌리는 먹잇감을 던져줄 뿐이다.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혐오는 강력한 동질감을 만들어낸다.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 공감하면서 연대의식이 형성된다. AI는 확증편향을 시대정신으로 만들어버렸다. 지금은 편견이 상식이 되고 차별을 납득하는 시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배계층은 늘 위기를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갈등을 조장하거나 장려한다. 전쟁을 통해 국가 측면의 양적성장을 일궈낸 사례는 수두룩하다. 사피엔스에서 진화를 멈춘 인간은 더 이상 변하지 않으므로 역사는 항상 반복된다. 정치경제적 위기를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인류는 이번에도 전쟁을 선택했다. 세계 각국은 학살과 같은 전쟁범죄를 지양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사람들 내면에 깊이 각인된 혐오와 증오는 세대를 넘어서 시대를 완전히 잠식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휴머니즘이 완벽하게 소멸하는 비극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21세기 AI혁명의 가장 큰 수혜를 입는 분야는 전쟁이다. 드론이나 GPS정밀타격보다도 더 큰 진보를 이룩한 것이 프로파간다다. 생성형 AI와 머신러닝으로 무장한 알고리즘에 의해 미디어는 폭발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됐다. 증오는 온라인 공간에서 생성되자마자 빠르게 소비되고 확산되면서 현실에서 혐오로 이어진다. 코로나 시기에 아시아계를 향한 무차별폭행은 일종의 전조증상이었다. 이제 전쟁은 전쟁터를 벗어나서 의식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사상에서 비롯된 갈등은 비인간화를 낳고 증오범죄를 양산한다. 전쟁터에서 포화가 그치고 협정이 성사되더라도 현실의 분노와 혐오를 막을 수 없다.
증오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첨단기술과 만나면 끔찍한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중동전쟁을 기점으로 세계는 이제까지 본 적 없는 테러의 시대로 돌입하게 될 것이다. IT기술 그중에서도 AI를 활용하여 테러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가능성이 높다. 기술은 늘 상향평준화 된다. 특수합금으로 향상된 방탄복을 만들면 똑같은 소재의 총알이 나오는 법이다. 전통적인 공식에서 벗어난 기상천외한 방식의 테러가 등장할 것이다. 인명피해를 동반하는 폭탄테러보다 바이러스를 소재한 생화학테러가 각광받을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사회인프라의 핵심인 전력망과 통신망을 파괴하는 사보타주도 횡행할 것이다.
전 세계 모두가 사용하는 글로벌 플랫폼이나 앱을 통해서 가담자를 끌어모으고 목표물에 접근할 수 도 있다. 핀테크를 활용해서 결제하고 비트코인을 주고받으면서 자금을 세탁한다. 구직앱이나 중고거래앱으로 물건과 사람을 원하는 대로 구할 수 있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늘 기술의 등장과 함께 찾아왔다. 아프간 전쟁 이후로 자살테러의 시대가 아어지다 IS와 등장과 함께 테러의 영역이 북미와 유럽 밖으로 확장됐다. 그러다 IT기술이 발전하면서 디도스공격과 해킹 같은 온라인테러가 대세가 됐다. 물리적인 영역이라는 한계는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AI는 테러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다. 이제 안전지대는 없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모두 테러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IT 기술의 발전은 인류를 시공간이라는 물리적인 한계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었다. 핸드폰만 있으면 24시간 내내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다. 초연결시대라고 부르는 시대지만 정작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벽을 쌓고 산다. 속도는 좋은 것뿐만 아니라 나쁜 것도 확산시켰다. 이해나 존중보다 분노와 혐오가 더 빨리 퍼진다. 기술을 손에 넣은 극단주의자들은 참지 않는다. 대화할 생각도 없고 소통하려는 의지도 없다. 인간은 서로 엇갈리면 말 대신 칼을 주고받는 동물이다. 이제 인류는 더 이상 마주 보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증오와 우리 손으로 만든 AI에 의해서 우리들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