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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Sep 19. 2024

계란바구니를 들고 서핑하는 사람들

낭만은 버블을 만들고 탐욕은 폭락을 낳는다

 리스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쇼크, 소프트뱅크의 빅테크 콜옵션으로 인한 나스닥 급락, 검은 월요일로 얼룩진 올 8월 5일의 주가폭락까지. 보고 듣고 경험해 봐서 다들 잘 안다. 하지만 이성은 늘 욕망 앞에서 패배한다. 800% 에서 1000% 가까운 랠리를 기록한 엔비디아나 마이크로스트레티지를 보고 개인투자자들은 이를 갈았다. 기회를 놓쳐서 한몫 챙기지 못했다는 FOMO는 리스크를 시원하게 무너뜨렸다.


 기술주는 조정을 거치면서 더 많은 돈을 집어삼키고 있다. 전조와 징조를 알면서도 무시하는 구간에 왔다. 롯데리아가 광고에 AI를 내세우고 침구를 파는 업체까지 인공지능을 운운하는 시기다. 고점이나 꼭짓점은 알 수 없지만 이미 상식선은 오래전에 넘어간 것 같다. 전 세계적인 보안대란을 야기했던 크라우드스트라이크는 IT기술의 한계를 드러냈다. 하락세에 빠져있던 인텔은 별다른 기술적 성과 없이 반도체섹터의 수혜를 받아서 상승했다. 그리고 갑자기 폭락했다. 기술이나 실적이 시장에 왜곡되어 반영되는 날들이 계속됐다.


 전망만 보고 자금이 쏟아져 들어왔고 영업이익이나 매출이 하락곡선을 그려도 신경 쓰지 않았다. AI와 아무 상관없는 기업들이 인공지능을 전면에 들고 나왔다. 유행은 테마를 만든다. 그리고 실적 없는 상승은 늘 이유 없는 급락을 부른다. 돈은 욕망과 허영 그리고 불안을 따라 움직인다. 탐욕을 쫓아 치솟았던 지표들이 일제히 요동치고 있다. 불안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면서 커다란 늪을 만들었다. 시장 전체가 휘청 거릴만한 위험신호는 한 번씩 발목을 잡는다. 검은 월요일로 불리는 8월 5일의 폭락은 시그널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다. 엔비디아마저 한 달간 15,20%씩 급락과 반등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자고 일어나면 차세대 인공지능이 출시될 수도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분쟁이 인접국가 간의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시장은 이유 없이 급등하고 갑자기 급락한다. 예측이나 예상은 늘 빗나간다. 혼란과 평온은 동전의 양면이나 마찬가지다. 역사가 반복되는 동안 격동기와 안정기는 무수하게 반복된다. 예외는 없다. 다만, 여러 사건들로 인해 변수가 늘어나면서 불안감이 빠르게 치솟는 중이다. 극심한 불안은 어리석은 선택으로 이어진다.


 사람의 마음이나 시장의 방향은 모두 탐욕이 결정한다. 둘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뿌리가 같다.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전지대를 찾는다. 균형이 무너지면서 상식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힘의 논리가 대세가 된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는 불변의 진리를 따라 시장이 움직인다. 모든 돈이 미국으로 몰려들었다. 미국 주식시장은 전 세계의 모든 돈을 빨아들였다. 애플,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빅 3의 시가총액을 더하면 1 경이 넘는다. AI열풍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기술주 위주의 상승장은 불안이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미국의 경쟁상대를 자처하던 중국은 경기침체에 직면했고 신흥강자인 인도는 편중된 경제구조의 딜레마에 빠졌다. 유럽은 선진국의 위세를 잃어버렸고 반도체강국인 동아시아는 저성장에 발목을 잡혔다. 다들 고물가, 저성장, 경기침체의 위기 속에서 환율 방어를 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상태다. 중동은 이미 전운에 휩싸였고 이제 남미에 군사적 긴장이 감도는 중이다. 다 아는 악재라도 지속될수록 불안감을 타고 자본은 강대국으로 편중된다. 이러한 불균형이 심해지다 보면 가장 취약한 곳에서 균열이 발생한다. 경험해 봐서 다들 알면서도 매번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강대국 시장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인식은 이제 상식이 됐다. 경제력은 막강한 군사력과 외교력에서 나온다. 불안이 커질수록 돈은 작은 지류를 벗어나 큰 강으로 모여든다. 미국 빅테크와 반도체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이 됐다. 달러패권은 전 세계 통화 시장을 찍어 누르고 압도적인 지위를 또다시 증명해 냈다. 지정학적 위기는 충분히 기술시장에 반영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예측은 눈을 감고 쏜 화살처럼 자주 빗나간다. 재앙은 예상보다 늘 반박자 빠르게 온다. 시장을 떠받치는 기업들이 경기침체에 대응하지 못하면 붕괴가 시작될 것이다.


 버블은 낭만적인 전망에서 나오고 공황은 받쳐주지 못하는 실적에서 비롯된다. 튼튼한 기둥일수록 무너질 때는 도미노처럼 쓰러진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는 상식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여러 국가에 걸쳐 분산되어 있던 글로벌 자본이 이제 한 바구니에 담겼다. 탐욕과 불안으로 맺은 도원결의는 한날한시에 파멸을 맞이할지도 모르겠다. 문화적인 장벽은 여전히 공고하지만 경제적인 국경은 자유무역주의가 도래하면서 희미해졌다. IT기술이 가져온 초연결사회는 시장을 더 촘촘하게 엮어놨다. 미국 부동산이 무너졌을 때나 유로존의 부채가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 시장은 비명을 질렀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을 것이다. 탐욕과 불안은 번갈아 유행하면서 사람들을 부추긴다. 이상한 움직임들이 눈에 들어온다. 미국이 오를 만큼 올랐다면서 국내 대형주를 향한 개미들의 매수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영원한 국민주 삼성전자는 이제 종교나 마찬가지다. 리스크를 안고 큰 수익을 노리는 이들은 바닥에 눌어붙어있던 배당주를 사들였다. 상승폭이 적었던 회사들마저 돌아가며 급등했다. 코로나 이후로 생선처럼 토막 난 해묵은 소형주까지 갑자기 튀어 올랐다. 장기적으로 주가나 지가는 대부분 우상향 한다. 지금 거품 논란을 빚어내는 AI는 분명 몇 년 안에 전례 없는 기술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그전에 한 번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다들 위험하다는 것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다. 영원한 상승이 없다는 것도 겪어봐서 안다. 하지만 인간에게 제일 힘든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다. 돈을 그대로 두면 안 된다는 fomo에서 나온 불안감과 전쟁이나 경기침체를 대비하려는 불안감이 시장의 물줄기를 움직이고 있다. 미국으로 나스닥으로 기술주로 온 세상의 돈이 몰려들었다. 불안 이면의 민낯은 욕망이다. 첫차를 놓친 이상 막차만 아니면 그만이다. 올라타서 이익을 볼 수 만 있다면 상관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러나 시작이 어디든 탐욕의 종착역은 늘 파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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