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EARL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민 Oct 08. 2024

조커:폴리 아되, 실패한 농담

 조커 폴리 아되를 보는 동안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서스펜스와 극적인 무드가 가미된 피카레스크 물을 보는 기분이었는데 끝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대비와 강조를 잘 활용했지만 매끄럽고 유기적인 서사가 전작보다 부족했다. 복선과 반전 그리고 결말을 해석한 글을 따로 찾아 읽어야만 하는 소설 같은 영화였다. 전반적으로 불친절하다는 인상이 강했다. 전작이 조커의 기원을 다뤘던 만큼 대중은 후속작에 대한 기대치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감독은 기대와 상반된 해석을 내놓았다. 누군가는 박수를 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야유를 보낼 것 같다. 사람들의 기대감을 부수는 것을 혁신이라고 불러야 할까?


 영화는 대중예술이다. 거대한 팬덤과 고유한 서사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면 대중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 존중이나 배려가 없는 예술적 표현은 궤변에 가까운 결과물을 낳기 마련이다. 잘 알려진 캐릭터일수록 관객들은 고유한 서사에 대한 기대가 크다. 다양한 미디어믹스를 통해서 형성된 캐릭터의 성격이나 인상이 곧 스토리가 된다. 스테레오타입을 부수는 결단은 평단의 찬사를 받을 수 도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허탈감과 배신감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차라리 조커가 아니라 독립적인 캐릭터와 스토리를 가진 단독영화였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예술영화라는 수식어 정도는 붙여줄 수 있었을 것 같다.


 거대 배급사와 글로벌 제작사가 참여한 철저한 상업영화가 예술영화를 지향하면 이런 결과물이 나온다. 영화를 보는 내내 조커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서사를 도외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암시한 복선을 결말에서 회수했지만 깔끔하지 않았다. 클리셰를 부수려는 집요한 아집이 연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눈높이를 과도하게 높게 설정한 영화들에 붙는 예술영화라는 꼬리표는 더 이상 붙여주면 안 될 것 같다. 행간 사이에 생략된 내용이 너무 많은 소설을 읽다 보면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영화적 기법들을 잘 활용했지만 매력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실패한 농담일수록 설명이 길다.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농담은 애초에 농담이 아니다. 감독입장에서는 충분했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대중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불친절한 메타포가 너무 많았다. 감정이입이 되려면 주인공의 감정이나 상황을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행동이나 사고방식 어느 쪽에도 공감하기 힘들었다. 뮤지컬 형식은 진부하다 못해 실망스러웠다.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이나 조커라는 캐릭터의 매력에 기대려는 얄팍한 계산처럼 보였다. 실망스러운 영화일수록 머릿속에 느낌표보다 물음표가 많이 떠오른다. 폴리아 되는 쉼표나 마침표 없이 물음표만 가득한 문장을 읽는 기분이 드는 영화다.


 광기의 전이를 통해서 그늘 아래 숨은 더 큰 광기가 등장한다는 결말은 정말 실망스러웠다. 대중이 기대하는 조커라는 캐릭터의 서사를 철저하게 무너뜨린 이상 제대로 된 대안을 꺼냈어야 했다. 정작 마지막에는 모두가 아는 스테레오 타입의 조커를 등장시켰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두 편에 걸쳐 착실하게 쌓은 조커의 이야기를 클리셰 부수기로 급하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모두가 다 아는 클리셰에 가까운 조커를 꺼내놓고 도망쳤다. 클리셰를 기대하는 관객들을 힐난하면서 정작 감독은 클리셰를 던져주는 결말을 내놨다. 사람들을 가르치려 드는 현학적인 이야기일수록 정작 알맹이는 없다.


 농담은 적어도 염치가 있다. 상황이나 분위기를 보고 친다. 그러나 궤변은 눈치도 염치도 없다. 존중이나 배려도 없고 친절한 설명이나 해명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영화적 표현을 빌려서 관객을 가르치려는 노골적인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서 플렉이 리 퀸젤에게 노래는 그만두고 말 좀 하라고 할 때 똑같은 심정이었다. 앞세운 어쭙잖은 뮤지컬을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다. 입을 틀어막으려는 아서플렉의 행동만 유일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농담 같지 않은 지루한 궤변을 듣고 나면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화면이 페이드아웃 되기 시작하자마자 관객들이 일제히 빠져나갔다. 앉아서 엔딩크레디트를 보는 사람은 없었다. 화려하게 시작해서 초라하게 끝난 무대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캠핑에서 서핑 그리고 이제는 러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