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인구가 크게 늘었다. 자주 달리는 안양천변은 저녁만 되면 사람들이 줄지어 달린다. 한강 주변이나 서울숲, 석촌호수는 아예 러닝크루들이 코스를 공유하는 모양이다. 돌아다니다 보면 비슷한 행색을 하고 여기저기서 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러너들의 나이대가 낮아졌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중장년층이 많았는데 지금은 2,30대가 훨씬 더 많다. 혼자서 달리든 같이 달리는 땀 흘리는 즐거움은 큰 행복감을 선사한다. 다만, 아웃도어 라이프는 생각보다 유행에 민감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러닝은 지금이 고점이다.
인기는 늘 제철음식처럼 계절이 지나면 갑자기 사라진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수요와 공급이 빚어내는 흥망성쇠가 존재한다. 유행의 시작은 등산이었다. 코로나 시기 헬스장을 비롯한 실내체육시설 이용이 제한되면서 등산인구가 폭증했다. 중년의 전유물로 통했던 등산동호회 나이대가 20대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유행이 지나면서 차츰 열기가 식었다. 요새 산에 가면 다시 연령대가 많이 올라갔다는 것을 실감한다. 등산 다음타자는 서핑이었다. 서핑보드를 모래사장에 꽂은 채 찍은 인증샷이 인스타에서 크게 유행했다. 양양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물가뿐만 아니라 땅값까지 폭등했다.
비슷한 시기에 골프열풍까지 불었다. 부장님들이나 치는 접대골프는 옛말이 됐다. 동네마다 스크린골프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더니 방송가에서 골프예능까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골프는 접근성이 낮은 편에 속했다. 레슨이나 장비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필드에 아무나 나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유행에 합류하려고 무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을 즐기는 욜로와 한 방을 외치는 파이어족이 대세였던 시기라 문제 되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면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시장의 영향이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배꼽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던 세상이었다.
미니멀리즘과 ESG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흐름은 달라졌다. 자연을 즐기면서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캠핑이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정작 캠핑은 유지비가 제일 많이 드는 야외활동의 정점을 찍었다. 여유로운 삶의 이미지는 다 지갑에서 나온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텐트나 테이블세트는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인기 있는 브랜드는 아예 웃돈을 주고 거래했다. 큰 맘먹고 외제차 값에 버금가는 캠핑카를 장만하는 가구가 늘었다. 자동차 회사들은 신차를 출시하면서 차박에 특화된 성능을 강조했다. SNS는 캠퍼들의 아웃도어라이프로 가득했다. 그러나 호황은 가고 불황이 찾아왔다.
지갑이 얇아지면서 여가생활에 쓸만한 경제적인 여력이 급감했다. 캠핑용품을 처분하는 판매자들이 당근마켓에 수두룩했다. 캠핑카는 중고차시장에서 고등어처럼 시세가 토막 난 채 나뒹굴었다. 결말은 모두 똑같다. 값비싼 골프용품부터 서핑보드와 등산화까지 모두 중고시장으로 밀려들어왔다. 유행은 구매로 시작해서 처분과 함께 끝난다. 호황기는 유지비용이 많이 드는 골프나 캠핑에 대한 수요가 높다. 활동량은 적고 땀을 덜 흘리면서 상대적으로 정적인 느낌이 든다. 불경기는 반대다. 몸으로 직접 뛰면서 땀을 잔뜩 흘리는 스포츠에 대한 수요가 상승한다. 불안한 시기에 믿을 것은 강한 체력 밖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러닝은 돈이 거의 안 든다. 유리지갑이나 다름없는 빠듯한 생활 속에서 지출은 줄일수록 이롭다. 그래서 불황이라 러닝이 더 인기를 끄는 것 같다. 건강한 두 다리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다. 러너스하이는 건강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캠핑이나 골프보다 더 직관적인 행복이다. 물론 러닝도 유행을 탄 이상 조만간 인기가 시들해질 것이다.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원래 유행은 계절과 같다. 지나가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계속 이어진다. 한국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어쩌면 에어로빅이나 태보가 부활할 수도 있다. 원래 유행은 별다른 이유 없이 돌아온다. 한강에서 사람들이 태보하는 모습을 보게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