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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Sep 18. 2024

추석답지 않은 추석

 점심 무렵의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추석 연후 당일이었지만 평일이나 다름없는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한산할 줄 알고 느긋하게 나왔는데 조금만 늦었으면 발길을 돌려야 할 뻔했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들은 연휴 내내 영업 중이다. 버거킹이나 맥도널드 같은 대형프랜차이즈는 명절 한정 쿠폰까지 발행했다.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받아서 자리에 겨우 앉았다. 몇 분 사이에 만석이 됐다. 낮기온은 31도를 넘겼다. 내리쬐는 땡볕을 피해 매장을 찾는 손님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올 추석은 추석 다운 느낌이 하나도 없었다.


 9월 중순을 넘겼지만 연휴 내내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렸다. 집요한 여름은 미련을 놓지 못하고 아직까지 사람들을 괴롭히는 중이다. 추석 같지 않은 추석이다. 날씨와 분위기 모두 9월 하면 떠오르는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어르신들은 명절이 되면 더 이상 옛날 같지 않다는 말을 인사처럼 주고받는다. 시대는 변했다. 명절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옛말이 됐다. 가족 간의 정을 나누는 따뜻한 명절문화를 더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명절은 휴일이다. 편하게 쉬거나 여행 가기 좋은 날이다. 고속도로 위의 차량행렬보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줄이 더 길다.


 많은 것들이 변했다. 달라졌다고 쓰려다 변했다는 표현을 골랐다. 변화는 자발적이다. 많은 사람들의 선택이 모여서 명절을 변화시켰다. 명절은 과거보다 간소화되고 훨씬 간편해졌다. 정성을 담은 선물보다 상품권이 더 낫다. 만나서 얼굴을 보는 것보다 카카오선물하기가 훨씬 편하다. 여전히 홍삼은 명절선물 부동의 원픽이지만 모바일쿠폰으로 대신할 수 있다. 온정을 주고받는 방법은 스마트해졌다. 손가락 몇 번만 움직여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시대다. 동일한 결과물이라면 손이 덜 가는 과정이 더 합리적이다. 저마다 사정이 있고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삶이 팍팍하므로 변화를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화장이 늘면서 벌초나 성묘는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제사를 지내는 가구 수 역시 점점 감소하는 추세다. 지방을 떠나 도시에 자리 잡았던 세대가 노년층이 되면서 시골이라는 단어의 정의도 변했다. 수도권 인구가 25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전통적인 의미의 시골은 사라졌다. 조부모를 보러 고속도로 대신에 올림픽대로나 강변북로를 타는 가족들이 흔해졌다. 고속도로 위 길게 늘어선 귀성행렬도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변화가 이어지다 보면 경향이 된다. 그리고 경향이 지속되면서 마침내 문화가 형성된다. 2020년대는 과거와 확실히 다른 명절문화가 만들어졌다.


 예전에 비해 조금 삭막해졌다는 느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변화는 사람들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문화와 문제는 사실 한 끗 차이다. 초고령화, 수도권과밀화와 지방소멸,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까지. 모두 현재진행형인 문제들이자 한국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회문화적 현상이다. 삶의 형태가 변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문화도 함께 변했다. 인구문제는 사회구조에 직접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파급력만 놓고 본다면 경제보다 더 크다고 볼 수도 있다.


 피할 수 없는 현실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적응하거나 받아들이는 것 말고 대안은 없다. 거부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힘없는 사람들은 사라진 권리 대신에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낸다. 저항할 수 없는 현실을 향해 소극적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달라진 명절을 두고 설왕설래를 벌인다. 다툼과 갈등은 언제나 다른 것을 두고 틀렸다고 반응할 때 발생한다. 잔소리나 한마디나 다 부질없는 짓이다. 태어난 시대가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앞으로 살아갈 배경마저 다르다. 인정하거나 진정하고 그저 내 갈 길 가면 된다. 속으로 생각만 하고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제 다들 동네 떡집이나 마트에서 파는 송편을 사다 먹는다. 앱으로 주문하면 전이나 명절음식을 배달로 받을 수 있다.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 친척들끼리 둘러앉아 다 같이 송편을 빚었던 시절이 아주 멀게 느껴진다. 큰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어귀부터 진동하던 고소한 기름냄새. 산적을 먹을 때면 맛살과 햄만 골라먹고 꼭 대파를 남겼다. 소고기로 만든 동그랑땡을 한가득 싸주던 고모와 이모들. 사촌들과 솔잎을 따러 뒷산에 올라갔던 기억은 추억이 됐다. 집안 어른들로부터 경단 만드는 방법을 배웠는데 누군가에게 알려줄 일이 있을까? 그리운 냄새 가득한 시절을 떠올리면서 추석을 조용히 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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