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차는 계급이자 신분이다
선진국은 대부분 공고한 계급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지배계층인 엘리트계급이 존재하고 신분제나 다름없는 격차가 사회 곳곳에 또렷하게 존재한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던 하루키가 쓴 에세이에는 미국지식계급과 노동자계급의 격차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교수들이 모이는 홈파티에 버드와이저를 사갔더니 다들 웃었다. 파티의 호스트는 하루키에게 ‘우리들은 하이네켄을 주로 마신다.’ 고 귀띔해 줬다. 계급이 다르면 먹고 마시고 누리는 사소한 것들마저 차별화된다. 예외는 없다.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벽을 치고 계급을 구별하고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행위는 인간의 본성이다.
경제규모가 늘면서 빈부격차는 비교불가능한 수준으로 벌어졌다. 어느 나라나 극소수의 핵심지배계층이 사회를 장악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좌장이자 중심인 미국은 WASP와 유대인이 정치경제를 지배한다. 의회민주주의가 태동한 영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신분제가 공고한 국가다. 계급에 따라 쓰는 언어가 다르다. 작위와 영지가 존재하고 정치적인 직위와 함께 세습된다. 시민혁명의 발상지인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와 거리가 제일 먼 나라다. 에콜 폴리테크닉이나 ENA, 고등사범학교 같은 그랑제콜 출신의 엘리트들이 사회를 완전히 장악했다. 프랑스는 학연이 만든 거대한 카르텔로 돌아가는 집단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계급사회는 유럽과 영미권에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자유와 평등을 숭상하는 서양문화는 허상에 불과하다. 이상할 정도로 한국은 유럽에 대한 환상이 강하다. 복지천국이자 문화강국이었던 유럽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유럽시민사회는 엘리트지배계급을 제외한 평균적인 삶의 형태를 전시하는 프로파간다일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평등이나 복지는 피라미드로 구성된 체제를 유지하려는 목적성이 강하다. 절대다수의 국민이 아니라 상류층의 안정적인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마저도 생산성저하와 경쟁력약화로 사실상 망가졌다.
아시아라고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은 정치를 세습한다. 전후 신헌법이 나오면서 왕족의 영향력도 줄고 화족도 사라졌지만 권력세습은 그대로다. 유력가문과 정치명문가 사이의 혼맥으로 엮이는 정경유착도 여전하다.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연고주의의 영향력은 사회가 발전할수록 더 강해졌다. 지배권력을 얻는 학연과 지연은 모두 서울 강남에서 비롯된다. 거주지역과 생활수준이 다르면 살면서 마주 칠일이 거의 없다. 똑같은 한국인이지만 공감대나 접점이 없는 전혀 다른 삶을 산다. 서울과 지방을 비교할 필요도 없다. 아파트와 빌라촌만 놓고 봐도 신분제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국식 계급사회는 한 가지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피지배계층 내부의 비교와 대립이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어 있다. 서민들끼리 등급을 나누고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의 수준을 평가하고 동시에 평가받는다. 지배계층은 인적물적인프라를 대물림받는다. 그러므로 생애주기 내내 상류층에 속해있다. 쉽게 말하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항상 부자다. 위세를 드러내고 과시할 필요가 없다. 주변 사람들 모두 상류층이므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서민층은 다르다. 작은 차이일수록 눈에 더 잘 들어오는 법이다.
지배층과 피지배층간의 간극이 너무 크게 벌어지면서 더 이상 의미를 두지 않는다. 50억 넘는 아파트 거래건수는 1년 새 60% 넘게 증가했다. 100억이 넘는 전세가를 자랑하는 빌라가 매매되는 세상이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전년도보다 무려 35조 원 이상 상승했다. 부동산은 고용, 수출과 같은 부가가치 창출이 전무한 자산시장이다. 그래서 계급 간의 자산격차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지표다.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이들에게 나타낼 수 있는 반응은 부러움과 부끄러움뿐이다. 터무니없는 격차 앞에서 인간은 탈력감을 느끼면서 현실감각을 상실한다. 그래서 고만고만한 주변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국민 90% 를 차지하는 피지배계층의 비교와 평가는 생활이 됐다.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고 남을 기준으로 본인의 삶을 판별한다. 남보다 못하면 절망감을 느끼고 남을 밟고 올라서면서 우월감을 확인한다. 고만고만한 사람들끼리 얼마차이 나지도 않는 숫자로 서로를 찍어 누르면서 자존감을 채운다. 그러나 등급을 매겨서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줄 세우기는 맨 앞에 선 1등을 제외한 모두를 패배자로 만든다. 알량한 승리를 통해 얻은 뒤틀린 성취감은 서열 앞에서 모멸감으로 돌변한다. 격차에서 비롯된 울분을 해소하려고 서열이 낮은 이들을 하대하고 조롱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왜 한국 사회에 갑질이 만연해있는지 알 수 있다.
계급이 만든 신분은 이미 사회적인 질서로 당당하게 통용되고 있다. 거주지인 아파트만 달라져도 사람들은 우월감을 느낀다. 우습지만 사실이다. 평범한 수도권 베드타운에 위치한 아파트단지에서 입주민들끼리 서로 급을 나눈다는 이야기를 숱하게 듣는다. 아파트 가격으로 인생의 등급을 매기는 모습은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비교를 통해 삶의 만족감을 느끼는 왜곡된 의식이 사회전반에 팽배하다. 사람들 간의 온정이나 휴머니즘이 사라진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다. 비슷한 계층 안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더 심해졌다. 경쟁은 갈수록 더 심화되고 협력은 찾아볼 수 없다.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연대하는 시민사회는 이미 자취를 감췄다. 서로를 평가하고 비교하면서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완전히 찢어졌다. 남은 것은 증오와 혐오뿐이다
공동체의식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고도성장기에 뿌리내렸던 배금주의는 세대가 지나면서 신분제로 자리 잡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강약약강의 자세로 타인을 대한다. 집단 속에 있다 보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므로 죄의식이나 죄책감은 없다. 개선의지나 개혁은 공허한 외침으로 끝날뿐이다. 선진국은 대부분 계급사회다.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경계선이 뚜렷하게 눈에 보인다. 다들 지배계층이 먹고 마시고 누리는 것들을 곁눈질하면서 부러워한다. 재벌총수가 쓰는 립글로스가 품절되는 것만 봐도 우리 사회의 본모습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보면서 나는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크게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