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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Oct 23. 2024

결핍을 노리는 사냥꾼

사기꾼과 사이비가 한국에 많은 이유

 속는 자는 울고 속이는 자는 웃는다. 사기와 사이비는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승자독식 구조를 가지고 있다. 피라미드 정점에 서있는 자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아래 위치한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것을 전부 다 잃게 된다. 돈과 시간을 헌납하고 열정과 노동을 봉사라는 이름으로 착취당한다. 그릇된 신념을 추종하다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 경우도 많다. 뒤늦게 현실을 자각하고 일상으로 돌아와도 상실감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시작이 좋아도 끝은 파국이다. 잠깐 얻고 결국 다 잃는 비극적인 결말이 사기와 사이비의 본질이다.


 사기꾼은 오래전부터 음지를 벗어나서 양지로 나왔다. 그럴듯한 아이템을 들고 강연을 다니고 투자설명회를 개최하면서 비즈니스라고 홍보한다. 번듯한 사무실을 차려놓고 유명인들을 앞세워서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다. 피해규모는 매년 증가한다. 은퇴자금과 평생 모은 예금이 휴지조각이 되는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사회구조적인 변화양상에 맞춰 사기 수법은 최적화되고 있다. 몰라서 속는 게 아니다. 누구나 속을 수밖에 없는 맞춤화된 수법에 당한다. 불황에는 투자라는 이름으로 활개치고 호황에는 투기를 빌미 삼아 돈을 쓸어 담는다. 사기는 불황이 없다. 피해자만 있다면 언제나 호황이다.


 사이비도 사기와 함께 진화했다. 연령대와 계층을 분석해서 사냥감을 전략적으로 물색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불법적인 수단을 활용하고 주변 사람들까지 포섭한다. 형이상학적인 진리를 말하지만 사이비는 이재에 밝다. 포교와 확장이라는 대의를 운운하지만 결국 경제적인 착취를 최우선으로 삼는다. 세력이 불고 위세가 강해질수록 신자들의 주머니는 가벼워지고 내면은 더 공허해진다. 수뇌부가 누리는 영광은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다. 낙수효과는 없다. 진리를 얻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삶을 전부 다 잃은 것뿐이다.


 사기꾼과 사이비는 사냥꾼이다. 사냥성공률이 높은 사냥감을 본능적으로 알아본다. 걱정과 불안이 잘 드러나는 이들을 먹잇감으로 삼는다. 경제적으로 곤궁하거나 사람에게 실망하고 상처 입거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로 낙심할 때 그들이 찾아온다. 삶에 대한 건전한 상승욕구나 성장욕구를 악용하기도 한다. 여유로운 환경에 자라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자극제를 먹이로 던져주면서 유혹한다. 생애주기적 위기로 고민하는 이들의 외로움을 파고들고 다양한 결핍을 파악해서 세뇌한다.


 대체 사람들은 왜 속아 넘어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제는 가해자에게 있다. 속인 놈이 나쁜 놈이다. 피해자를 힐난하고 비난하는 세태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악습이다. 가장 큰 오해는 아무 의심 없이 믿어서 피해를 당한다고 여기는 점이다. 그러나 사기나 사이비는 신뢰를 기반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불안을 자극하고 걱정을 부추기는 것이 핵심이다. 극복하기 어려운 시련 앞에서 인간은 의지할 대상을 찾는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한국은 사기와 사이비가 자생하기 좋은 환경이다. 세계 최고라고 봐도 무방하다.


 전 세계 1위에 빛나는 자살률은 한국사회의 생존난이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현실을 반증한다. 남들 따라 가느라 힘들고 남들만큼 살려고 발버둥 치느라 내면은 여유가 없다. 밀려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는 동안 걱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사회는 다양한 해답이 아니라 획일화된 정답을 강요한다. 경로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면 피로와 불안감이 누적된다. 차이가 차별의 근거가 되므로 함부로 도전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기 힘들다. 나이 들수록 외롭고 살아갈수록 괴롭다. 그때 기회로 포장한 사기나 진리를 가장한 사이비의 유혹이 찾아온다.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이상하다고 의심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이 움직인다. 지적능력이나 교육 수준보다 심리적인 상황이 사람의 판단력을 좌우한다. 걱정과 불안은 심리적인 고립 상황에 극대화된다. 범죄를 예방하는 사회안전망은 개선됐지만 대인관계 같은 정서적 안전망은 취약해졌다. 다들 겉으로 괜찮은 척하면서 속으로 끙끙 앓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못하고 담아둔 응어리는 바윗덩어리처럼 무겁게 내면을 짓누른다. 그 순간 건네는 따뜻한 손길을 진짜라고 믿고 싶어 진다. 절박한 사람에게는 마치 위로나 구원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개인화된 생활환경은 사회적 고립을 다양하게 분화시켰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잘 지내도 외로움을 쉽게 느끼는 시대다. 나이를 막론하고 1인가구는 정서적인 고립에 빠지기 쉽다. 온라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파편화된 대인관계가 늘었다. 위기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나를 붙잡아줄 만한 사람이 없다. 선을 넘기 전에 말릴 사람이 없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증가할수록 사기꾼과 사이비의 영향력도 상승한다. 관심을 주고 환심을 사면서 구축한 정서적인 친밀감을 무기 삼아 접근한다. 그들은 오늘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면서 사냥감을 찾는 중이다.


 생애주기 내내 비교하고 경쟁하면서 눈치 보는 사회적인 분위기는 한국 고유의 사회적인 병폐다. 시대가 변해도 사라지지 않았고 세대에 걸쳐 대물림 됐다. 사기와 사이비는 사회구조적인 질병이자 대한민국의 또 다른 얼굴이다.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피해는 늘어나고 비극은 계속해서 양산될 것이다. 세대와 시대를 초월하는 경향은 숙명으로 바꿔 불러도 무방하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평생 동안 사기와 사이비를 경계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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