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에 빛나는 자살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이 압도적으로 세계 1위의 권좌를 지키고 있는 영역이 있다. 바로 ‘자살률’이다. 2023년 기준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자수 27.3명을 기록했다. 2위인 리투아니아의 17명보다 60% 나 많다.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면 격차는 200% 이상 벌어진다. 자살률이 20명대인 국가는 지구상에 한국이 유일하다. 27명은 OECD 평균인 11명보다 무려 2.5배나 높은 수치다. 미래세대인 1,20대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10대 사망자의 46.1%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0대에서는 52.7% 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가 나왔다.
경제활동인구의 주축이자 세대 간 가교 역할을 하는 30대의 사망원인 1위 역시 자살이었다. 자살률은 모든 세대에 걸쳐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계속해서 우상향 했다. 일시적으로 잠시 주춤한 적은 있어도 장기적으로 보면 상승세가 꺾인 적은 없었다. 자살은 한국인의 사망원인 5위를 차지했다. 4대 원인으로 불리는 암, 심장질환, 폐렴, 뇌혈관질환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쯤 되면 자살을 질병으로 분류해서 국가차원에서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 일부의 문제로 치부할만한 수준이 아니다. 90년대부터 높은 자살률은 사회문제였지만 철저하게 방치됐다.
정권이 여러 번 바뀌고 인권에 관한 인식이 개선된다고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자살에 관해서 무감각하다. 사망원인 5위라는 수치는 사실 피부에 와닿지 않을 만큼 비현실적이다. 한국은 대표적인 성인병인 당뇨나 고혈압보다 자살로 죽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나라다. 하지만 국가와 국민들 모두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자살에 관한 정서적 민감도가 기이할 정도로 낮다. 세상을 떠난 고인의 사인이 자살이라는 사실을 들으면 납득하게 된다. 물음표 대신에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이유를 가늠해 보게 된다. 그만큼 자살이 현실에 가까이 들어와 있다는 의미다.
전 세계 평균보다 2.5배 가까이 높은 자살률은 사회문제로 치부할만한 수준을 넘어섰다. 한반도라는 지역성과 한국 사회의 고유성을 기반으로 보면 엔데믹이나 다름없다. 기묘할 정도로 높은 한국의 자살률은 지역적인 풍토병으로 봐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려면 역학조사가 필수다. 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나라가 된 것일까? 사람들을 자살로 몰아넣는 뚜렷한 특이점이 존재하는 것일까? 사실 한국인들끼리는 서로 알아차리기 힘들다. 위험신호를 감지하고 자각증상을 느껴도 다 그렇게 사니까 그냥 넘어간다. 그렇게 다들 무뎌지고 모르는 사이에 위험군이 된다.
한국은 경제사회적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성과제일주의와 무한경쟁이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남을 밟고 올라서라는 주입식 교육이 반세기 넘게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경쟁을 통해 서열화하는 문화가 상식으로 통용되는 나라에서 관용이나 다양성은 존재할 수 없다. 각자가 선택한 삶의 해답을 존중하지 않는다. 오로지 모범답안만이 정답으로 대우받는다. 사회가 인정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는 자는 이등시민으로 취급당한다. 협력이나 상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의 삶에 등급을 매기고 낙인을 찍는 문화는 갈등과 혐오를 낳았다.
생애주기 내내 비교하고 평가당하고 눈치 보면서 내면이 망가진다. 문제를 이야기하면 엄살로 치부하고 개인의 책임이라고 일축했다. 근성이나 정신력을 운운하고 다들 힘들다면서 위로를 가장한 비난을 남발했다. 자살률이 세계최상위권을 기록하는 동안 국가는 경제성장률을 자화자찬하기 바빴다. 사람들은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고 믿었다. 오로지 잘 사는 것만 추구하면서 앞만 보고 달렸다. 과업중심의 삶은 결과만 평가한다. 그러나 인생의 99%는 과정이다. 과정에서 즐거움과 의미를 찾지 못하는 ‘한국식 가치관’은 필연적으로 탈력감과 우울감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경쟁에서 이기면 매번 또 다른 경쟁에 직면한다. 학벌은 직업으로 소득은 결혼과 출산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과업을 수행해야만 산다.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동안 엔진에 과부하가 걸리지만 터놓고 말할 곳이 없다. 모범적인 삶을 살던 중년의 가장들이 가정을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년층과 노년층의 자살률은 매년 증가했다. 대안이나 다양성이 없는 경쟁의 압박감은 어린아이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모범답안이 아니면 사람 취급받지 못하는 문화.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없다면 부끄러워하는 문화. 결국 한국은 모든 연령대에서 자살이 주요 사망원인으로 꼽히는 세계 유일의 자살선진국이 됐다.
압도적인 세계 1위의 자살률은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결과물이다. 소수의 문제나 일부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는 수치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자살과 관련된 원인이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려고 한다. 선진국 대비 3배 수준의 비현실적인 자살률은 사회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자살의 발생배경과 환경을 고려하는 방식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지금 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2010년대 한국의 출산율은 1.23명이었다. 낮은 출산율을 뚫고 태어난 아이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나라. 입시경쟁에서 살아남아 성인이 된 이들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인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매년 세상을 떠나는 아이들의 수는 평범한 고등학교 전교생 수보다 몇 배나 많다. 학교가 몇 개씩 통째로 사라지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급감을 걱정하면서 정작 아이들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자살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 집단의 붕괴를 촉발하는 사회적 재난이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람이 살아가면서 형성할 수많은 인간관계의 소멸을 의미한다. 한국은 벌써 수십 년간 미래세대의 성장동력을 지속적으로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자살은 국가적 차원의 손실이다. 자살이 불러오는 부정적인 영향도 문제다. 유가족이나 가까운 이들은 PTSD와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떠나는 쪽이나 남은 쪽이나 모두 고통을 경험하는 것이다.
세계 1위의 자살선진국이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없다. 국가차원에서 자살방지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구축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상담 및 정신보건 인력을 국가가 양성하고 종사자들의 전문성을 향상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사회적 차원의 의식개선 작업도 병행되어야만 한다.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병원의 문턱은 아직 높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이나 상담기관이 많아졌지만 찾아가지 않는다. 정신병이라는 말을 쓰면서 금기시하고 낙인을 찍는 인식이 아직 남아있다. 사회적 차원의 대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자살은 더 큰 비극을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여전히 침묵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