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이 일상화된 사회의 민낯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좋은 일은 금세 잊고 나쁜 일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고통을 통해서 얻은 교훈에도 유통기한이 존재한다.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봉쇄가 끝난 지 2년이 지났다. 그동안 세상은 빠르게 변화했고 기억은 어느새 추억이 됐다. 모든 것들이 다 정상화됐다고 안심할 때 늘 위기가 찾아온다.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코로나블루’는 지금 생각해 보면 트리거이자 시그널이었다.
코로나가 끝나고 중독이 사람들의 일상을 파고들어 왔다. 한 챕터가 끝나면 새로운 챕터가 열린다. 끝은 늘 새로운 시작이다. 우리 사회는 중독과 전면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중독에 관한 초기대응에 완전히 실패했다. 중독을 경계하는 위기의식이 거의 전무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만들어주는 물질에 대한 거부감 자체가 없었다. 마약이 아니다. 술을 말하는 것이다. 술을 해야 사회생활이 가능하고 술 좀 해야 대인관계에 능하고 술이 들어가야 대화가 통하고 술이 있어야 즐겁다고 말하는 나라. 한국은 그런 나라다. 약물중독에 관해 너그러운 문화가 당연한 상식으로 통했다.
대한민국의 위암과 간암 발병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술이 주는 즐거움과 수명을 바꿔도 괜찮다고 여기는 문화는 중독의 위험성을 간과하게 만들었다. 경계심이 없는 상태라 중독은 위기상황과 맞물리면서 빠르게 확산됐다. 코로나 시기 우울감과 지루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혼술을 즐겼다. 술에 관대한 문화는 다들 하니까 괜찮다는 공범의식을 형성했다. 실제로 알코올 중독자 비율은 지속적으로 우상향 했다. 전체중독자 중에서 2,30대가 차지하는 비율도 가파르게 증가했다. 전문가들이 혼술문화를 문제로 꼽았지만 다들 무시하고 코웃음 쳤다.
코로나는 햇수로 3년 가까이 사회를 봉쇄하고 사람들을 격리했다. 자유를 제한당하게 되면 인간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낀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익숙한 방법을 선택했다. 가장 친숙한 해소법은 알코올이었다. 생활패턴이 달라지면서 음주패턴도 변했다. 사람들은 자극받으면 바로 알코올을 찾게 됐다. 한국은 어디서나 쉽게 술을 살 수 있다. 혼술은 옆에서 말리는 사람이 없다. 술 마시는 속도가 빨라지고 쉽게 과음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남들이 하면 괜찮다는 안일함이 문제를 악화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위험군으로 전락했다. 고민할 필요 없이 술병을 따는 즉각적인 행동은 상식이 됐고 약물에 대한 경계선은 이때부터 무너졌다.
술은 음식일 뿐이다. 술을 대하는 문화와 의식이 문제의 원흉이다. 사람도 문제고 태도는 더 큰 문제였다. 중독은 연쇄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알코올도 약물이다. 약물이 가져오는 반응을 즐거움으로 인식하면 거부감이 사라진다. 그러다 보면 다른 약물에 손을 댈 가능성도 늘어난다. 중독은 또 다른 중독으로 빠르게 전이된다. 쉽게 빠질수록 벗어나기 어렵다. 시작과 동시에 속도가 붙는 순간부터 일상은 망가진다. 술을 즐기는 것처럼 약물을 즐기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폭증했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술을 사듯이 약물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유통망이 온라인에 형성됐다. 인프라가 갖춰지면 고객과 수요는 동시에 증가한다.
알코올에 관한 위기의식이 없었으므로 약물에 대한 문턱은 매우 낮았다. 중독을 중독으로 인식하지 못한 대가는 처참했다. 마약청정국 지위를 상실하면서 약물 관련 범죄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마약중독자와 중개업자가 적발되는 뉴스를 거의 매일 보고 있다. 환각 상태에서 도로를 질주하거나 이륙하는 여객기 문을 열려다 제지당한 사건은 더 이상 해외토픽이 아니다. 학생들은 단돈 3만 원이면 SNS와 텔레그램을 통해서 마약을 산다. 마약사범으로 검거되는 연령대는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마약중독은 더 이상 극소수의 일탈이 아니다. 엄연한 국가적 위기이자 비상사태다.
우리는 같은 나라에 산다. 사회문제는 모든 국민에게 해당되는 비극이다. 예외는 없다. 불난 집 앞에서 불구경을 하다 보면 화재는 주변으로 빠르게 번진다. 불은 가까운 집으로 옮겨 붙으면서 결국 온 마을이 불길에 휩싸인다. 초반에 빠르게 진화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다 태울 때까지 화염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가만히 서서 뒷짐 지고 있을 시간이 없다. 국민들은 경각심과 함께 적극적인 신고정신을 가져야 한다. 국가는 감시와 처벌뿐만 아니라 사회복귀를 돕고 재발을 막는 교정과 재활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 마약의 유해성과 심각성에 관한 폭넓은 공감대가 필요하다.
마약중독은 국가소멸, 인구감소와 동일선에 놓고 대응해야 할 만큼 끔찍한 문제다. 한국은 세계적인 마약소비국으로 급부상했다. 진입도 빨랐지만 확산은 그보다 더 빠르다. 가속도가 붙었다. 남미와 중동에서 생산된 마약이 동남아를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다. 수출중심국가지만 석유와 마약은 거의 전량 수입하면서 외화를 유출하고 있다. 심각한 중독은 범죄를 비롯한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직장을 잃고 가정이 와해되고 경제적인 파탄에 직면하는 사회적 병폐가 마약에서 발생한다.
중독자가 늘고 중독이 일상화되면 사회는 기능을 상실하고 국가는 붕괴한다. 역사 속 청나라와 현재진행형인 동남아와 남미의 비극이 이를 증명한다.
중독문제는 해법이 없다. 역사적으로 마약과 벌인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는 하나도 없다. 그래서 예방이 최선이지만 이미 때를 놓쳤다. 냉정하게 골든타임은 지났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전력으로 대응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중독은 근성이나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위기극복의 DNA를 운운해도 소용없다. 한강의 기적으로 성장한 나라가 마약의 비극으로 주저앉을 수도 있다. 손을 놓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