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마약은 도피처다
비극은 멀리 있지 않다. 늘 가까이에 있지만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당장 몇 다리 건너면 비극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삶을 망가뜨리는 중독문제는 뉴스나 다큐멘터리 속의 남일처럼 느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약이나 도박중독 같은 사회문제를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음지가 아니라 양지에서 중독자의 삶을 산다. 평범한 얼굴을 하고 살면서 뒤로는 아무렇지 않게 중독에 허우적댄다.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림을 그리다 알게 된 사람과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다. 반가운 마음으로 근황을 이야기하고 그 후로 몇 번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는 마약이야기를 꺼냈다. 예술 활동 하는데 영감을 주는 자극제가 된다면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술도 거의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는 나는 중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대화내역을 토대로 마약사범으로 신고해야 하나 몇 번이나 고민했다. 신고 대신 나는 연락을 끊는 것을 선택했다. 어떤 식으로든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는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신경정신과 약을 다량 복용하고 있었다. 술담배를 입에 달고 사는 데다 취해서 행패를 부린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약물에 손을 댄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위험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적인 감각은 뛰어나지만 나와 사는 세계가 다른 인간이었다. 몇 년이 흘렀지만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그가 갖고 있던 이미지다. 겉으로 봐서는 중독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충동적인 면은 있지만 외향적이고 매우 사교적인 인물이었다
발도 넓고 주변에 늘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평판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창작활동과 별개로 비즈니스를 하면서 꽤 좋은 성과도 냈다.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이었다. 겉모습만 보고 실체를 알아차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가면을 쓰고 사는 중독자들도 많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사람들 사이에 숨어있다. 중독자가 되면 죄책감은 사라진다. 그가 내게 말한 명분은 궤변에 불과했다. 죄의식이나 경각심은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렸을 것이다.
대학동기는 법무부에서 마약사범들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최근에 대학시절 친구들끼리 만나서 근황을 주고받다가 일이야기가 나왔다. 마약중독자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듣다 보니 탄식이 나왔다. 중독자들은 적발되면 핑계를 대거나 원망을 늘어놓는다고 한다. 처벌이나 책임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으므로 재발위험성도 크다. 내 인생 내 맘대로 했을 뿐이라는 기괴한 당당함이 인상적이었다. 상담심리로 석사를 받은 다른 동기는 마약문제를 사회적 위기로 평가했다.
인간에게는 타나토스적인 욕구와 에로스적인 욕구가 있다. 자기 파괴욕 혹은 배덕감으로 부를 수 있는 타나토스적인 욕구의 본질은 죽음과 파멸이다.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중독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탈출구 없는 자기 파괴욕은 결국 삶을 파괴한다. 에로스 역시 쾌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에로스는 삶의 연속성을 전제로한다.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행복과 쾌락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 여기에는 더 나은 인생을 살고자 하는 긍정적인 시각이 숨어있다.
중독은 타나토스적인 욕구를 강화한다. 좌절감과 죄책감 그리고 모멸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증폭되면서 혐오가 된다.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얻는 뒤틀린 해방감은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강렬함을 제공한다. 통제와 규율에서 벗어나 삶을 망가뜨리는 파괴욕구가 중독의 본질이다. 다른 욕구로는 충족할 수 없는 독보적인 쾌감이다. 그러나 타나토스적인 욕구의 끝은 파멸이다. 자진해서 자멸을 선택하는 만큼 죄책감이나 반성은 없다.
마약중독자에게 낙원은 없다. 양심을 버리고 자아를 잃어버리게 되면 결국 인간성마저 상실하게 된다. 약을 구하기 위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중독자의 말로를 보면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약물중독은 사회적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참극이다. 약물중독은 뇌기능을 손상시킨다. 마약과 알코올 그리고 도박 모두 회복 불가능한 영구적인 피해를 동반한다. 중독 문제는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
마약과 관련된 뉴스기사를 보다 보면 가끔씩 그가 떠오른다. 여전히 가면을 쓰고 일반인들 사이에 숨어 지내고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약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을까? 일상에서 비롯되는 사소한 행복이 마약이 주는 쾌락을 대체할 수 있을까? 마약은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다. 단약 후 사회로 복귀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초인적인 인내력과 자제력을 발휘한다.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약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재발을 반복한다.
마약은 누구나 시작할 수 있지만 단약은 극소수에게만 해당되는 특권이다. 마약문제에서 완전하게 자유로운 국가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중독문제는 인류가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숙제다. 맨 정신으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삶은 계속해서 우상향 하지 않는다. 실패와 불안에 유난히 취약한 한국 사회에서 마약은 도피처다. 건설적인 대안이 아니라 끔찍한 개미지옥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뛰어든다.
동기로 호기심이나 일탈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기만에 불과하다. 이유가 무엇이든 약물중독은 파멸을 부를 뿐이다. 좌절과 불안 그리고 우울과 절망감 마지막으로 자기혐오는 약물로 해결할 수 없다. 마약은 살아있는 죽음이다. 마약이 보여주는 환상과 쾌락은 삶을 생지옥으로 만든다. 비극은 가까운 곳에 있다. 그리고 지옥은 그 옆에 나란히 존재한다. 미술관 출구 옆에 늘 기념품가게가 있는 것처럼 마약이 가져올 비극을 피해 갈 수 있는 코스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