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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Jul 23. 2024

심리적 지배와 가스라이팅

약점을 파고드는 악인들의 인간사냥

 사람들은 몇 개의 가면과 몇 벌의 이미지를 걸치고 산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처음부터 본모습을 전부 드러내는 사람은 없다.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심리적인 거리를 좁혀나간다. 취향과 성향을 확인하고 여러 화제로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파악하게 된다.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구성하는 정보가 다채롭기 때문이다.


 감정은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친밀감을 느끼는 사이가 되면 오래전 일화를 주제로 삼아 대화를 나누게 된다. 여기서 감이 좋은 사람이라면 내면의 결핍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선한 인간은 이를 공감의 계기로 삼지만 사악한 인간은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 취약점을 파악한다. 이 세상에는 후자에 속하는 악인이 너무 많다. 당장 사이비와 사기꾼이 사람의 결핍을 파고드는 전형적인 악인이다.


 그들은 정서적으로 취약한 부분을 건드리면서 반응을 살펴본다. 슬퍼하면 위로를 건네고 분노하면 함께 동조한다. 사람 좋은 미소로 호감을 사고 너그러운 아량을 드러내면서 환심을 산다. 그러다 가까워지면 본모습을 천천히 드러낸다. 고민을 토로하면 이전에 파악한 결핍과 고민을 함께 묶어 버린다. 현재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가 만들어낸 연장선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장악한다. 상대가 완전히 감길 때까지 결핍과 약점을 지속적으로 자극한다. 사기와 사이비의 본질은 내면의 파고들어서 장악하고 지배하는 것이다. 인간을 끝까지 속이려면 상대방의 취약점을 쥐고 있어야 한다. 반항하면 흔들고 의심하면 찌른다. 제대로 감기면 쉽게 벗어날 수 없다. 고학력 전문직과 상류층이 즐비했던 일본의 옴진리교도 그랬다. 사기당한 사람이나 사이비에 빠져서 정신 차리지 못하는 사람을 욕해도 소용없다.


 심리적인 지배는 투명한 사슬과 같다. 어디에 묶여있는지 알 수 없으므로 끊어낼 수가 없다. 내면의 어떤 부분이 그들에게 포위당했는지 영혼의 어느 영역이 잠식당했는지 알 수 없다. 사기꾼과 사이비가 지배하는 그늘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가까스로 마수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왜 당했는지 본인도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관계없는 제삼자가 듣기에는 핑계로 들리겠지만 그 말은 대체로 진심이다.


 멍청해서 당하는 것도 아니고 어리석은 사람이라 속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도 속일 수 있다는 영화 마스터 속의 대사처럼 누구나 당할 수 있다. 사기와 사이비는 사냥할 대상을 발견하면 전략을 짠다. 인적정보와 심리사회적인 특성을 파악하는 ‘개인화작업’. 가장 효율적인 접근방법을 탐색하고 적용하는 ‘최적화작업’ 그들의 계략에 맞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들은 기다림에 익숙하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무서우리만큼 침착하게 인내한다.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을 기다리면서 기회를 포착한다. 빈틈없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강인하고 현명한 인간이라도 살다 보면 정서적으로 약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사기꾼과 사이비는 귀신같이 다가와서 빠르게 내면의 문을 따고 들어간다. 가족의 죽음이나 사회적인 실패 그리고 사람에게 좌절했을 때 그들이 찾아온다. 결핍과 한계는 계절처럼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래서 사기꾼과 사이비는 적당한 때를 기다려 인간을 사냥한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면 그 욕구를 채워주면 된다. 진짜 주는 게 아니다. 가졌다고 믿게 만들면 된다. 좌절한 인간에게는 희망을 먹이로 주고, 울분에 휩싸인 인간은 공감과 교감을 제공한다. 풍족한 삶의 무료함에 질린 사람에게는 진리를 보여주겠다고 말하고 성취에 갈망하는 사람은 복락을 약속한다. 불행한 과거에 시름하는 자에게는 구원을, 불안한 현실에 시달리는 자에게는 행복을, 부정적이고 뒤틀린 내면을 가진 이에게는 평안을 주겠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전부 다 거짓말이다. 애초에 제공할 수 있는 여력과 능력은 없다.


 세뇌가 마무리되면 약속은 무효가 된다. 사냥이 끝나고 나면 사람은 말하는 가축에 지나지 않는다. 쉬지 않고 알을 낳거나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생활이 시작된다. 어느 기업의 회계담당자였던 건실한 사람이 다단계에 넘어간 것을 본 적 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간신히 빠져나온 그는 사기꾼들에게 끔찍하게 착취당했다고 이야기했다. 무급노동을 하면서도 본인이 옳은 일을 한다고 믿었다는 말이 슬프게 들렸다. 약속은 사냥감을 잡기 위한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시절 같이 아르바이트했던 친구는 신학생이었다.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이비에 빠져 학교를 그만두고 사라져 버렸다. 강인한 신념은 소용없다. 누구나 약점이 있다. 약점은 완벽하게 보호할 수 없다. 반드시 틈이 있을 수밖에 없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사기꾼과 사이비가 활동하기 정말 좋은 세상이 도래했다. SNS는 그들의 홈그라운드가 되어버렸다. 개인정보와 인간관계 그리고 취미와 취향까지 인스타그램 안에 다 들어있다. 한눈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 수 있고 고민까지 파악할 수 있다.


 데이터를 통해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미지와 트렌드를 반영해서 계정이나 단체를 만든다. 좋아요를 누르고 팔로잉하면서 서서히 접근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어느 순간 마음을 터놓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사냥이 시작된다. 공격이 방어보다 쉽다. 막는 쪽은 어디서 습격이 들어올지 알 수 없다. 친밀감에 속아 넘어가서 방심할 때를 기다린다. 나약한 내면의 틈을 보일 때까지 인내한다. 감정이 없는 사악한 이들에게 감정을 가진 인간은 정말 쉬운 사냥감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 위험이 도사리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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