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취약계층 5천만 시대
대한민국은 눈치와 속도가 만든 괴물 같은 초연결사회다. 남을 의식하면서 스트레스받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속도를 내야 살아남는다. 상호작용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남이다. 남보다 잘 살기 위해 경쟁하고 남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스트레스가 일상화될 수밖에 없고 생애주기에 걸쳐 평생 동안 비교하고 또 비교당한다. 대부분의 심리사회적 문제들은 한국 특유의 비교하는 문화가 왜곡되면서 발생한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이 전적으로 개인에게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사회적 차원에서 인식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미래가 없다. 인구절벽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심리적인 디폴트가 온 나라를 강타할 것이다. 저출산과 저성장을 국가적 위기라고 표현하지만 진짜 위기는 심리사회적인 문제다. 국민 대다수는 이미 정서적 취약계층이나 다름없다. 신경정신과 질환은 감기처럼 일상이 됐다. 불안과 우울감에서 자유로운 성인이 얼마나 될까? 중독문제는 강력범죄를 양산하는 데다 자살률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양극화에서 비롯된 갈등은 계층을 계급으로 나눠버렸고 세대와 성별은 증오 범죄의 표적이 됐다.
문제가 악화되는 속도는 개선되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다. 미디어와 온라인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은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분노는 콘텐츠가 되고 갈등은 조회수를 부른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휴머니즘을 잃어버린 인간들의 콜로세움이다. IT 인프라를 통해 증오와 범죄는 확산되고 있다. 초연결사회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풀 수 없는 족쇄나 다름없다. 다 같이 손발이 묶인 채로 저 아래로 가라앉는 중이다.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바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아래 어두운 나락이 입을 벌리고 있다.
위기는 이미 시작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각증상이 없다. 너무 자주 일어나는 일은 당연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심리사회적 문제가 일상적인 환경에서 위기의식이나 경각심은 작동하지 않는다. 번아웃으로 인한 과로사, 사회 전반에 만연한 괴롭힘과 따돌림, 사기피해자의 자살, 혐오와 증오가 만드는 갈등, 통제 불가능한 중독문제 같은 사건이 매일 이어진다. 사람들의 반응은 무심하고 냉담하다.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는 이상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긴다. 불안감이 적지 않지만 나만 아니면 상관없다는 무사안일주의는 여전하다.
사회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방관자가 아니라 피해자이자 가해자다. 이 나라에 발붙이고 사는 이상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심리사회적 문제는 전염성을 갖고 있다. 모든 사회활동은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진다. 사람과 만나고 관계를 맺는 만큼 피해당사자는 한 명으로 그치지 않는다. 직간접적으로 교류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사람들이 변하면 사회도 변한다. 남들이 달라지면 결국 나도 달라진다. 예외는 없다. 사회적 신뢰가 와해되면서 이웃사촌이 사라졌다. 정과 같은 따뜻한 문화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이미 한국은 고유한 가치와 인간성을 많이 상실한 상태다.
한국이 처한 상황을 볼 때 심리사회적인 문제는 위기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그러나 문제를 보는 시각은 여전히 경제적인 관점에 머물러있다. 복지 정책으로 해결하려는 접근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만 봐도 미온적인 태도가 드러난다. 사회적 취약계층이라는 말보다 정서적인 취약계층이라는 표현을 더 민감하게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모든 사회문제를 소득 수준을 근거로 분석하고 연관 짓는 관습을 버려야 한다. 심리사회적인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인구소멸은 더 빠르게 가속화될 것이다.
심리사회적 문제의 원인이 개인에게 있다는 주장은 틀렸다. 사회적인 변화는 방아쇠고 사회문제는 총알이다. 급격한 변화가 발생하면 총알은 총구 밖으로 튀어나간다. 그리고 상처는 표적이 된 인간의 심장에 또렷하게 남는다. 인간이 모여서 사회를 구성한다. 상처 입은 사람들이 늘어나면 사회도 상처를 입고 점점 망가진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한국의 성장동력은 점점 하락하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소멸을 이유로 거론하지만 진짜 원인은 따로 있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더는 미래를 꿈꾸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의 벽은 높고 전망은 어둡다. 현상유지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이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격차를 좁힐 방법은 없고 현실에 타협하면 비교와 비난이 이어진다. 노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던 세대는 빈곤과 고독사 같은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남의 삶에 간섭하면서 숫자와 등급으로 인생을 평가하는 문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최선은 무의미하고 열정을 갖고 살아도 벽을 넘을 수 없다. 사회는 문제를 개선할 생각이 없다. 여전히 개인을 탓하고 개선을 요구하면 조롱이 돌아온다.
실망하고 좌절한 사람들의 마음은 상처 입고 엉망이 된다. 여유가 사라지면서 배려와 존중은 사라진다. 배척하는 태도가 일상화되고 차등과 차별이 상식으로 자리 잡는다. 사람이 살기 힘든 사회는 구성원들의 인간성을 파괴한다. 문제의 원인을 이제 더 이상 개인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사회적 차원의 개입과 인식개선이 시급하다. 현실을 부정하고 코웃음 치는 이들은 냄비 속에 든 개구리나 마찬가지다. 아직 물이 차갑다고 안전하다는 착각 속에 빠져있다. 불이 붙은 이상 시간이 지나면 냄비 속에 든 물은 끓어오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