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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Nov 01. 2024

집에서 짐으로 전락한 아파트

부실공사는 삶을 위협하는 사회적 재난이다

 추석이 막 지났을 무렵 중학교 동창이 내집 장만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축하의 인사를 건넸으나 정작 돌아온 대답은 깊은 한숨이었다. 시공하자로 인해 친구는 입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대응방법을 모색하느라 고생 중이라는 하소연은 남일 같지 않았다. 부실시공과 건축하자 문제에서 자유로운 아파트 브랜드가 몇 개나 될까? 일부 건설사나 시공사의 문제로 치부했던 업계의 뻔뻔한 변명은 가관이었다. 부동산불패신화는 건설업계를 갑으로 만들었다. 관행이라는 말로 넘어가려는 무책임한 태도나 안하무인이나 다름없는 대응방식은 현재진행형이다.


 내 돈 내고 산 집에서 지속적으로 받는 고통은 정신적인 고문이나 다름없다. 대학교 동기는 결혼하면서 신축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입지가 좋은 데다 학교를 끼고 있어서 경쟁률도 높았다. 그러나 입주 후 문제가 발생했다. 방음성능이 엉망이라 옆집의 생활소음이 그대로 들렸다. 건설사 측에서는 설계상하자를 인정했지만 보수를 해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대단지라 특정 세대만 골라서 재시공을 하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브랜드 신뢰도가 높은 아파트라 선택했는데 정작 문제가 발생하자 돌아온 것은 배신이었다. 분양할 때는 다들 책임시공과 의무보수를 강조한다. 그러나 분양과 입주가 끝나면 약속과 신뢰는 사라진다.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면 소음문제나 시공하자에서 자유로워질까? 강남아파트나 고급빌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층간소음매트를 인터넷에 검색하면 20억대가 넘는 아파트에 시공한 사례가 수두룩하게 나온다. 외벽균열이나 주차장누수와 침수 같은 문제는 프리미엄아파트라도 예외는 없다. 50억 원을 호가하는 하이엔드 아파트에서도 소음으로 인한 갈등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설계로 인한 결함은 건물을 전부 허물고 다시 짓는 방법 외에 근본적인 해법은 없다. 유지보수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이사 가지 않는 한 고통은 계속된다.


 제대로 설계하고 원칙대로 시공하면 피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 문제의 원흉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처벌이 없는데 과연 누가 법을 지키려고 할까? 허울뿐인 한국식 처벌은 벌금 적당히 내고 적당히 넘어가라는 뜻이다. 개발로 수천억에 달하는 수익을 가져가는 대형건설사 입장에서 수십억 원 수준의 과징금은 낼만한 돈이다. 재판을 가도 남는 장사다. 대한민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다. 부실공사로 인해 인명피해가 발생해도 건설사는 폐업하지 않는다. 아파트 브랜드가 타격받으면 전국에 있는 입주민들의 재산이 날아간다. 시공사와 건설사 그리고 입주민들은 운명공동체다.


 하지만 엄연히 갑과 을이 존재하는 기울어진 관계다. 입주민은 을이다. 아파트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소용없다. 브랜드는 건설사의 간판이자 소유물이다. 집은 내 돈 주고 샀지만 아파트 간판은 건설사의 지적재산권이다. 부실이나 하자로 브랜드 이미지가 바닥에 떨어지면 입주민들의 집값이 하락한다. 도덕적 해이를 지목하면서 싸우려고 해도 뉴스를 타면 주변에서 제지가 들어온다. 가격은 소문에 반응한다. 한국에서 집값 떨어진다는 말보다 무서운 말은 없다. 잠시 큰소리만 낼뿐 정작 판을 뒤집을 수가 없다. 설계와 시공을 담당하는 건설사들의 태도는 그래서 뻔뻔하다 못해 뻣뻣하다.


 입주민들은 힘없는 볼모다. 재산과 생명을 저당 잡힌 채로 사는 삶은 자유가 없다. 등기상 분명 내 소유지만 내 집에서 발생한 문제를 내 뜻대로 해결할 수가 없다. 유튜브 좀 보고 공구상가 가서 구매한 도구로 뜯어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공동주택은 사람들의 권리와 생활이 다 같이 얽혀있다. 한 집만의 문제가 아니라면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세대에 결함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수리가 아니라 소송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피가 마른다. 집이 아니라 짐이다. 언론에 알려져서 공론화되면 집값이 내려간다. 아파트주민회의 자치권은 아파트 밖으로 나가면 아무 힘도 없다. 결국 일이 커지면 내부적으로 축소하거나 관계자들이 들이미는 조건을 받아들이게 된다.


 대형건설사는 손해보지 않는다. 그들은 유리한 패를 전부 쥐고 있다. 집값을 빌미 삼아 잘못을 하고도 고자세로 나온다. 주가나 실적이 떨어지고 과징금을 물어도 건설사는 망하지 않는다. 브랜드 가치 하락은 아파트를 소유한 입주민들의 타격으로 이어질 뿐이다.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제시하는 합의안을 받아들이고 심지어 협력까지 해야 한다. 재산권과 생명권을 모두 저당 잡힌 상황이지만 국가나 사법기관은 국민을 구제해주지 않는다. 주택을 구입하는 것도 소비다. 자유로운 소비이자 선택이므로 개인의 책임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설계하자와 시공문제를 아파트들이 달고 살다 보니 마치 관행으로 치부하는 듯한 행보도 문제다.


 아파트 문제를 보면 대한민국이 저신뢰사회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생명권과 재산권에 끼치는 피해를 보면 사회적 재난으로 봐도 무방하다. 당연한 것들을 지키지 않으면 상식과 원칙이 무너진다. 사회 전체의 신뢰는 각 분야의 규칙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 형성된다. 믿음은 유리 같아서 한 번 깨지면 두 번 다시 균열을 없앨 수 없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거의 모든 대형은행에서 횡령이 발생했다. 대기업건설사들이 자랑하는 프리미엄 아파트들이 부실시공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신용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금융과 건설만 봐도 신뢰가 사라진 지 오래다. 비리와 불법이 없는 곳이 없다.


 사회적 신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간접자본이다. 붕괴되면 도미노처럼 모든 분야에서 신뢰가 순식간에 무너진다. 피해는 국민들의 몫이다. 망가지면 재건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그리고 씨랜드화재의 참상을 다 잊어버린 것 같다. 참혹한 과오를 망각하는 순간 비극적인 과거는 반복된다. 재앙에 가까운 인재는 언제나 당연한 원칙이 당연하게 무시당하면서 발생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약속을 어기고 이익에 눈이 멀어서 안전을 내다 버렸다.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는 ‘가해자 없는 비극’이 또다시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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