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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Nov 06. 2024

한국은 서울과 비서울로 나뉜다

사는 곳이 다르면 사는 삶도 다르다

 한국은 서울과 비서울로 나뉜다. 수도권이나 광역시도 지방이라는 단어에 포함되지만 서울은 예외다. 단순한 지역이 아니라 성역이다. 서울은 성공의 종착역이자 완성된 삶을 상징한다.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처럼 한국인의 삶을 구별하면 최상위층에 서울이 있다. 사람이나 기업이나 성공하면 모두 서울로 올라온다. 지방에 거점을 두고 성장한 토착기업들은 거의 예외 없이 서울로 이전한다. 사업지상 주소는 지방에 두고 사업본부 같은 이름으로 서울에 사옥을 매입하기도 한다. 성공한 사업가나 유명인들 역시 성공하면 거의 예외 없이 명당으로 이름난 서울 한복판으로 이사 간다. 서울은 완생이고 지방은 미생이다.


 신축 아파트를 서울에 아무리 공급해도 수요를 따라갈 수없다. 수요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인구가 반토막 나도 사람들은 서울을 선호할 것이다.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늘 그랬다. 삼국시대부터 한강유역을 놓고 각축전을 벌였다. 조선왕조가 지배한 500년간 한양은 지배계층인 왕과 양반들이 사는 곳이었다. 백성을 사랑한 실학자로 평가받는 정약용 조차 아들에게 서울에 살 것을 강조했다. 지방으로 밀려나면 무식하게 산다면서 사대문 안에서 살 것을 주장했다. 형편이 어렵다면 적어도 10리 안에서 살라고 종용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을 보는 시각은 똑같다.


 대한민국의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 도로를 내고 철로를 깔아서 교통을 편하게 만들수록 서울의 영향력만 커진다. 부동산 수요는 지방으로 분산되지 않는다. 광역시나 특례시는 전국단위의 위성도시에 불과하다. 지방부동산 가치는 서울과의 관계성이 결정한다. 다들 알고 있지만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애써 포장하는 것뿐이다. 대한민국의 다른 이름은 서울공화국이다. 서울은 심장이다. 자본과 자원은 혈관 역할을 하는 길을 따라 서울로 모인다. 사람도 돈도 모두 서울로 몰린다. 신도시를 세우고 지하철역을 늘려봐야 소용없다. 출퇴근 시간에 광역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만 늘어날 뿐이다.


 KTX와 GTX가 일일생활권을 넓혀도 서울수도권 인구는 지방으로 분산되지 않는다. 서울의 영향권 아래 놓인 베드타운만 늘어날 뿐이다. 교통이 개선될수록 서울권역은 점점 더 넓어진다. 분산을 고려한 정책은 역설적으로 서울 집값만 더 올려놨다. 서울 강남을 중심에 놓고 형성된 거대한 동심원이 전 국토를 감싸고 있다.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대지의 가치는 하락한다. ‘서울로부터의 거리’는 지방 땅값을 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 말처럼 서울을 빼면 한반도는 껍데기만 남는다. 2024년 공시지가와 부동산실거래를 보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망은 거의 종교적인 신앙에 가깝다. 부동산불패론의 중심은 서울이다. 국가경쟁력 하락과 성장동력상실이라는 악재에 직면했지만 강남의 입지는 끄떡없다. 8 학군은 검증된 황금인맥을 만드는 요람이다. 강남 3구는 강남을 벗어날 일 없는 선민들의 성역이다. 비싸서 아무나 살 수 없고 아무나 들어갈 수 없어서 함부로 살 수 없는 성지다. 열역학 제2법칙처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존속하는 한 서울의 입지와 가치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조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서울은 한양에서 이름만 바꾸고 그대로 살아남았다. 나라보다 강한 도시다.


 모든 욕망은 서울로 모인다. 자녀를 좋은 학군에 넣으려고 부부가 영끌해서 서울 아파트에 입주한다. 자식에게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고 싶어서 서울을 선택한다. 부모의 직업과 아파트 브랜드로 태생부터 서열이 결정되는 도시지만 사랑은 진심이다. 월세를 내고 빌라에 살면서 서울 산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흔하다. 서울은 삶을 포장해 준다. SNS에 올릴 만한 힙플레이스와 문화시설이 가까이에 있다. 수입 대부분을 대출이자로 지불하면서 누리는 프리미엄은 그런 것들일까? 저마다 목적은 다르겠지만 흘리는 땀은 똑같이 맑다. 욕망과 탐욕 그리고 꿈의 온도는 전부 뜨겁다.


 서울은 도시가 아니라 꿈이다. 1991년에 나온 조용필의 노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학업과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은 서울로 간다. 저마다 꿈을 품고 올라오지만 등기를 치고 발붙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시간이 지나면 꿈에 때가 들러붙으면서 탁한 욕망이 된다. 집값은 보이지 않는 장벽이다. 지위와 신분을 규정하고 계급을 나누는 역할을 한다. 사는 동네와 거주하는 아파트 브랜드를 가지고 서로가 서로를 평가한다. 사람의 값어치를 매기는 행동은 서울에서 상식이 됐다. 욕망은 사람들을 다 같은 색으로 물들인다. 그 욕망의 중심에 서울이 있다.


 태생적인 배경에 따라 생존 난이도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출신지와 거주지는 플레이어의 스타트 레벨을 결정한다. 한국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선천적인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곳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들의 인생은 땅에 묶여있다. 과연 예외가 있을까? 출신성분과 사회적 신분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물리적인 영역에 종속된다. 주거지역이 다르면 접점이 형성될 일이 적다. 아파트단지를 끼고 학군이 나뉘는 시대가 되면서 사는 동네에 따라 사는 삶도 달라졌다. 지하철 역 하나 차이로 소득 수준이 벌어진다. 시는 같아도 구가 달라지면 한 달 식비에 0 하나가 더 붙는다.


 차별은 정책으로 보완하고 법률로 개입할 수 있지만 격차는 다르다. 격차는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된 사회적 결과물이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해소되지 않는다. 정권이 여러 번 바뀌고 정부가 달라져도 그대로다. 역사적인 배경을 근거로 삼는 구조적인 격차는 어떤 노력으로도 해소할 수 없다. 봉건제에서 민주주의로 이데올로기가 개변했음에도 바뀌지 않았다. 자본주의라는 체제와 하나가 된 지역격차는 관습이 됐다. 서울은 부동산 등급과 주거지역에 따른 서열화의 중심이다. 계층이 아니라 계급을 나누는 절대적인 구분선이다. 대한민국의 신분질서를 구별하는 기준점이므로 서울의 가치는 퇴색되거나 변질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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