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올라도 가난해지는 사람들
결론부터 먼저 밝히자면 부동산 시장은 망하지 않는다. 부동산 불패신화는 깨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서울 아파트 수요는 마르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다. 지방에 빈집이 늘고 인구가 감소해도 선망의 대상인 서울수도권 상급지의 가치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부동산은 신분과 계급을 나누는 구분선이다. 빈부격차와 양극화는 부동산가격상승률과 거의 비례한다. 앞으로도 이변은 없을 것이다. 다만, 부동산 불패신화가 지속된다면 약 20년 후 국민 대다수는 실질적인 빈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집은 현금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재산은 맞지만 내가 쓸 수 없는 재산이다.
2022년 국토부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택자가보유율은 61%가 넘는다. 보건복지부의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노인의 51%가 주택 및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OECD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0.4%로 세계 1위다.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절반이 넘는 노인들이 내 집 장만에 성공했지만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작년 기준 65세 이상 노령인구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38.3%였다. OECD 평균인 16.3% 보다 거의 2.5배나 높은 수치다. 은퇴하고도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집을 가지고 있어도 일을 해야 입에 풀칠을 한다.
집값이 올라도 정작 현금동원능력은 감소한다. 집은 돈이 되지만 내가 쓸 돈을 벌어오지 않는다. 2024년 한국 노동자의 평균 은퇴연령은 55세다. 그리고 기대수명은 약 82세다. 적어도 20년 이상 생활을 지속해야 한다. 모험이나 도전이 아니라 안주를 택할 수밖에 없다. 노년에 주택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사업을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세나 월세를 주고 작은 집으로 옮길 수 있을까? 다주택자 혹은 상가를 소유한 건물주는 극소수다. 내 집 장만에 성공해서 노년을 맞이한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집이 만드는 빈곤에 빠진다. 평생 일군 재산인 집을 내주고 주택연금을 받으려는 노인은 거의 없다.
다들 장부상으로는 부동산을 보유한 어엿한 중산층이다. 그러나 현실은 생활비가 없어서 저임금노동에 매달려야 한다. 물론 부동산을 보유한 노인이 무주택자인 노인보다는 경제적으로 훨씬 여유롭다. 그러나 곤궁한 형편에 시달리는 현실은 동일하다. 부동산에서 직접적인 수익이 매달 발생하지 않는 한 똑같이 돈에 쪼들린다. 수십 년에 걸쳐 대출금을 상환했지만 집은 재산세와 관리비를 뜯어가는 짐이 될 뿐이다. 팔아서 노후자금으로 쓸 수도 없다. 일생과 맞바꿔 얻은 자산이지만 풍족한 노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부동산은 결국 장부상 자산에 불과하다. 진짜 재산은 압도적인 현금창출력을 발휘하는 소득이다.
노후준비의 기본은 부동산 보유다. 그러나 부동산만 보유한다면 약 50% 확률로 노년에 빈곤층이 된다. 노인이 돼서도 넉넉한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만이 여유로운 노후를 보장받는다. 집은 고정지출을 담당할 뿐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해주지 않는다. 현금이나 주식과 비교하면 부동산을 안전자산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상승률을 놓고 보면 부동산이 더 낫다. 최선이 아니라 최악을 피해서 차악을 선택한다. 부동산은 최선이 아니라 차악이다. 최선은 상속을 통해 형성한 부와 뛰어난 역량으로 획득한 고소득 직업이다. 이 두 가지 케이스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임금노동자는 내 집마련에 성공하더라도 진짜 죽기 직전까지 일해야만 살 수 있다. 은퇴는 없다.
전문성이 평생에 걸쳐 유지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직업은 은퇴와 동시에 수익창출능력을 상실한다. 고도성장기에 피땀 흘려 일했던 노인들은 여전히 대부분 일을 하고 있다. 그나마 이들은 연금이나 보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세대다. 이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결혼과 출산도 빨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가 넘는 노인들이 빈곤에 시달린다. 1980년대 이후 세대는 노인빈곤율이 거의 70%에 달하게 될 것이다. 아파트를 갖고 있어도 예외는 없다. 연금과 의료보험 같은 사회보장제도가 취약해지면서 사회안전망이 제기능을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출산율저하로 인한 인구감소로 세수확보가 어려워졌다. 한국 기업의 대외경쟁력이 하락하면서 수익성도 급감한다. 원가절감과 구조조정 고용유연화가 지금보다 늘어나면서 은퇴연령은 더 짧아질 것이다. 남녀초혼연령은 2023년 기준 남성이 34세, 여성이 31.4세다. 결혼과 출산 모두 늦어지면서 자녀가 중고등학생이 될 무렵 실질적인 은퇴상황에 놓이게 된다. 주택대출금 상환도 끝마치지 못했는데 실직하면 곧바로 빚더미에 앉는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을 도와줄만한 여력이 없을 것이다. 비약이나 비관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대한민국을 위기로 몰아넣은 주범은 안일함이다. 경제사회적인 변화는 법칙이 없다. 대내외적인 변수에 의해 급변한다. 상수라고 믿었던 것들이 무너지면서 상식이 파괴된다.
2000년대부터 출산율과 인구감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알아서 해결될 줄 알고 그대로 방치했다. 위기극복의 DNA를 운운하면서 영원한 우상향이 계속된다고 믿었다. 사람을 자원으로 삼아 발전한 나라의 어리석은 오만에 불과했다. 각종 사회 문제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정부나 국민들 모두 개의치 않았다. 나만 아니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부동산은 폭락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역시 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타고난 계급에 따라 각자도생 하는 구조가 고착화될 것이다. 격차를 그나마 보완해 주는 사회안전망이 부실해지면 서민들의 생활은 생존으로 바뀐다.
한국인들은 과거의 방식이 미래에도 통한다는 생각으로 부동산불패론에 매달리고 있다. 2024년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가계평균 자산은 5억 2727만 원이다. 이 중 실물자산인 부동산 비중은 4억 1424만 원으로 전체 자산의 78.6%다. 대한민국은 부동산 쏠림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다. 2021년 기준 미국의 부동산비중은 28%였다. 일본은 37% 영국은 46% 선진국 중에서 비교적 높은 호주 조차 61%다. 은행에서 밀린 대출금과 매달 나가는 대출이자는 가계부채가 됐다. 주요 5대 은행의 대출잔액은 올해 7월 기준 710조 7558억 원이다. 돈이 전부 땅에 묶여 있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자산평가액은 오르지만 소득에 기여하지 않는다. 장부상 자산만 늘어날 뿐 버는 돈은 그대로다. 땅에 돈이 전부 다 묶이면 성장동력은 급감한다. 플라자합의로 장부상 갑부가 됐던 일본은 버블경제로 몰락했다. 생산성 없이 그저 장밋빛 전망으로 형성된 미국의 서브프라임도 폭락으로 끝났다. 막대한 천연자원과 3억이 넘는 내수시장, 세계 최고의 경제력을 보유한 미국이라 겨우 턴어라운드 할 수 있었다. 30년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 역시 세계 2위 규모의 경제력과 1억이 넘는 인구, 해외자산확보로 지금까지 버텼다. 한국은 두 나라와 동일한 비교선상에 둘 수 없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산업에 투자하고 성장에 베팅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 그러나 개인이나 기업을 막론하고 전부 부동산에 뛰어들었다. 부동산 시장에 묶인 돈은 은행의 이자수익이 될 뿐이다. 부동산불패에 온 나라가 미쳐있는 동안 세상이 변했다. 미국만 호황을 누리는 장기침체기가 시작됐다. 자고 나면 사건과 사고가 증시를 흔든다. 이제 변수는 상수가 됐다. 한국인이 알던 상식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시장변동성이 널뛰기를 하는 시기에 대한민국은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미국과 일본의 전례를 교훈 삼아 한국식 대응방법을 모색했어야만 했다. 이제는 늦었다. IMF, 카드대란, 서브프라임, 코로나를 겪으면서도 배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통계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위기를 포장할 수도 있고 진실을 드러낼 수도 있다. 지금까지 모두 탐욕에 눈이 멀어서 숫자로 자신을 속였다. 40대 가구주의 부동산 자산 비중은 77.4%였다. 50대는 75.8% 60대 이상은 81.8% 에 달한다. 3040세대의 금융자산 비중은 50대보다도 더 낮다. 80년대 후반 태생인 30대의 저축액 비중은 고작 18.1%다. 부동산 자산 비중이 가장 높은 세대다. 국제적인 경제위기와 한국 산업의 성장동력저하가 동시에 발생할 경우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다. 그때가 오면 정부가 국민들을 구제해 줄 수 있을까?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이제 각자도생뿐이다. 각자도생은 하드코어 모드를 의미한다. 강자에게 하드모드는 놀이터겠지만 약자에게는 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