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관이 된 청소년 도박중독 문제
한국은 중독에 관대한 나라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술과 도박에 관한 인식은 변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절제력과 자제력을 갖고 있다고 착각한다. 마음만 먹으면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다. 뉴스나 다큐에 나오는 중독자들의 삶은 나와 동떨어져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일함은 재앙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술과 도박에 관한 한국인들의 인식은 자만과 오만으로 가득하다. 중독에 면역력을 가진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환경과 상황이 조성되면 누구나 노름꾼이나 주정뱅이로 전락한다. 학력, 지위, 경제력, 나이와 직업을 막론하고 중독은 평등하게 찾아와서 공평하게 인간을 파멸시킨다.
도박은 한국인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다. 90년대는 전국을 순회하는 불법도박이 판을 쳤다. 2000년대는 수많은 중독자를 양산한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졌다. 하우스로 불리는 사설도박장과 스포츠도박이 2010년대를 강타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2020년대가 되자 누구나 손쉽게 불법도박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웹사이트만 접속하면 언제 어디서나 배팅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 불법으로 유료웹툰이나 OTT 스트리밍을 제공하는 사이트들은 온라인 도박 광고를 잔뜩 달고 있다. 높은 접근성과 문제발생률은 비례한다. 디지털문화에 익숙한 1,20대가 중독자로 전락했다.
초등학생도 스마트폰으로 도박을 할 수 있는 나라다. 농담이 아니다. 경찰청이 올 10월에 발표한 청소년사이버도박사범 중 초등학생은 무려 46명에 달했다. 최연소 도박사범의 나이는 9살이었다. 한국 불법온라인 도박의 가장 큰 특징은 플레이타임이 짧고 룰이 단순하다는 점이다. 진입장벽이 낮고 빠른 진행을 통해서 중독성을 배가시킨다. 학교나 학원 쉬는 시간에 짧고 가볍게 한 판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숏폼, 쇼츠, 릴스 등 숏타임에 길들여진 젠지세태에 최적화된 스타일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마케팅은 타겟팅이다. 주 고객층의 심리사회적 특징을 파악한 온라인 도박은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범죄자가 득세하고 범죄가 일상이 되면 국민들의 삶은 망가진다. 사회악이 성장하면 공공선은 붕괴된다. 안타깝지만 한 번 망가진 삶은 대체로 복구되지 않는다. 도박은 일상을 넘어서 이제 생활이 됐다. 그리고 생활이 되면 곧 문화로 자리 잡는다. 과장이 아니다. 주점이나 유흥시설이 즐비한 각 지역의 번화가는 홀덤펍이 성행한다. 이병헌 감독의 영화 <극한직업> 에는 ‘학생도 직장인도 편의점 가서 담배 사듯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마약의 대중화.‘라는 대사가 나온다. 한국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도박의 대중화에 완벽하게 성공했다. 그러나 경각심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도박중독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다. 하지만 여전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TV공익광고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안내문을 발송한다고 현실이 달라질까? 교사들에게 보수교육을 실시하고 도박중독 강연을 한다고 세상이 변할까? 개인의 문제에 맞춰져 있는 초점을 사회로 돌려야 할 시간이다. 중독문제는 의식개선과 동시에 직접적인 해법을 병행해야 한다. 온라인 불법도박은 적발이나 추적이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무책임한 핑계다. 병충해를 잡기 힘들다고 농사를 포기하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은 항상 현실이나 예산을 들먹이면서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포기했다. 출산율, 자살률, 노인빈곤, 고독사, 인구감소, 도박까지. 현실을 외면하고 방치하면 반드시 재앙이라는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 20여 년 전에도 똑같았다. 인구감소나 출산율 문제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고 비웃었다. 안일하게 대응했고 기우로 치부했다. 그 대가를 지금 혹독하게 돌려받고 있다. 중독이나 자살 문제 역시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망가진 사회적 통념은 국민의 생활과 생존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친다. 사법당국과 정부는 예산과 전문인력을 대폭 늘려서 중독과의 전쟁을 벌어야 한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손을 쓰지 않는다면 2030년대는 구제불능에 빠지게 된다. 국가수사본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검거된 도박 사범은 9971명이다. 이 중 거의 50%에 가까운 4715명이 청소년이다. 인천은 4년 만에 도박중독 청소년 비율이 300%나 증가했다. 전국 2위였다. 그리고 1위는 소득 수준이 한국에서 가장 높은 서울이다. 중독은 환경을 가리지 않는다. 미래세대가 중독에 빠지면 국가 경쟁력은 중장기적으로 하락한다. 과장이 아니다. 중독은 또 다른 중독으로 이어진다. 알코올, 마약, 도박 문제는 서로 엮여있다. 중독인구가 증가하면 건전한 경제활동이 줄어들면서 성장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청소년도박 중독 문제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교육계는 심각성을 인지하고 여러 가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실효성은 거의 없다. 여성가족부의 2023년 사이버 도박 진단조사 따르면 중·고등학교 1학년 학생 88만 명 중 위험집단은 무려 2만 8838명에 달했다. 한국 청소년의 12%가 도박중독에 시달린다는 의미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미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제 예방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암수범죄 성격이 강한 도박의 특성을 고려하면 실제 중독자는 더 높을 것이다. 한국의 성장을 책임질 미래 세대가 이미 중독이라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도박중독은 완치가 힘들다. 평생 재발을 달고 산다.
중독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은 덫이다. 누구나 덫에 걸려서 삶이 발목 잡히고 인생이 통째로 망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위험한 덫을 치우려고 하지 않는다. 도박중독으로 인한 사회문제로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면서도 손 놓고 가만히 있다. 도박사범을 적발해서 교정과 재발방지 교육을 한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적 인식 자체가 망가진 시점에서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빠징코가 온 나라를 점령한 일본의 사례를 보고도 반면교사에 실패했다. 막대한 비용이 들더라도 당장 개선에 착수해야 한다. 구조적인 개혁을 하지 않으면 한국은 미래를 저당 잡히게 될 것이다.
중독에 관대한 한국 문화는 3대 중독인 알코올, 도박, 마약문제를 낳았다. 10대는 도박중독 20대는 마약중독 3,40대는 알코올중독에 시달리고 있다. 이미 사회문제를 넘어서 국가적 재앙이라고 불러야 할 만한 상황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경각심이 없다. 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어리석은 착각이다. 사회문제가 만연하면 예외 없이 모두 피해를 입는다. 안전지대는 없다. 중독문제는 소득이나 지위와 관계없이 찾아온다. 중독에 면역력을 가진 인간은 없다. 정신력이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위기의식을 가지고 인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우리 사회는 음주를 사회생활의 미덕이자 인간관계의 즐거움으로 포장했다. 결과적으로 음주운전과 심신 미약을 주장하는 범죄가 판을 치게 됐다. 10원짜리 고스톱이나 내기골프를 게임으로 가볍게 여겼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자란다. 사회문화는 모델링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전이된다. ‘괜찮다’는 말은 사람에게는 용기를 주지만 사회적으로는 악습이나 폐습을 용인하는 원흉이다. 국가와 국민들의 안일한 인식이 미래세대를 도박중독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 개인만 탓하면서 다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생각뿐이다. 국민이 불행해지면 국가는 빠르게 망가진다.
청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한 아사다 지로의 소설 <창궁의 묘성> 에는 농한기 하층민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춘온(春溫)이라는 질병이 등장한다. 중산층이나 부유층은 춘온에 시달리지 않는다. 영양과 위생이 보장되면 걸리지 않는 병이다. 결국 춘온은 빈민계급의 사회구조적인 빈곤이자 운명론적인 한계를 의미한다. 가난한 농민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지배계층은 빈곤을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개선하지 않는다.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옛말을 내세우고 뒤로 숨는다. 한국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들의 미래와 중독문제해결의 어려움을 저울질하고 있는 상태다. 해법도 의지도 없는 한국의 현실은 너무나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