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은 겨울이었다. 대문이 열리자마자 찬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익숙하고 그리운 겨울냄새가 났다. 물기 마른 낙엽의 향이 공기 중에 가득 퍼져있다. 차고 건조한 바람 속에 탄내인지 모를 은은한 향이 배어있다. 캠핑장에서 자주 맡을 수 있는 타다 남은 참나무 장작 냄새와 닮았다. 계절은 풍경과 냄새로 기억된다. 코 끝을 스치는 찬 기운이 기억 속의 그리움을 자극했다. 만안도서관은 난방장치를 가동했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건조한 잉크냄새는 겨울이 되면 전보다 더 진해진다. 30년 가까이 된 낡은 서가 사이를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걸었다. 세월이 익어가는 냄새를 맡는다.
창문 밖에 낙엽이 굴러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겨울은 가을이 남기고 간 흔적을 부지런하게 지우는 중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지나간 계절의 추억을 담은 낡은 편지들이 흩날렸다. 앙상하게 드러난 가지마다 따스한 햇볕이 내려앉았다. 몇 달만 지나면 그 위로 고운 빛을 품은 봄이 자라날 것이다. 가을하늘을 물들였던 쪽빛은 연한 푸른빛으로 변했다. 초등학생 시절 미술시간에 사용했던 크레파스의 색감을 닮았다. 풍경을 그리면 하늘을 칠하느라 제일 먼저 닳아버렸던 하늘색 크레파스.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투명한 하늘 아래 밝은 빛이 쏟아졌다. 닿는 곳마다 도화지 같은 하얀 햇살이 번졌다. 의자에 걸어놓은 재킷은 창 밖을 넘어 들어온 햇살을 가득 머금었다. 코를 가까이 댔더니 잘 말린 이불 냄새가 났다. 겨울의 숨결을 담은 바람은 차갑지만 여전히 볕은 따스했다. 도서관을 나와서 천천히 문예로를 걸었다. 겨울의 첫날이지만 여기저기에 가을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바람이 낙엽을 싣고 내 옆을 지나갔다. 바싹 마른 나뭇잎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문을 열고 카페에 들어갔다. 반가운 인사와 함께 커피 향이 감도는 온기가 마중 나왔다. 따뜻한 홍차를 주문했다.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는 향기와 온기가 뒤섞이면서 공기 중에 보이지 않는 궤적을 남긴다. 섬유유연제와 향수 냄새는 그림자처럼 기다란 꼬리 만든다. 카운터 옆에 서있는 미니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였다. 자연스럽게 크리스마스와 12월 31일이 떠올랐다. 송년회와 연말모임으로 바쁜 한 해의 마지막 달. 그 속에 숨은 겨울냄새를 좋아한다. 명학공원 입구에 서 있는 호떡트럭을 볼 때마다 꼭 씨앗호떡을 산다. 뜨거운 기름에 익어가는 고소한 호떡 냄새는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찬바람에 식을 까봐 외투 속에 소중하게 품은 붕어빵의 달콤한 향기도 좋다.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맡을 수 있는 코트에 스며든 커피 향. 눈 내리기 전의 포근하고 건조한 공기의 냄새. 눈 쌓인 하얀 아침의 맑고 산뜻한 공기. 구름 한 점 없는 청아한 겨울아침의 깨끗함까지. 전부 겨울냄새다. 해마다 찾아오는 익숙한 감각은 계절감과 그리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겨울은 온기와 향기로 가득한 계절이다. 추운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있어서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것 같다. 손난로 대신 건네주는 캔커피의 따스함이나 코트 주머니에 넣은 꼭 잡은 두 손의 온기는 겨울을 아름답게 만든다. 몸과 맘을 데워주는 찌개를 곁들인 집밥은 그 자체로 사랑이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봄을 기다리면서 이제 따스함을 나눠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