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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Dec 11. 2024

우울할 때마다 카페로 간다

 막막한 공허감을 감당하기 힘들 때 나는 카페에 간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집 앞 스타벅스나 메가커피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말소리와 음악소리 크고 작은 화이트노이즈에 귀를 기울인다.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창 밖의 풍경을 구경한다. 시각과 청각을 통해 들어오는 여러 가지 정보를 천천히 받아들인다.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감각에 집중한다. 뇌가 한 가지 감정에 매몰되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그러다 보면 불안감이 점점 잦아든다. 기분이 좀 나아지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어제는 병원을 나오는데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히고 답답했다.


 로비에 있는 빽다방에 들어가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앉았다. 점심시간이라 붐비는 인파 속으로 잠시 몸을 피했다. 5분쯤 지나자 갑갑함은 차츰 사라졌다. 공허감이나 불안김은 소나기와 비슷하다. 갑자기 예고 없이 찾아와서 세차게 쏟아져도 시간이 지나면 그친다. 감정에 매몰당하지 않으려면 우산을 쓰거나 피할 곳을 찾는 것이 효과적이다. 얼마 전까지는 무작정 혼자 있었다. 우울감은 사람을 고립되게 만든다. 불 꺼진 방 안에 누워서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온라인은 연출된 행복을 과시하는 전시장이다. 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혐오나 자괴감이 내면에 자리 잡는다.


 우울감은 늘 공허감을 동반한다. 공허감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어둠 속에서 나를 노리고 있는 노란 눈을 한 짐승 같은 감정이다. 매번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기습을 당한다. 그럴 때마다 가슴 한가운데가 내려앉는 느낌이 든다. 마음을 추슬러보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심장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버린 것 같다. 텅 빈 것처럼 허전하고 먹먹한 기분은 정말 괴롭다. 사는 동안 내내 공허감과 허무감에 시달렸다. 잊으려고 애쓴 적도 있고 눈을 돌리고 피해 다닌 적도 있다. 아직 당당하게 맞서 싸워 이긴 적은 없다. 여전히 자주 진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지면 지는 대로 내버려 둔다.


 짓밟혀서 먼지투성이가 된 몸을 털고 일어난다. 그리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안으로 들어간다. 불안정하지만 쏟아지는 감정의 소나기를 피하는 방법을 하나씩 시험해 보는 중이다. 얼마 전까지 나는 맞서려고 희망이나 긍정을 끌어다 억지로 덕지덕지 붙였다. 경각심과 위기의식을 단단한 갑옷처럼 두르고 지냈다. 하지만 무거워서 휘청거릴 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때쯤 7년 만에 컴백해서 유퀴즈에 나온 지디의 인터뷰를 봤다. ‘더 이상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진다.’ 그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발버둥 치면서 나는 나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나약한 스스로를 비난하고 초라한 자신을 미워했다. 나는 끝까지 내 편이어야 하는데 내가 내게 등을 돌렸다. 그래서 혼자일 때 유난히 불안과 우울을 더 심하게 느꼈던 것 같다. 다시 나를 또 미워하고 비난하게 될까 봐 내 안의 내가 겁을 먹었던 것이다. 이제는 나를 다그치거나 힐난하지 않는다. 나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내 마음은 금이 간 유리처럼 불안하고 배추흰나비의 날개처럼 쉽게 찢어진다. 자주 괴롭고 수시로 고통스럽다. 혼자서 견디기 힘든 공허감과 허무감이 찾아오면 이제는 피난처를 찾아 떠난다. 주저앉는 것보다 그 편이 좋다.


 세차게 내리는 장대비 같은 우울감을 맞으면서 내면이 매몰되는 것보다 낫다. 주입식 교육을 12년간 받으면서 우리는 늘 문제를 푸는 연습을 했다. 한국인에게 문제풀이는 거의 습관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마음이 힘들 때 해법을 찾는 연습은 어색하고 생소하다. 불혹을 목전에 두고 아픔에 적응하는 최적화된 방법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수식어가 없다. 시작은 그냥 시작이다. 늦고 빠름은 없다. 오래된 문제를 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나를 다그치고 과거를 원망하는 태도를 버리기로 했다. 자주 실패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도 많겠지만 괜찮다. 계속하다 보면 뭐라도 될 것 같다.


 정말 괴로울 때는 나를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카페의 따뜻한 조명 아래 웃고 떠드는 이들을 부러워하고 한 편으로는 미워했다. 지금은 아니다. 사람들을 보면서 내 안에 없는 감정을 채워 넣는다. 앞으로도 자주 절망하고 수시로 실망하는 날들을 보낼 것이다. 삶은 급변하지 않는다. 갑자기 좋아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삶은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소나기는 지나간다. 장마도 한 철이다. 어떻게든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커피수혈 대신에 생기와 활기를 수혈하러 카페에 간다. 내 안에 없는 것들을 밖에서 주워 담는다. 없으면 채우면 된다. 내면이 텅 비었다면 밀어 넣으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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