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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민 Dec 11. 2024

작은 화분 하나

 나이가 들수록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내가 정말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나는 똥멍청이자 헛똑똑이다. 자학이나 자조가 아니다. 현실을 깨닫고 보니 이제야 제대로 보인다. 지금까지 나를 열심히 포장하고 살았다. 없어도 있는 척 몰라도 아는 척 약해도 강한 척했는데 다 의미 없는 짓이었다. 고고한 척 뒷짐을 지고 가면을 쓰고 행동했다. 그렇게 이미지를 연출하고 열심히 연기하는 동안 정작 내면은 초라하고 황량했다. 허세를 부릴수록 괴로웠고 위선을 덮어쓸 때마다 외로웠다.


 인간은 스스로를 속일 수 없는 존재다.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언젠가는 다 드러난다. 바닥 아래 나락으로 떨어지고 보니 나는 혼자 일어서지도 못하는 나약한 존재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라한 바보라는 사실을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로 받아들였다. 눈물이 나고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런데 그때 내 안에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텅 빈 황무지 위에 작은 꽃이 핀 화분 하나가 보였다. 손톱만 한 꽃이 간신히 들어가는 술잔만 한 작은 화분이 바로 내 그릇의 크기였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를 부끄러워하고 초라하게 여겼다. 그러나 진짜 부끄러운 행동은 허장성세를 부리면서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깨달음이나 진리 그리고 이치를 운운할만한 깊이가 없다. 보고 듣고 배워야 할 것들만 많다. 나약함을 인정하고 멍청함을 솔직하게 받아들였다. 이제 더는 내가 부끄럽지 않다. 남들보다 못났다고 남들만큼 못한다고 내 입으로 말해도 괜찮아졌다. 그동안 자신을 미워하고 스스로를 혐오했다. 그래서 초라한 내면을 위장하고 삶을 교묘하게 포장했다. 앞서 가는 이들을 비난하고 내 뒤에 서있는 이들을 조롱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고립된 인간이 됐다. 소라게처럼 내가 만든 무의미한 욕망의 껍데기 안에 숨어 지냈다.


 그릇의 크기를 운운하면서 타인의 삶을 평가했지만 정작 나는 합리화 속에 몸을 숨겼다. 비겁한 겁쟁이였다. 단단한 껍질을 쓰고 있는 동안 늘 혼자였다. 솔직하게 내 모습을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거리감을 느끼는 이들은 내게서 멀어졌고 나 역시 거리를 벌리면서 사람들을 밀어냈다. 지인들을 만나는 일이 점점 줄었다. 그러다 심리적인 고립감이 찾아왔다. 외로움은 괴로움으로 이어지는 연쇄작용을 부른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일은 자신을 고통 속에 방치하는 것이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스스로를 방치하고 학대했다.


 원하는 것들은 늘 멀리 있었다. 아득하게 먼 곳에 있는 성공이나 이상을 꿈꾸면서 지냈다. 정작 현실은 누구에게 말할 수 없을 만큼 초라했다. 남들 앞에서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던 진짜 이유는 나에게 있다. 스스로가 부끄러워서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나설 수 없었다. 그래서 포장하고 연기하면서 살았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소식을 끊고 지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나를 실패한 사람이라고 비난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응원하거나 걱정해 줬다. 나를 비난하고 미워한 것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미워하면서 은둔하듯 살다가 크게 넘어지면서 엉망이 됐다.


 진짜 내 모습이 눈에 박혔다. 비참하고 초라했다. 다시 껍질을 쓰고 그대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때 내게 손을 내밀어준 대학시절의 동기들과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인연들이 정말 고맙다. 늦지 않았다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 사람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제 나는 껍데기 밖으로 나왔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삶은 한결 가벼워졌다. 남들처럼 실수하고 남들만큼 실패를 겪으면서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좋은 날보다 힘든 날이 앞으로 훨씬 더 많겠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좋은 날씨를 즐기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나는 그릇이 작은 인간이다.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서는 이제 부끄럽지 않다. 내 그릇의 크기를 확실하게 알았다. 제일 먼저 나를 포장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그만뒀다. 억지로 화려한 꽃이나 곧게 뻗은 나무를 옮겨 심으려고 애쓰지 않을 생각이다. 지금까지 나는 손바닥에 바다를 퍼담으려고 했다. 채울 수도 없는 거대한 욕심을 담으려고 애쓰느라 고통스러웠다. 나를 향한 무의미한 욕심을 내려놨다. 깨달음이 아니다. 분에 넘치는 탐욕을 늦었지만 이제 내다 버렸다. 작은 화분에 담은 꽃 한 송이면 된다. 내 작은 그릇은 굳이 더 채울 필요 없다. 이미 차고 넘친다. 나에게 어울리는 소박한 삶을 담으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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