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잔을 대신하는 글
살아가는 일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 뜻대로 되는 일보다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 월등하게 많다. 기대했던 일은 실망스러운 결과로 돌아오고 믿었던 사람은 내가 건넨 진심을 쓰다 버린 휴지처럼 내버리고 떠나간다. 나이가 들어도 몸으로 부딪혀가며 경험의 덩치를 키워도 상처 받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엇갈리는 마음은 언제나 가슴속에 서늘한 흉터를 남기고, 떠나간 것들에 무던해지려 노력해보아도 아쉬움은 해 질 녘 그림자처럼 길게 이어진다. 성취에서 오는 만족감은 한낮의 낮잠처럼 얕고 짧은데 상실에서 느끼는 회한과 후회는 겨울밤처럼 길고 차갑고 또 막막하다.
스스로의 삶에 비참하다는 꼬리표를 붙이지 않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목에 건 이름표에 충실한 하루를 산다.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눈은 손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며 분위기를 읽는다. 모니터에 고정된 두 눈이 뻑뻑함을 느낄 때. 뻐근한 뒷목을 손으로 주무르며 바라본 창 밖에 첫눈이 꽃잎처럼 흩날리는 것을 보며 ‘나는 정말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하는 물음이 떠오른다. 분명 삶의 행복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일의 행복이라는 단어보다 5천 원짜리 무작위 추첨으로 손에 쥔 일주일짜리 행운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다가오는 주말 평범한 삶을 살던 누군가는 로또를 맞을 것이고 그 사람보다 더 평범한 삶을 사는 또 다른 누군가는 5천 원을 주고 산 일주일짜리 행운을 한 손으로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을 것이다. 당첨이 아니라는 사실이 씁쓸하다기보다 잠시나마 혹시라는 기대감을 품었던 자신의 모습이 조금 서글프게 느껴진다. 불을 끄고 침대 위에 누워 핸드폰 화면에 뜬 먼 나라의 휴양지를 검색해본다. 투명하고 맑은 물빛. 보기 좋게 그을린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칵테일을 마시며 환하게 웃고 있다. 손가락으로 사진을 이리저리 넘기다 사진 몇 장을 저장한다. 그리고 달력에 나만 아는 계획을 하나 더 적어 넣는다. 그리고 또다시 정신없이 바쁜 몇 주가 지나고 나면 빼곡하니 차있던 달력 속의 계획들은 말끔히 지워질 것이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퇴근길 술 한 잔 할래?라는 연락으로 만나 삼겹살 2인분과 소주 두 병 맥 주 한 병을 시켜놓고 두 시간 내내 티브이 화면 속 야구 경기만 바라본다. 야구 얘기만 실컷 늘어놓다가 꺼낸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돌아온 ‘사는 게 다 그렇지’라는 대답.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 익숙한 이미지가 떠올라 술잔을 건넨다. 희망이나 이상 그리고 꿈과 같은 단어에서 어색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단어들에 어색함을 느끼는 자신을 보며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러면서도 차라리 빨리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때때로 간절해진다. 너무 어리지도 늙지도 않은 지금이 혼란스럽고 갑갑하다. 답이 정해져 있는 시험 문제를 풀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두꺼운 전공 서적 사이 숨겨져 있던 힌트를 찾아 긴 답안지를 만들어내고 받던 인정과 칭찬이 가끔 생각난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런 작은 것에도 성취감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며 웃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리운 것이다.
힘들고 아프고 갑갑한 날들을 보내며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매일 같이 고비를 넘기면서 산다. 그러나 그런 고비를 넘기며 언제나 매일을 살아냈다. 이름 대신 직급으로 불리며 인정 대신 평가받으며 살고 있다. 깨지고 당하고 때론 밀려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 꿈이나 희망 그리고 행복 같은 거창한 단어를 빌려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또 내일을 오늘처럼 살아낼 것이다.
떠나간 것들에 후회하고 잃어버린 것들에 때때로 깊은 한 숨을 내쉬지만 그래도 여전히 살아갈 것이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마저 입에 털어 넣으면 언제나 다시 자리로 돌아가 하던 일을 마저 끝내야 한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삶이라 정답을 모르지만 해답을 찾으려 열심히 부딪혀왔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하루하루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당신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긴 터널 같은 밤이지만 아침을 기다리면 오늘과는 다른 새로운 내일을 살 수 있다. 분명히 살아가는 일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쉽지 않은 일을 지금까지 매일매일 해낸 대단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