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에서 볼드로

by 김태민

김태민, <이펙터 CUT>, 종이에 색연필, 14x24cm.

안경을 새로 샀다. 심경의 변화를 머리스타일로 드러내지 않는 나는 가끔씩 안경을 바꾼다. 쓰던 금자안경을 중고거래하고 이펙터를 주문했다. 거울을 보는데 문득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펙터를 선택했다. 선이 얇은 내 얼굴에 굵은 선을 추가하고 싶었다. 입문용으로 검은색 CUT을 골랐다. 평행사변형에 가까운 형태다. 충동적이었지만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굵고 두꺼운 뿔테는 처음이다. 무게는 기존에 착용하던 뿔테보다 30% 정도 무거워졌다. 1960년대 아메리칸옵티컬의 stadium을 베이스로 디자인한 안경이다.


구글에서 사진을 찾아봤다. 오리지널보다 볼드함을 한껏 살려서 아예 새로운 안경이 됐다. 특이해서 마음에 들었다. 과감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이펙터는 마니아층이 뚜렷한 브랜드다. 어린 시절 유치원에서 만든 수수깡 안경이 생각나는 디자인이 시그니처다. 볼드한 디자인은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리는 편이다. 과거에는 불호였지만 지금은 취향이 조금 변했다. 계속 보다 보니 이쁜 점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보면 닫혀있던 마음의 문이 천천히 열리게 된다. 두꺼운 뿔테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나도 달라졌다. 갈대 같은 취향을 나이 탓으로 돌리고 안경을 써봤다.


눈길이 가면 손길도 따라간다. 라시트포나 블링크에 갈 일이 있으면 어쩌다 한 번씩 얼굴이 얹어봤는데 나쁘지 않았다. 두껍고 묵직한 8미리 시트가 주는 존재감은 남다르다. 쓰는 순간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임팩트를 갖게 된다. 금자안경의 유려한 만듦새나 TVR의 섬세한 디테일을 선호했는데 이펙터가 품고 있는 단순한 강렬함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매력은 우열을 나눌 수 없다. 독보적인 개성은 종류를 막론하고 모두 다 매력이라고 부를 수 있다. 마음은 날씨처럼 순식간에 변한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처럼 전조 없이 달라진다.


취향은 그릇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 물과 닮았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변했다. 그때는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맞았다. 두꺼운 뿔테는 양립하기 힘든 두 가지 강점을 갖고 있다. 개성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정체성을 가려준다. 검은 뿔테를 쓰면 누구나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 슈퍼맨이 클라크 켄트가 되는 것처럼 누구나 평범해 보이는 인상을 갖게 된다. 이펙터 안경처럼 크고 두꺼운 뿔테는 쓰는 순간 안경에 시선이 닿는다. 이미지만 남고 얼굴은 흐릿해진다. 나를 지우고 싶을 때 뿔테를 쓴다. 반대로 특이한 디자인은 안경을 쓰는 사람의 취향을 말해준다.


이펙터는 남다른 취향을 표출하고 싶은 이들에게 나쁘지 않은 선택지다. 아넬형 안경이 트렌드를

넘어 스탠더드가 된 안경씬에서 이만한 대안도 없다. 자크 듀랑, 규파드, 레스카 같은 브랜드도 멋지지만 프렌치스타일은 아직은 손이 가지 않는다. 마음은 갈대라 언젠가는 눈길이 가다 손길이 닿을 일디 생길지도 모르겠다. 베이직한 기본형 아넬을 좋아하다 볼드한 이펙터로 넘어왔다. 아넬을 남들 다 쓰는 클론템으로 치부할 생각은 없다. 살아남은 디자인은 구식이 아니라 클래식이 된다. 아넬은 여전히 좋은 디자인이다. 다만, 너무 오래 착용했다. 껍데기를 교체할 때가 됐다.


마음이 소란스러운 연말연초를 보냈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의미를 담아서 안경을 선택했다. 물건을 고르면서 바람이나 소망을 담을 때가 있다. 다이어리를 사면서 새로운 한 해가 잘 풀리기를 바라듯이 안경을 샀다.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가 풀리듯이 크고 작은 일들이 하나씩 해결되면 좋겠다. 거울을 볼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내 모습이 전보다 더 강해졌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아무도 몰래 담았다. 그동안 잘 쓰고 다녔던 안경을 중고로 팔면서 이전의 나를 떠나보냈다. 머리카락과 미련을 같이 잘라내는 것처럼 복잡한 마음을 안경과 함께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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