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넬 그리고 마니아

by 김태민
김태민, <줄리어스타르트옵티컬 AR>, 종이에 색연필, 14x16cm.

아넬은 이제 뿔테안경을 의미하는 대명사가 됐다. 거의 모든 브랜드마다 아넬형 안경을 자체 라인업으로 두고 있다. 경쟁은 전쟁으로 변한 지 오래다. 아직까지 아넬전쟁을 종결할 만한 모델은 나오지 않았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아넬형 안경도 저마다 차별화된 특징을 갖고 있다. 마니아의 세계는 디테일이 좌우한다. 미세한 취향의 차이를 고려한 브랜드들의 섬세한 상술은 몇 년째 잘 먹히고 있다. 분기마다 새로운 아넬형 안경이 쏟아져 나온다. 브랜드는 생산하고 마니아들은 소비한다. 하지만 까탈스러운 취향을 가진 안경애호가들의 입맛에 맞는 완벽한 아넬은 없다.


60년대에 생산된 오리지널 아넬이 최고일까? 국내외 편집샵에서 빈티지 안경을 취급하지만 대중적인 선호도는 낮은 편이다. 비싼 가격이 진입장벽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아넬마니아들은 아넬이라는 스타일을 좋아할 뿐 선호하는 브랜드는 제각각이다. 똑같은 아넬형이라도 전부 다르다. 디자인은 같지만 디테일이 다르다는 의미다. 엔드피스 좌우에 위치하는 마름모꼴 리벳은 아넬의 상징이다. 브랜드마다 리벳의 크기, 위치, 비율이 제각각이다. 하만옵티컬의 월리스나 TVR의 1949시리즈는 돌출형 리벳을 썼다.


국내 아넬안경의 터줏대감인 타르트옵티컬은 표면가공을 통해 돌출된 부분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이펙터에서 출시한 아넬형안경 tone은 이펙터만의 독자적인 리벳을 달고 나왔다. 프레임몬타나는 줄곧 프렌치 스타일의 빈티지 프레임을 복각해서 출시했었다. 그러다 뒤늦게 FM24를 들고 아넬전쟁에 참전했다. 익숙한 아넬형이라 별특색 없어 보였지만 리벳을 925 실버로 만들었다. 리벳의 재질에 차별화를 두면서 마니아들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TVR은 녹이 슬지 않는 SPM 합금으로 리벳을 만든다.


한정판으로 출시된 스페셜에디션은 리벳을 SPM 대신에 금으로 만든다. 줄리어스타르트는 골드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은색 리벳을 금색으로 도색해서 출시하기도 했다. 슈퍼패미콤 시절 파이널판타지에서 자주 보던 팔레트스왑 같은 색놀이나 다름없지만 반응은 제법 좋았다. 안경브랜드를 먹여 살리다시피 하는 효자라인업은 마니아들이 열광하는 차별화된 디테일의 미학을 품고 있다. 마니아는 내 눈에만 보이는 디테일에 만족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별 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두고 별 것 아닌 것에 감동하는 것이 마니아다.


디자인은 결국 소비자들의 취향이 반영돼서 나오는 결과물이다. 아넬의 이름값만 믿고 대충 카피해서 만들면 철저하게 외면당한다. 가성비가 좋아도 소용없다. 안경은 디테일에서 만족감을 줄 수 없다면 결코 스테디셀러가 될 수 없다. 섬세함에서 오는 감동이 있어야만 마니아들의 마음과 지갑이 동시에 열린다. 안경수집가와 안경마니아는 다르다. 둘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디테일에 대한 선호도다. 수집가는 디테일에 애착을 갖지만 마니아는 디테일에 집착한다. 매출은 수집가가 더 크게 올려 줄지도 모르겠지만 안경 브랜드를 롱런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마니아들이다.


마니아는 한 번 만족하고 나면 눌러앉는다. 여간해서는 등을 돌리지 않는다. 믿어주고 지지해 주면서 소비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응원한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이유 만으로 맹목적인 애정공세를 벌이는 예스맨은 아니다. 초심을 잃으면 질책하고 불만과 비판을 담아서 목소리를 낸다. 애정은 변해도 애증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사랑받는 브랜드들은 다들 두터운 마니아층을 두고 있다. 안경마니아들은 1mm 차이로 미와 추를 구분하는 섬세한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모든 마니아들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아넬형 안경은 끝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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