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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풍경

by 김태민

계절이 변하면 도시는 옷을 갈아입는다. 눈에 익은 주변 풍경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가을은 동네를 내려다보는 관모봉 너머 수리산에 머무는 중이다. 저녁이 되면 선선한 가을바람이 산 아래로 내려온다.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가을의 손길은 아직 남아있는 여름의 흔적을 착실하게 지우고 있다.


청량한 빛깔의 여름하늘이 사라진 자리에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창한 가을날 만안청소년수련관 옥상정원을 찾았다. 탁 트인 하늘아래 안양8동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저 멀리 범계와 과천까지 보인다. 40년 가까이 안양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계절을 즐기기 좋은 명소들을 알게 됐다. 수련관 옥상정원은 별 보기 명소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밤에 별이 잘 보인다. 저녁산책을 마치고 별을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무렵 가볼 만한 명소는 안양천이다. 호안교를 지나 서로교까지 걷는 길은 초여름의 생명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하천길을 따라 걷다 보면 윤슬아래 헤엄치는 잉어무리가 보인다.


모래톱으로 이어지는 습지는 오리들의 보금자리다. 들꽃으로 무성한 풀숲 위를 날아다니는 꿀벌과 흰나비도 만날 수 있다. 야경도 예쁘다. 늦은 저녁이 되면 빛에 물든 서로교는 상아색으로 변한다. 완연한 봄날 안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수의과학검역원 부지 내 벚꽃정원이다. 수령이 100년에 가까운 오래된 벚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커다란 벚나무들이 마치 꽃으로 만든 산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벤치에 앉아 내리는 꽃비를 보고 있으면 서정시나 노랫말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든다. 근처 어린이집에서 소풍을 나온 아이들이 벚꽃 아래 뛰어노는 모습은 마치 예쁜 동화 같다. 꽃을 보는 동안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환상적인 풍경 속에 있다 보면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안양과 광명을 잇는 충훈대교는 노을을 보기 좋은 곳이다. 서쪽으로 해가 넘어가면 건너편에 보이는 와룡산이 붉게 물든다. 낮고 완만한 능선을 천천히 감싸는 산그림자는 부드러운 감청색이다. 습지를 품고 있는 안양천은 해질 무렵이 되면 은빛으로 변한다. 잔물결에 녹아든 햇살이 진주를 깔아놓은 것처럼 반짝인다.


고개를 돌리면 금빛 노을 아래 고층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따뜻한 색온도가 느껴지는 색감을 보고 페루 살리네라스 고원의 소금기둥이 떠올랐다. 보랏빛으로 변하는 하늘을 배경으로 불이 하나 둘 들어오는 아파트의 야경도 참 예쁘다. 강도 좋지만 산도 좋다. 여름날의 병목안은 정말 멋진 풍경을 품고 있다.


병목안 시민공원은 여름에 제일 싱그럽다. 폭포 앞 잔디광장 벤치에 앉으면 수리산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푸른 산은 굽이치는 물결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잔잔하게 비 내리는 날 안갯속에서 잠자는 산의 모습도 운치 있다. 사람들이 많을 때는 활기찬 기운이 느껴져서 좋다. 한적한 이른 아침의 고요함도 좋아한다.


아름답고 멋진 곳이 많은 안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만안도서관이다. 산속에 있는 도서관이라 자연과 맞닿아있다. 계절의 변화와 완연한 계절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좋아한다. 장대비가 내리는 여름은 빗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읽는다. 함박눈이 내리면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창가에 기대서 한참 동안 눈을 구경한다.


4층에 있는 탁 트인 야외휴게실에서 바람을 쐰다. 도로 위를 지나는 차들이 꼭 장난감 같다. 만안구와 동안구의 경계선이 눈에 들어온다. 꼭 레고로 만든 것처럼 아기자기하다. 바람이 불면 숲의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파도소리가 도서관을 감싸 안는다. 좋은 계절이다. 색감과 빛깔이 모두 고운 계절이다. 안양은 늘 아름답다. 어디를 가도 어디를 봐도 전부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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