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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모래성

by 김태민

늦봄이다. 아침을 먹고 명학공원을 산책했다. 초여름을 앞두고 공원의 나무들은 옷을 갈아입었다. 무성한 이파리를 달고 있는 푸른 가지는 새의 날개를 닮았다. 바람이 불면 마치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움직인다. 싱그러운 계절감이 느껴지는 풍경 속을 천천히 걸었다. 산책로를 덮은 나뭇잎 그림자 사이로 물감 같은 햇살이 번졌다.


이맘때의 햇빛은 투명하고 맑은 윤슬을 닮았다. 뛰어노는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하얗게 물들였다. 해는 느린 속도로 하늘을 유영하면서 온 세상에 반짝이는 비늘 같은 볕을 뿌렸다. 공원 놀이터 옆을 지나는데 아이들이 만든 모래성이 보였다. 플라스틱 삽과 작은 양동이가 옆에 놓여있었다. 홀로 덩그러니 서있는 모습이 외롭게 느껴졌다.


삼단으로 쌓아 올린 모래성은 제법 튼튼해 보였다. 작게 구멍을 파서 입구와 창문을 표현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흙장난을 하다 모래성을 만들고 집에 갈 때가 되면 늘 아쉬웠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가져갈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놀이터를 떠나면 금세 사라졌다. 집으로 가는 동안 전부 다 잊어버렸다.


놀이터는 주인이 없다. 놀다 떠나면 새로 온 아이들의 차지가 된다. 우뚝 솟은 모래성은 장애물에 불과하다. 무심한 손길 혹은 날 선 발길 앞에 성은 허무하게 무너진다. 작은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애써 만든 모래성이 사라지면 아쉽지만 감정의 온도는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애정은 쉽게 사라지는 것들에 깃들지 않는다.


곧 사라질 것들을 향해 잠시 눈길은 줘도 마음은 주지 않는다. 본능이다. 흔적이 남지 않는 사건이나 사람은 기억 속에 앉을자리가 없다. 이름표도 없이 부유하다 시간의 흐름 속으로 멀리 떠내려간다. 살면서 많은 일을 겪었지만 정작 마음속에 남은 것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내면에 뿌리를 내리고 서있는 기억의 집으로 들어가는 문은 단단히 잠겨있다.


추억이 덕지덕지 묻은 오래된 열쇠를 꺼내서 자물쇠를 푼다. 문을 열면 지금은 사라진 덕천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로 옛 모습을 간직한 대농단지가 겹쳐 보인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고이 간직한 옛날 우리 동네 풍경이 머릿속에 영화처럼 떠오른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기억의 빛깔은 그대로다. 색감이 퇴색되거나 화질이 열화 되지 않았다.


삶은 놀이터와 같다.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잠시 놀다 때가 되면 떠나는 존재다. 끝이 있어서 슬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답다. 계절과 마찬가지다. 예쁜 꽃은 지고 고운 낙엽은 흙이 된다. 하지만 계절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은 기억 속에 남는다. 열심히 만든 모래성은 무너지겠지만 살다 간 흔적은 남는다.


좋은 날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받은 경험과 사랑했던 순간은 추억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때 묻은 흔적은 익숙한 온기를 품고 있다. 끌어안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끔씩 지난 시절을 떠올리면서 기억의 집을 조용히 돌아다녔다. 잠겨 있는 문을 일일이 열어보지는 않았다. 그저 긴 복도를 지나다니면서 좋은 기억들만 훑어보고 문을 닫았다.


빨간 상처가 선명한 기억을 꺼내보면 여전히 아프다. 날 선 말들이 가시처럼 박혀있어서 손을 베일까 봐 조심스럽게 만지다 도로 내려놓았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면 그때는 지금보다는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래성이 허물어지듯이 전부 다 사라지기를 원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고통이 갖는 의미를 알게 됐다.


좋은 일이나 나쁜 일 모두 흔적이 남는다. 무의미한 순간은 없다. 오랫동안 나는 결핍을 결함으로 여겼지만 상처 위에 돋은 새살을 확인하고 지금은 용기를 얻었다. 이해되지 않는 일들은 하나둘씩 놓아줬다. 핏물이 마르지 않은 환부는 그대로 놔둔다. 때가 되면 봄이 오듯이 새살이 돋을 것이다. 설령 아물지 않아도 괜찮다. 살다 보면 언젠가 의미를 깨닫게 되는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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