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를 이야기하고, 그것을 WHAT으로 증명해야 한다
스타트업의 Product Owner로서 내 하루는 수많은 'WHAT'과의 전쟁이다. 백로그에 쌓인 기능 명세, 이번 스프린트에 처리해야 할 JIRA 티켓, A/B 테스트 결과 데이터…. 우리는 늘 "무엇을 만들까?"와 "어떻게 구현할까?"에 매몰된다. 하지만 정작 팀원들이 지쳐갈 때, 혹은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사항이 충돌할 때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은 가장 본질적인 질문, 바로 'WHY'였다.
사이먼 시넥의 《스타트 위드 와이》는 단순히 마케팅이나 리더십 개론서가 아니다. 나에게는 이 책이 '가장 강력한 제품 기획 지침서'로 읽혔다.
PO는 숫자에 약한 존재다. DAU, 리텐션, 구매 전환율 같은 지표가 떨어지면 불안해하고, 오르면 안도한다.
하지만 책에 나온 리틀리그 야구단 이야기에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생계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는 억만장자에게 돈은 단지 점수를 매기는 도구가 된다." 우리가 스타트업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매출 그래프를 우상향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게임의 결과(점수)일 뿐, 게임을 하는 이유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팀원들에게 "이번 달 목표 매출 20% 달성하자"라고 독려하는 건, 야구 선수에게 "점수판 숫자를 올려야 하니까 뛰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진짜 리더라면 점수가 아니라, "우리가 왜 이 게임을 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 '이유'가 명확할 때, 팀원은 점수판이 잠시 불리하더라도 역전을 꿈꾸며 뛸 수 있다.
제품 로드맵을 짜다 보면 온갖 유혹에 시달린다. 경쟁사가 도입한 기능, 투자자가 좋아하는 트렌디한 기술, 당장 매출을 당겨올 수 있는 프로모션 기능들. 이것저것 다 넣다 보면 제품은 정체성을 잃은 '누더기(Feature Creep)'가 된다. 저자가 말한 '셀러리 테스트'는 내가 본 그 어떤 우선순위 설정(Prioritization) 기법보다 강력했다. 우리의 신념(WHY)이 '건강'이라면, 아무리 맛있는 초콜릿 케이크가 할인 중이어도 장바구니에 담지 말아야 한다. 오직 셀러리만 담아야 한다.
폭스바겐이 고급차 시장에서 실패하고, 도요타가 렉서스라는 별도 브랜드를 만든 이유는 기술력 차이가 아니라 '신념의 일관성' 문제였다.
앞으로 기획 회의에서 누군가 "이 기능도 넣으면 좋지 않을까요?"라고 물을 때, 나는 되물어야 한다.
"이 기능이 우리 제품의 '셀러리'인가요, 아니면 '초콜릿 케이크'인가요?"
리더십 파트의 에피소드도 기억에 남는다. 승무원들에게 "고객을 위해 비행기를 청소하라"고 강요하는 대신 "여기는 여러분의 사무실입니다. 깨끗한 공간에서 일하는 게 낫지 않나요?"*라고 말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상대방(팀원)의 입장에서 그 일이 갖는 '의미'를 재정의해 준 것이다. 나는 그동안 개발자와 디자이너에게 어떻게 작업을 요청했나? "일정이 급하니 빨리 해주세요" 혹은 "고객이 불편해하니 고쳐주세요"라고만 하지 않았나?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그들이 작성하는 코드가, 그들이 그리는 UI가 그들 자신의 커리어와 성장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WHY)를 연결해 주는 것. 그것이 PO인 내가 해야 할 진짜 '설득'임을 깨달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WHY는 시장조사나 인터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비롯된다"는 말이었다. 화살을 앞으로 쏘기 위해 뒤로 당겨야 하듯, 우리 제품의 비전도 '미래의 트렌드'가 아니라 '창업의 초심'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고객 인터뷰에만 의존해 제품의 방향을 바꾼다. 하지만 애플이 애플다울 수 있었던 건 고객에게 물어봐서가 아니라, 그들의 반체제 정신을 일관되게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우리 팀이 흔들릴 때 내가 해야 할 일은 경쟁사 분석 보고서를 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처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모였던 그 날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이다.
책을 덮으며 다짐한다. 훌륭한 PO는 꼼꼼한 기획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팀원들의 가슴속에 '우리가 이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심어주는 사람이다.
내일 출근하면 작업티켓을 점검하기 전에, 팀원들에게 질문 하나를 던져야겠다. "우리가 이 기능을 통해 세상에 어떤 변화를 주고 싶었는지, 기억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