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의 비밀/운, 둔, 근/성공한 화가의 성공 이유

이병철, 정주영회장도 말한 성공의 비밀 | 운, 둔, 근 그리고 겸손

by WOODYK

운(運)이 머무는 자리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인 팝아트 화가 스텔라 김과 오랜만에 긴 통화를 나눴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공'이라는 주제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꺼낸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나는 그냥 운이 좋았어."


유명 연예인들이 컬렉터로 나서고, 영국의 사치 갤러리(Saatchi Gallery)에 초대받아 한국 화가로서의 자긍심을 세계 무대에서 보여준 사람이 꺼낸 말치고는 너무도 소박했다. 하지만 통화를 이어가며 '운'이라는 한 단어 안에, 사실 우리가 평생 배워야 할 삶의 태도가 오롯이 담겨 있다는 것을.


운(運)이란


우리는 흔히 운을 요행이나 우연으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한자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 중요한 힌트가 있다. '기운'이라는 말에서 '기(氣)'는 보이지 않는 힘, 에너지를 뜻하고, '운(運)'은 움직임을 뜻한다. 즉, 기운이란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흐르고 움직이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들이 끊임없이 흐른다. 선한 에너지들이 모여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때, 그의 운명은 달라지고 삶의 결이 바뀐다. 성공한 많은 이들이 "운이 좋았다"라고 말하는 데는 이런 깊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겸손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름을 감지한 사람들의 고백이기도 하다.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성공의 3요소로 '운(運), 둔(鈍), 근(根)'을 꼽았다. 운이라는 기운이 작용해야 하고, 그 운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둔(鈍)이라는 꾸준함이 바탕이 되어야 하며, 그 꾸준함을 지탱하는 것은 근(根), 즉 근성과 열정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역시 성공의 원인을 운으로 돌렸다. 다만 그 운이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유명한 한 마디 "해봤어?"라는 행동주의 철학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운(運)은 '움직인다'는 뜻이다. 무언가를 해보려고 몸을 일으킬 때, 에너지는 비로소 흐르기 시작한다. 고정관념에 갇혀 새로운 것을 밀어내고, 행동보다 말이 앞설 때, 운은 멈추고 새로운 기운은 찾아오지 않는다. 나이키의 슬로건처럼, "Just do it." 잘 풀리지 않을수록 움츠러들기보다 먼저 몸을 움직여야 한다.


흩어진 점들이 선이 되다. 스텔라 김 이야기


내가 아는 스텔라 김은 어린 시절부터 따뜻한 사람이었다. 착했고, 자신의 삶에 성실했으며,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남달랐다. 유명해진 지금도 그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마음이 이끄는 대로 베풀려 한다.


그녀가 화가가 된 계기는 극적이다. 오랜 디자인 사업을 하며 쌓아온 인연 속에서, 어느 날 유명인 행사장의 커다란 벽면을 채워야 하는 작업을 맡게 되었다. 그 큰 공간을 디자인으로 채우는 대신, 그녀는 직접 정성을 쏟아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것을 본 사람들의 찬사가 이어지면서, 소문이 퍼지고, 그림을 요청하는 문의가 잇따랐다. 그렇게, 그녀는 화가가 되었다.


사실 그녀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디자인 사업을 택했고, 그림은 그저 손에서 놓지 않았을 뿐이었다. 화가가 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한 꾸준함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꾸준함이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했다.



통화 중에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너도 지금 여기까지 온 게 그런 거 아닐까!"


"나도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어. 그런데 생각해 보면, 늘 방황하고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도 무언가는 계속해오면서 열정을 쏟았던 것 같아. 인생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무언가를 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고. 그리고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이 있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다'는 생각. 삶에서 흩어졌던 작은 점들이 모여 하나의 선이 되고, 그 선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 졸업 연설에서 남긴 말이 겹쳐진다.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

앞을 보며 점들을 이을 수는 없다. 다만 뒤를 돌아볼 때, 비로소 그것들이 하나의 선이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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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회장의 '운, 둔, 근'이 문득 떠오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녀는 근성과 열정(根)으로 그림을 놓지 않았고, 오랜 세월 꾸준히(鈍) 살아온 삶이 있었으며, 그 위에 운(運)이 찾아든 것이다.


운이 오래 머물게 하는 것, 겸손


통화 말미에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유명해진다고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많은 사람들이 유명해졌다고 스스로 힘이 들어가서 사람들을 겸손하게 대하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보거든. 우리는 그러지 말자."


그 말에 나는 깊이 공감했다.


조직을 이끌면서도 늘 느끼는 것이지만, 직책이 높다고 권위만 앞세우면 소통은 막히고 조직은 경직된다. 진정으로 권위를 얻고 싶다면, 역설적이게도 권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다가가고, 열려 있고, 귀를 기울일 때 사람들은 비로소 마음을 열어준다.


드라마 '미생'에서 오 차장은 말한다. "버티는 게 실력이야." 하지만 버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버티면서도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 겸손은 나약함이 아니다. 겸손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이미 가득 찬 그릇에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오만해진 순간 추락한 이들의 사례는 넘쳐난다. 많은 유명인들이 겸손하지 못한 행동 하나로 쌓아온 것들을 한순간에 잃는다. 반면, 정상에 오를수록 더 낮아진 사람들은 오히려 더 오래, 더 단단하게 그 자리를 지킨다.


운이 오래 머물게 하는 힘은 겸손이다. 운(運)은 혼자의 힘으로 오지 않는다. 둔(鈍)과 근(根)은 자신의 노력이지만, 운은 주변의 모든 상황과 사람들이 나를 도울 때 비로소 작동한다. 그러니 운이 내 곁에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면, 먼저 주변에 고마움을 품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기운이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지 시간이 흐르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철학을 실제 삶에서 실천해 나가는 것, 그것이 진짜 어른이 되는 일이다.


오랜 친구와의 통화를 마치고 오래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보잘것없던 꼬마들이 세월을 거쳐 각자의 자리를 단단히 잡아가는 모습. 그 순수했던 마음이 아직도 남아 서로를 대하는 것이 더없이 고마웠다.



운·둔·근. 이 세 글자를 기억하자.


꾸준히 살아가고(鈍), 근성과 열정으로 오늘을 불태우되(根),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 운(運)을 믿자. 그리고 그 운이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늘 겸손이라는 복주머니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자.


초심을 잃지 않는 것. 유명해져도, 성공해도, 어제와 같은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 그것이 운을 붙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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