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전환 속에서 나이를 묻습니다. 계절이 가르쳐 주는 인생의 장단점
겨울이 갔다는 신호. 여름이 온다는 신호. 추위가 더위로 바뀐다는 신호. 신호등이 파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뀔 때 아주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노란불 같은 것. 봄날은 짧다. 봄날은 간다. <사람사전/ 카피라이터 정철 저>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입춘이 이미 지났지만, 뒤늦게 찾아온 한파 탓에 봄이 왔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 채 두꺼운 겨울 잠바를 껴입고 그 문턱에서 서성거렸습니다. 새벽에 일찍 눈을 뜨고 창밖을 바라보면, 어느새 아침이 찾아오는 시간이 조금씩 앞당겨졌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어둠이 채 걷히기 전부터 동쪽 하늘 끝자락에 옅은 빛이 번지고, 그것이 봄이 가까이 왔다는 자연의 조용한 신호임을 몸 어딘가에서 먼저 알아챕니다.
자연의 변화가 심신을 달라지게 한다는 것은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느끼는 일입니다. 차갑고 매서웠던 공기가 점차 온순해지고 차분해지면서, 세상의 결이 조금씩 바뀌어 갑니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는 하늘의 탁함을 씻어내어 주변을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봄기운을 머금은 온화한 공기는 대기 중의 미세먼지를 털어내지 못하고, 그것들을 그대로 품은 채 대지 위로 내려앉습니다. 차가움이 주던 선명함이 사라지고, 온화함이 가져오는 부드러운 모호함이 주변을 감싸기 시작합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함께 존재합니다. 겨울의 차가움은 두렵고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그 냉기가 주변의 공기를 맑게 씻어 세상을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봄의 온화함은 웅크렸던 몸을 기지개 켜게 하고 활동의 범위를 넓혀 주지만, 따뜻한 기류 속에 미세먼지를 걸러내지 못하는 약점을 함께 지닙니다.
이처럼 완전한 장점만을 지닌 것도, 완전한 단점만을 지닌 것도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품고, 서로를 보완하며 균형을 이루어 나가는 일임을 자연은 계절마다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빛나는 장점이 있다면, 그만큼 감추고 싶은 단점도 함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내가 지닌 장점이 어떤 이에게는 오히려 부담으로 느껴지거나 단점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살아 있음이 죽음을 품고 있고, 죽음이 또다시 삶을 간직하고 있듯이, 장점과 단점도 결코 따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안에서 공존합니다. 이 이치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나 자신과 타인을 좀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계절이 바뀌고 있습니다. 아직은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대지를 붙잡고 있지만, 이미 세상은 봄의 기운이 땅 밑에서부터 조용히 스며 올라오고 있습니다. 자연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막으려 해도 인간의 힘이 닿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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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그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고 싶어 마지막까지 한기를 부려 보지만, 정해진 때가 되면 여지없이 봄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어야 합니다. 욕심을 부리고 싶어도 자연은 그 욕심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자연이 주는 변화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칩니다. 겨울이 간직한 차가운 이성은 생명들을 한껏 움츠러들게 만들지만, 그 추위의 고난을 견뎌내며 생명들은 더 단단해집니다. 그리고 봄의 온화한 감성이 찾아오면, 생명들은 비로소 기지개를 켜고 더 멀리 날아오를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시냇가에 꽁꽁 얼어 있던 얼음은 봄기운에 스르르 녹아 넓고 유유한 강으로 흘러가고, 겨울잠에 빠져 있던 생명들은 봄의 온화함에 눈을 뜨고 조심스레 세상 밖으로 나옵니다. 자연은 그렇게 변화하며, 계절마다 지닌 저마다의 장단점을 생명들에게 몸소 가르쳐 줍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자연의 장단점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그것을 자신의 생존 방식에 녹여 스스로를 지켜 나갑니다. 겨울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처럼 느껴져도, 결국 그 자리를 독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겨울의 마지막 심술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그 순간은 잠시일 뿐, 이미 그 자리를 봄의 온화함이 조용히 채워 가고 있습니다.
한 해가 이렇게 흘러가고 어느덧 새로운 한 해가 다가왔습니다. 봄이 왔다는 것은 곧 우리가 추운 이성의 겨울을 잘 견뎌냈다는 반증입니다. 어렸을 적에는 아무리 추워도 밖에서 뛰어노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옷 속으로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조차 놀이의 일부였고, 겨울은 그저 즐거운 계절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실내의 따뜻함이 겨울을 잊게 합니다. 사람들은 바깥의 차가운 이성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한 채 늘 따뜻한 실내에 머물며, 스스로를 나약하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차가움이 전달되는 깊이만큼 봄의 온화함은 더욱 크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혹독한 겨울을 온몸으로 겪어낸 사람일수록 봄이 선사하는 따뜻함의 감동은 그만큼 진하고 깊습니다. 그런 소중한 기회를 실내의 안락함 속에 놓쳐 버린다면, 봄을 맞이하는 감흥도 그만큼 옅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추운 겨울일수록 온화한 봄은 생명들에게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함을 더욱 진하게 전달해 줍니다. 겨울의 강인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맞이하는 봄은, 그 아름다움을 반쪽으로밖에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영화 속 대사가 생각납니다. 최민식(주인공)이 윤여정(엄마)에게 고단한 삶을 대화 속에 담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봄이 오듯이 지금이 시작이다라고 아들에게 위로 합니다.
주인공: 엄마..나 사랑해?나..... 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엄마: 현우야~~현우야! 넌 지금부터가 시작이야 <영화: 꽃 피는 봄이 오면 중>
봄이 왔습니다. 하늘에는 미세먼지가 많아졌습니다. 기류가 온화하게 바뀌면서,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저 멀리 밀어두었던 먼지들이 다시 생명들 곁으로 내려앉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에도 봄은 여전히 사람들의 움츠렸던 마음을 활짝 열어 주고, 바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 줍니다. 식당 메뉴판에는 냉이와 달래가 등장하고, 봄나물 된장찌개의 향긋한 냄새가 거리를 채웁니다.
봄철이 되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호미를 들고 냉이를 캐는 모습이 어릴 적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온 동네에 냉이 된장찌개 냄새가 가득 퍼졌고, 어머니께서는 봄이 오면 어김없이 냉이 된장찌개와 냉이 무침을 밥상에 올려 주셨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냉이를 캐다 보면, 흙 내음과 함께 올라오는 냉이의 쌉싸래한 향기에 취해 어느새 꿈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봄과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 냉이 냄새가 코끝에 먼저 살아납니다.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봄마다 냉이 냄새로 가득한 추억을 남겨 두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봄은 해마다 그 잊을 수 없는 어머니와의 기억을 고스란히 되살려 데려옵니다. 냉이 된장찌개 한 그릇에 담긴 어머니의 손맛, 함께 쪼그려 앉아 냉이를 캐던 그 이른 봄날의 따뜻함이 가슴 한편에서 다시 피어납니다.
겨울의 추위가 주는 고마움과 봄이 건네는 온화함의 감사함이 교차되는 이 시점에, 자연의 모든 순간들이 생명들에게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런 자연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두터웠던 겨울 옷이 가벼워지고, 발걸음도 한결 경쾌해집니다. 실내에 움츠리고 있던 몸도 바깥의 온화한 공기에 이끌려 자연스레 밖으로 향합니다.
산책을 하며 봄 내음을 맡고, 땅 속에서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생명들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봅니다. 생명이 생동하는 봄이 왔습니다. 그리고 또 한 해의 새로운 시작이 우리 앞에 펼쳐졌습니다. 자연이 만들어 주는 이 순간들의 가치를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빛과 공기와 내음을 사진에 담기도 하고, 가슴속 깊이 추억으로 새기고 싶어 집니다.
자연의 변화 속에 봄의 설렘이 조용히 다가옵니다. 그 설렘에 우리의 마음도 활짝 열리고, 겨우내 굳어 있던 마음의 문이 부드럽게 풀립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봄이라는 단어가 가슴 깊이 설렘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그만큼 나이가 서서히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어머니의 봄이 그리워진다는 것을 느낄 때, 어느새 우리 자신도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겨울을 보내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봄이 가져오는 새로운 생명력 앞에서 기대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겨울이 남기고 간 자리에 봄이 채워 넣는 그 따뜻함이, 세월의 흐름을 이해하게 하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결코 슬픈 일만은 아닙니다.
봄과 겨울이 번갈아 오듯, 우리의 삶도 그렇게 계절처럼 켜켜이 쌓여 가는 것이니까요. 그 쌓임 속에 어머니의 냉이 냄새가 있고, 새벽 창가에서 바라보던 여린 봄빛이 있고, 살아 있음에 대한 작은 감사함이 있습니다.
봄은 그렇게 우리를 설레게 하면서도, 또한 우리에게 잊고 있었던 것들을 하나씩 기억하게 합니다. 겨울의 차가운 이성이 지나간 자리에, 봄의 따뜻한 감성이 천천히 스며들 듯이, 우리 삶도 그 과정 속에서 깊어지고 익어 갑니다.
봄이 왔습니다. 아쉽게 떠나보내는 겨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새롭게 피어나는 봄의 생명력 앞에 나이 들어감의 감사함을 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