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마음은 카피할 수 있다.
카피라이터인 제가 늘 듣는 질문 중 하나는 “카피라이팅이란 뭔가요?”입니다. 저는 늘 그에 대한 답으로 “카피라이팅은 아름다운 글쓰기보다 신경 쓰이는 글쓰기에 가깝습니다”라고 답합니다. 신경 쓰인다는 것은 알고 싶어 진다는 뜻이고, 알고 싶다는 것은 좋아하게 될 확률이 큰 마음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신경 쓰이게’ 됐다는 것은 ‘좋아한다’의 입구이기도 한 겁니다. 그 복잡한 사랑의 메커니즘을 이렇게 쉬운 글로 정리하다니요. <일본광고 카피도감 중>
카피라이터라는 직업,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단어처럼 느껴집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몇 단어, 몇 문장만으로도 움직이고 여운을 남길 수 있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때 가능합니다.
일상 속의 수많은 문장들은 카피 문구의 대상들입니다. 거창하고 복잡한 말보다 간결하고 사람의 감정을 뒤흔드는 문장이 일상 속의 언어로 작성될 때 힘이 생깁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 속 언어는 사람을 이해하는 도구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오고 가고 그 문장들 속에 사람들의 감정이 섞이게 됩니다. 세상을 보는 틀이기도 합니다. 그런 언어와 문장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뜨거운 글에 감동합니다. 그 감동적 문장들을 만들어 사람들을 행동하게 하는 일이 카피라이터의 일인 것입니다.
카피라이터는 당연히 오랜 시간 일상을 관찰하고 탐구하며 고객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감정들에 공감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 감정선을 전달할 수 있는 문장을 찾고 찾아 사람들에게 밖으로 내놓고 보여줍니다.
고객의 반응이 없다면 실망스럽겠지만 하나의 문장이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가슴속에 남는다면 카피라이터는 행복할 것입니다.
예전에는 TV속 광고에 나오는 대사들을 보는 것만으로 재미있었습니다. 지금의 현란한 영상보다는 전달하는 메시지를 간결한 문장으로 전달하고 여운을 남긴 카피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2000년대 캐논 광고 문구와 포스코 광고 카피가 생각납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캐논 광고 중"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인다. 포스코 광고 중"
카메라 속에 담기는 기록들은 우리가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캐논 카메라가 우리의 기억과 추억을 살아 있게 할 수 있다는 명문장이었습니다.
포스코 광고 문구는 세상을 움직이는 묵직한 힘의 포스코가 일상의 모든 곳에서 소리 없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세상이 정상적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기업과 상품의 이미지가 문장 속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살아 있는 광고 카피가 됩니다.
요즘은 너무 많은 정보들과 영상들이 난무하다 보니 글로서 감동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글로 전달되는 감동이 영상으로 대체되고 책 속의 문장으로 전달되던 여운이 숏츠로 전달됩니다. 카피라이터의 역할도 AI로 대체되고 일상 속에서의 카피 영감들이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일본광고 카피도감_오하림 저' 책은 TBWA KOREA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고 지금까지도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2008년부터 카피를 수집하며 모아 왔던 카피들 중 일본 카피에서 인상적인 문장들을 모아 출판한 책입니다. 모아진 카피에서 전달하는 메시지와 감정, 카피라이터로서의 시각에서 바라본 카피들의 의미들을 전달하는 책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저에게 후배가 선물로 사준 책으로 후배의 정성에 감사함의 표시로 책을 꼼꼼히 읽어 보았습니다. 개인적 평가를 해 보면 5점 만점에 3점 정도입니다. 일본 카피들의 기록들을 모아서 카피라이터로 느낀 감정과 느낌을 정리했지만, 책의 깊이나 서술하는 내용이 잘 정리되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책에 대한 평가를 몇 문장으로 요약해 보면
"카피라이팅이라는 매력적 단어보다 내용은 매력을 잃었고, 가볍게 읽지만 깊이는 느낄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 책. 하지만 후딱 해치울 수 있는 책"
이 책을 읽고 싶으신 분들은 광고분야전문가인 박웅현저자가 쓴 '여덟단어' 라는 책을 읽어 보는 걸 추천합니다.
https://brunch.co.kr/@woodyk/969
앞으로 보게 될 카피들은 좋다는 막연한 감정 뒤에 있던 왜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설명됩니다. 문장의 리듬과 구조 같은 카피의 작동 방식부터 기획자의 전략, 단어가 반영한 시대의 맥락까지 담아보았습니다. 하나하나의 카피가 사람들이 기다리던 나만의 좋다가 되길 바라면서요... <일본광고 카피도감 에필로그 중>
가끔 너무도 당연한 말에 무너질 때가 있지 않나요? 당연하지만 동시에 잠깐 잊고 살던 말이기도 한, 사실 그 자체를 알려주는 것만으로 어떤 힘이 발휘됩니다.
도시는 사람이 만들고, 시골은 그러한 비율이 낮은 건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팩트에 ‘신(자연)’이 잠깐 비집고 들어옵니다.
도시의 제작자는 사람이지만, 시골의 제작자는 신이라니. ‘그래 맞아’라는 짧은 감탄과 함께 시골은 도시 따위는 범접할 수 없는 대단한 곳이 되고 맙니다.
언젠가 선배에게서 들었던, “카피를 쓸 때 모두에게 말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 사람에게 말한다고 생각하고 써봐”라는 조언이 떠오릅니다.
카피라이터들은 그것을 ‘뾰족한 카피’라고 부르는데요, 얼핏 다수를 포기하는 선택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강력한 힘을 부여하는 ‘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카피 역시 마이클 잭슨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히 저격했으니까요.
간혹 카피라이터는 일반 사람들이 쓰지 않는 특이한 말을 쓴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카피라이터는 가장 보통의 언어를 씁니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말의 합으로 이루어져야 가능한 많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단어뿐 아니라 내용 또한 같은 이유로 이해하기 쉽고 당연한 말들을 주로 씁니다. 그저 우리가 잊고 있던 이치를 하나 찾아서 꺼내놓는 것이죠.
일본 포카리스웨트는 이렇듯 언제나 ‘땀’의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언제나 땀 흘리는 청춘을 응원하지요. 그래서 이 야구 선수들의 모자 속 다짐을 통해 땀을 흘리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힘을 줄 수 있다는, ‘땀의 힘’을 전하고자 합니다.
“네가 흘린 그 땀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라는 카피에는 그러한 뜻이 담겨 있지요.
"사랑이라든지, 용기라든지 보이지 않는 것도 함께 타고 있다.(JR규슈, 철도)" 어딘가를 떠나온 사람과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는 이들, 그리고 그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을 함께 싣고 달려가는 기차. 안전하게 제시간에 도착한다는 약속 외에 기차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또 하나 늘어났습니다.
"인생은 겨울이 아니라 봄으로 끝내고 싶다. <힐데모어, 고령자 전용 주택>"
"5년 후의 톱러너는 이미 달리고 있다. <리크루트, 구인구직 플랫폼>" 마케팅은 마케팅한다는 것을 들키지 않는 것이 성공의 포인트라고요. 카피도 마찬가지입니다.
메시지를 주입하고 있음을 가능한 들키지 말아야 합니다. "5년 후엔 대기업으로 이직을 준비하세요"보다 "지금 열심히 일하는 당신, 5년 후의 톱러너가 되실 분이군요"에 마음이 더 열리는 것을 보면 말이죠.
"바다와 산에게 격려를 받는다. 어른이란 그런 것일지도 <돗토리현 이와 미초, 관공 포스터"
20대의 여행은 도전입니다. 뭐든지 처음이 많은 시기죠. 새로운 세계를 탐험해 보고 낯선 곳에 자신을 던져보는 때입니다.
30대를 지나면 새로움의 빈도는 극히 줄어들고 자극이나 트렌드를 쫒기보다는 변하지 않는 것에 자연스레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문장을 만날 때마다 세계는 결코 표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배웁니다. 같은 풍경도 어떤 단어를 얹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고, 그 얼굴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기울어지는 방향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카피를 쓰고 읽으며 매번 깨닫는 것은 결국 우리는 단어를 통해 세계를 새로 짓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평범한 단어가 모여 만들어낸 비법한 진도오가 그로 인해 읽는 사람의 세계는 아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확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