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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Sep 15. 2022

아이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를 늘 묻고 답답해한다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이에게 주는 속삭임

세명의 회사 후배들과 점심을 먹다 자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두 사람의 아이는 스스로 공부를 잘하는 스타일이다. 한 명은 기숙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있고 한 명은 아이가 대치동으로 가서 공부를 하고 싶다 해서 대치동으로 이사 온 케이스다. 나머지 한 명의 후배는 아예 아이를 키우는 방식을 공부 측면에서 바꾸어 버린 케이스다. 성적 향상을 위해 학원을 보내면서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 커졌고 늘 서로 감정적으로 싸우고 답답해하며 대화는 점점 더 단절되어갔다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에게 신경을 쓸까도 생각했지만 스스로가 공부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감정과 비용 소비를 하면서 학원을 보내야 할까 고민했다 한다.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지 인생 지가 책임지는 건데 굳이 가족끼리 갈라서야 할까.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놓아두자"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학교 선생님이 어떻게 할지를 물어볼 때도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굳이 공부시키지 않으셔도 되고 학교만 다닐 수 있게 해 주시면 됩니다. 너무 이 친구한테 신경 쓰시면서 에너지 소비하실 필요는 없으세요."라고 말을 전달했다고 한다. 공부에 목을 매지 않으니 학원비가 절약되어 학원비를 중학생인 딸 명의로 적금을 들어주고 있다고 한다. 학원을 안 다니는 아이의 표정은 밝아졌고 방에서 나와 부모와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중학교 3학년 아이가 스스로 고민하고 찾고 있는 중이라 한다. 공부를 위해 학원을 안 다니다 보니 시간도 많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을 스스로 하려 하니 집안에 평안이 왔다고 자랑한다.  여행도 아무 때나  같이 떠날 수 있는 점도 좋은 점이라 한다. 아이나 부모나 워낙 남의 눈치를 보거나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며 배짱이 있어 어디 가도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고 걱정을 많이 내려놓았다. 지금은 미용, 조리 등 기술을 배울까 생각 중이라고 한다.



대학을 준비하는 시간은 문제풀이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문제풀이를 통해 얻는 것도 있지만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어 갈 수도 있다. 모든 과정은 의미 있다. 공부를 하는 과정도 그리고 다른 길을 걷는 것도 다 그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대학을 간다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은 최종 종착역이 아니다. 현실은 또한 냉혹하다. 대학의 수준과 순위가 있다. 대학을 가는 목적이 취업을 위한 것이라면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특별한 재능이나 불명확한 방향 때문에 공부를 선택한다. 그것이 그래도 지금까지의 사회에서 성공법칙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공부에 집착한다. 무엇을 할지 명확하다면 공부가 전부가 아닐 수 있으나 그것이 불명확할 때는 대부분이 공부를 선택한다. 공부가 좋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상황이 된다. 학생수가 줄어 대학 가기는 쉬워졌다. 그런데  서울의 일부 대학은 오히려 가기가 어려워졌다. 대학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형성되고 있다. 남들과 비슷하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하는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 공식은 분명 지금 시대에는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방향을 잡지 못해 대학을 가기 위한 학원 공부를 한다. 공부가 인생의 방향에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이라도 해야 하는 분위기는 분명 사회 저변에 깔려 있다. 그것을 벗어던지기가 어렵다. 부모도 학생도 마찬가지이다. 공부를 잘해서 공부를 해 나가는 두 후배의 아이들은 공부로 승부를 걸고 그 실력으로 길을 찾아가는 것이고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을 가고 싶은 친구는 단단하게 자신의 길을 공부가 아닌 다른 쪽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도 아이도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도 차별화이다. 그것에 성공과 실패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같은 길을 갈 때 차별화는 존재할 수 없다. 일부의 비범한 사람들과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다.


오히려 대학 갈 준비시간을 자신의 인생 방향을 찾는 기회로 생각하면 더 빨리 사회에 눈을 뜰 수 있다. 공부는 때가 있지만 늦게라도 때가 아닌 것은 아니다. 사회를 살다 보면 공부는 언제라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할 수 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자리에서만 하는 게 공부는 아니다. 대학을 가는 것이 취업이나 인생의 방향을 선택하는데 옵션이 많아질 수는 있지만 또 다르게 보면 그것만 생각하기 때문에 옵션은 적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최대한 사회에 빨리 나와 사회의 흐름을 몸으로 공부하는 것도 좋다. 계속 공부만 하고 학교라는 틀에서 계속 머물다 보면 현실 인식이 떨어지고 자신의 옵션이 너무 좁아지게 된다. 책으로 보는 것과 현실은 많이 다르다. 책으로만 배울 수 없는 사회 공부가 존재한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공부도 존재하다. 그것을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책으로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부에 의지가 없는 딸에게 과감히 아이의 의견을 따르고 학원비를 적금에 차곡차곡 쌓아가며 아이의 장래 필요 자금으로 마련해주는 후배의 모습이 용감하고 보기 좋다.


아이가 공부 의지가 있다면 공부를 시키면 된다. 하지만 공부에 전혀 의지가 없다면 굳이 서로의 감정을 잃어가며 불필요한 행위를 지속하는 것은 서로에게 에너지 소모이고 시간 낭비가 될 수 있다. 그런 쓸모없는 절차를 과감히 축소하는 후배를 응원하고 그것을 선택한 아이의 미래도 응원하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단계별로 공부를 하며 살아왔다.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기에 힘든지도 모르고 해 왔다. 엉덩이의 힘으로 의자에 앉아 공부를 했다. 그리고 대학에 가고 그리고 취업을 하고 직장인으로 살아오고 있다. 인생에 정답이란 없다. 각자의 삶이 다르고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평범한 삶을 살아오고 있다. 인생을 평범하게 사는 것도 행복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게 너무 쉽게만 보이지만 평범하게 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며 산다. 하지만 늘 살아가며 허전함은 존재한다. 자신이 누구이고 자신이 어디를 가고 있는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식은 좀 나와 다른 삶은 살아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현재 차별화는 없고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대학을 위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한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부모는 그것들을 위해 보조 역할을 할 뿐이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니 아이와 엄마가 다투고 있다. 수학 학원의 강한 압박 문제 풀이에 아이는 학원 가는 것을 귀찮아한다. 엄마 입장에서는 그런 아이가 너무 나약해 보니는 듯하다.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나였지만 방으로 들어와 아이와 자기 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눈다.


“ 공부하기 싫으면 길은 많다. 공부가 전부는 아니야. 네가 하고 싶은 게 뭔지를 생각하고 그것에 공부가 필요하면 하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과감히 포기해도 된다. 다른 길을 찾는 것도 방법이야. 만약 네가 대학을 가서 다른 옵션들을 찾고 싶다면 공부를 해야 하는 거고. 네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습은 너의 진짜가 아닐 수 있어. 엄마 아빠가 이 세상에 없을 때는 너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야 해.  네가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해 보고 그것들을 달성하려면 무엇을 해 나가야 할지는 늘 생각해 봐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돈이 있어야 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도  늘 고민해야 해. 그런 과정들 속에 공부가  필요하면 진짜 열심히 너의 열정을 쏟아서 공부를 해야만 해. 그게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가 아닌 네가 살아가고 생존을 위한 고민이 되는 거야.  너의 인생은 네가 책임지는 거야. 아빠는 네가 선택하는 것에 반대하고 싶지는 않아.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조언을 해 줄 수는 있지만 걸어가는 주체는 너라는 것을 명심해. 모든 것은 너의 인생이야.”


아무 말 없이 아이는 잠이 든다. 그리고 이렇게 학원에 돈까지 내면서 아이에게 압박하고 스트레스 주는 게 맞는지 혼돈스럽다. 하지만 와이프 앞에서는 아무 소리도 할 수 없는 게 아버지의 처지이다. 그냥 아이들의 어깨가 너무 무거워 보인다. 그리고 나도 그 안타까움을 잊고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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