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DYK Oct 13. 2022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책 리뷰, 책 요약

싸울 수밖에 없다면 이겨야 한다.











생각정리



클라우제비츠 : 독일의 군인, 군사평론가. 프로이센 육군의 건설 공로자. 나폴레옹 전쟁에 참가하고 1831년 사관 학교장, 참모장을 역임. 그의 저서[전쟁론]는 전술 연구의 고전으로 높이 평가 받음_네이버 지식백과 中



“전쟁은 단지 다른 수단으로 정치를 계속하는 것이다(War is a mere continuation of politics with othermeans).” ㅡ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중



동양은 손자병법, 서양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언급한다. 경영학에도 적용되는 내용들이 많다. 전략, 전술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했고 전쟁을 이기는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라고 언급한다. 전쟁을 정치의 수단이라고 판단되면 정치의 수단으로 전쟁을 해도 된다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듯하다. 그래서 레닌과 마오쩌둥도 정치의 수단으로 전쟁을 정당화했고 그 개념을 받아들였다. 전쟁은 많은 피해를 양산하고 많은 희생을 동반한다. 그래서 전쟁은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전쟁을 시작했다면 이기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방어는 공격보다 훤씬 더 강력한 전투 형식이다. 전쟁은 침략하는 쪽보다 방어하는 쪽에 존재한다. 전쟁에서 실질적인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방어이다.ㅡ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중
전쟁의 목적이 단지 현상 유지에 있다고 해도 상대의 공격을 물리치기만 하는 것은 전쟁 개념과 모순된다. 고통을 견뎌내는 것만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방어하는 쪽이 크게 유리해졌다면 방어는 할 일을 다한 셈이니 이제 이 장점을 활용하여 반격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몰락할지 모른다.ㅡ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중


선제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적을 알지 못하고 선제공격을 하다가는 자신이 갖고 있는 리소스를 다 소진하고 전쟁에서 패배할 수 있다. 전쟁은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언제 얼마의 화력으로 어디를 공격할지를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전쟁은 방어에 의해 승패가 좌우된다고 클라우제비츠는 말한다. 방어는 공격보다 강력하고 방어를 통해 공격의 리소스를 소진시킬 수 있다. 특히 나폴레옹의 막강한 세가 러시아의 방어에 패전한 것은 나폴레옹이 공격 전략의 실패이고 러시아의 방어 전략의 성공이었다. 하지만 전쟁에서 방어한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방어로만 남아있으면 스스로 몰락할 수도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을 활용하여 반격을 해야 한다. 방어와 공격은 변증법적으로 정반합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삶을 전쟁으로 많이 비유한다. 직장 내에서의 전쟁, 나라 간의 경제 전쟁, 외교 전쟁 등 우리가 처해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전쟁 속에 있다는 비유를 한다. 회사 내에서 우리는 어떤 전쟁을 하고 있을까? 회사의 상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해서 경쟁사와 비교우위에 서 있으려고 노력한다. 어느 때는 막강한 자본력으로 밀어붙이고 홍보와 마케팅으로 앞서가려고 한다. 어느 때는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향후 공격을 대비하며 방어하기도 한다. 자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모든 자원을 한 번에 다 소진할 수는 없다. 진짜 자원을 써야 할 때 쓸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늘 자원의 배분을 고민해야 한다. 어느 때는 시장을 포기도 하고 어느 때는 과감히 공격해야 한다. 그리고 공격과 수비만이 아니라 이젠 차별화가 필요한 시기이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수시로 변해가는 환경과 변수 속에서 이론적 내용이 교 조화되어 그것을 고지식하게 지키기만 하는 전쟁은 필패이다. 그리고 현대의 기술의 발전과 변수는 수없이 많기 때문에 그것들을 압도할 수 있는 차별화가 필요하다.


차별화는 독창적이기도 하지만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차지하여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말한다. 손자병법에서는 가장 훌륭한 승리는 싸우지 않고 적을 이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클라우제비츠는 그건 너무 이상적이다라고 말하며 싸운다는 것은 서로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한다. 손자병법이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결국 전쟁은 승리하려는 것이고 승리를 위해서 어떤 전략을 펼치느냐에 승패가 달렸다는 이야기다. 지금 시대에 "제로 투 원" 책에서 언급했듯 차별화는 상대방을 짓밟고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차별화를 통해 시대를 개척하고 새로운 분야에서 독점을 하는 것이 더 멋있는 승리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전투를 하지 않고도 이기는 방법인 듯 하지만 저변에 깔려 있는 제로 투 원의 이야기는 결국 그런 시장을 개척함으로 기존 시장은 전쟁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고전이지만 고전의 중요한 부분들을 잘 서술하여 정리한 책이다. 워낙 원작이 어렵고 방대해서 읽기도 힘든 책이지만 이 책을 통해 전쟁론이란 고전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책을 사 놓은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읽다가 그만두고 읽다가 그만두다가 책꽂이에 있는 걸 다시 보면서 세일즈에 대한 고민이 있는 시점에 전쟁론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책이 빨리 읽히거나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늘 전쟁이란 무엇인지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어떻게 하면 승기를 잡을지 궁금했던 부분을 이 책을 통해 얻으려고 했다. 그래서 완독을 했지만 그 해답은 없다. 꼭 회사생활을 전쟁으로 접근하지 말고 내가 얻을 수 있는 자원들을 수집할 수 있는 장소이고 좋은 동료들을 얻을 수 있는 곡창지대로 접근해도 좋을 듯하다. 또한 나를 성장시키는 토양으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그 토양에서 더욱 성장해 나가며 더 큰 시장에서 자신을 차별화하고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하는 모습을 만들어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래야 서로에게 상처 주며 피가 낭자한 전쟁이란 틀에서 벗어나 더 큰 성장을 해 나갈 수 기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_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중




클라우제비츠의 전략 이론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우선 그가 왜 전쟁을 정치와 연관시키는지를 알아야 한다. 전쟁과 정치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클라우제비츠의 가장 유명하고 가장 논란이 많은 명제와 만난다. “전쟁은 단지 다른 수단으로 정치를 계속하는 것이다(War is a mere continuation of politics with othermeans).”


클라우제비츠의 이 명제는 후세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모든 시대는 자신의 고유한 전쟁을 갖고 있다는 클라우제비츠의 인식에 감동받은 레닌은 이 명제를 정치적 좌우명으로 삼는다. 레닌처럼 현대 정치의 지형도를 바꿔놓은 마오쩌둥도 클라우제비츠에 깊은 공감을 표시한다. 이제까지 인류 역사에서 정치적 성격을 갖지 않은 어떤 전쟁도 없었다고 확인하면서, 전쟁은 바로 정치라고 주장한다.


전쟁은 물론 특별한 종류의 정치이다. 정치가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라면,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라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는 프리드리히의 전술보다는 전략에 초점을 맞춘다. 사실 프리드리히는 전쟁 내내 병력의 열세에 시달렸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숫자로는 열세임에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탁월한 전략 덕택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이렇게 간단히 정리한다. “우리는 제한된 병력으로 커다란 목표를 추구하면서 그 병력에 맞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감행하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꼭 충분할 만큼만 한 대왕의 지혜를 감탄해야 한다."


전쟁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 이상의 수단을 투입하지 않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전략은 이처럼 목적 달성을 위해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구별하는데서 시작한다.


가장 순수한 형태의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우리가 전쟁 기술과 전략 이론을 말하지만, 전쟁은 결코 학문적 이론과 기술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전쟁은 현실이다. 전쟁은 피를 흘려야 해결되는 커다란 '이해관계의 충돌'이다. 현실은 끊임없는 충돌의 연속이다. 경제 행위도 서로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경제 행위자들 간의 충돌이다. 우리의 삶과 현실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마찰 friction'이라고 클라우제비츠는 말한다.


손자가 말한 것처럼 싸움은 근본적으로 속임수다. 목적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이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적을 속이는 것은 전략이다.


머리를 쓰지 않고 무턱대고 일만 하는 사람을 보고 "개념 없이 일한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힘만 믿고 머리를 쓰지 않는 사람들에겐 대개 전략이 없다. 무력은 몸의 힘이라면, 전략은 머리의 힘이다. 그렇다면 머리를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상대방의 전략을 미리 예측하여 자신의 공격 계획을 짜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으로 '모공'을 제시한다. '모'는 책략과 전략을 의미하므로 이는 교묘한 전략으로 적을 공격한다는 뜻이다. 적을 완전히 섬멸시키려면 책략을 짜야하는데, 나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 즉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상의 전략으로 보았다.


클라우제비츠에 의하면 정신력은 결코 냉철한 계산과 예측이 아니며 쉽게 단념하지 않는 단순한 끈기도 아니다. 정신력은 '이성과 감성의 독특한 자질'이다. 이성과 감성이 독특하게 결합하여 정신력을 만든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개개인의 전투정신이 훨씬 뛰어난 야만적이고 호전적인 민족들이 많았지만 이들에게선 탁월한 군사지도자가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사회가 문명화될수록 사람들은 불가피할 경우에만 전쟁을 한다. 순간적인 충동에서 싸우는 경우가 적어질수록 싸움에는 그만큼 더 이성의 힘이 필요하게 된다.


클라우제비츠는 이렇게 이성과 감성이 독특하게 결합하여 고도의 정신력을 갖고 있는 전략가를 '전쟁의 천재'라고 부른다.







이론에 강한 사람은 대체로 실전에 약하다. 경제학 교수가 증권 투자에 성공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고, 권력 이론에 정통한 정치학 교수가 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살아남았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연애론을 줄줄이 꿰고 있는 사람일수록 연애를 잘하지 못하고, 소통 이론의 전문가라고 해서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왜 그럴까? 사람은 끊임없이 변하고, 이런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관계 역시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독립적이고 불변적인 사물의 관계는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예측할 수 있지만, 인간사는 그렇게 쉽게 계산할 수 없다. 인간사는 상호 의존적이고 가변적인 사람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우연과 불확실성이 가득한 전쟁을 분석하고 이론화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변화한다. 변화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과도 다르게 그리고 빠르게 변화한다. 이런 전쟁에서 이론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클라우제비츠는 “원칙이나 규칙 또는 방법은 교리화 되면 될수록 점점 더 보편성과 절대적 진리의 성격을 잃게 된다”라고 경계한다. 그렇다면 이론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우연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전쟁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판단력이다. 그러므로 이론은 항상 지도자와 지휘관의 판단 근거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비판의 일차적 대상은 전통적 이론과 그 실천자들이다. 시대가 바뀌면 이론도 바뀌어야 하는데 여전히 기존 이론을 고수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 그들은 기존의 규칙들을 마치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불변 법칙처럼 법전 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론의 가변성을 망각하고 기존의 규칙들을 적용하는 데만 익숙해진다.


좋은 이론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파악하고 예측하려고 애쓴다. 새로운 현상을 이해하고 예측하려면 기존의 규칙을 재검토하거나 파괴해야 한다. 좋은 전략은 이처럼 새로운 규칙을 발견하기 위해 기존의 규칙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재능 있는 사람과 천재는 법칙 밖에서 행동한다"는 클라우제비츠의 말은 바로 파괴적 혁신의 뜻을 말해준다


기다림과 행동은 공격을 되돌려주는 것으로서 반격을 말하는데 둘 다 방어의 본질적 부분이다. 기다림이 없으면 방어는 방어라 할 수 없고, 행동이 없으면 방어는 전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견해를 통해 우리는 앞에서 방어는 적을 그만큼 더 확실하게 물리치기 위한 더 강력한 전쟁 형태라는 개념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굳게 지켜야 한다.


전쟁의 목적이 단지 현상 유지에 있다고 해도 상대의 공격을 물리치기만 하는 것은 전쟁 개념과 모순된다. 고통을 견뎌내는 것만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방어하는 쪽이 크게 유리해졌다면 방어는 할 일을 다한 셈이니 이제 이 장점을 활용하여 반격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몰락할지 모른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현명한 방어자는 첫 번째 방어로 얻은 우세함을 적의 두 번째 공격을 예방하는 데 쓸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는 한편으로는 결전의 순간을 올바로 포착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방어하면서 결전의 순간을 지연시킬 줄 알아야 한다.


결전의 전략적 이점을 어떻게 획득할 것인가에 따라 공격과 방어는 결정된다. 방어가 공격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전쟁 형태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가장 좋은 예는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다. 그것은 유럽 제국을 완성하려는 결전이었다. 당시의 국제 정세 로볼 때 프랑스의 최대 적국인 영국을 망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적 방법은 러시아 황제를 무릎 꿇게 하여 영국으로 하여금 마지막 동맹국을 잃게 하는 것이었다. 러시아로 진군하는 나폴레옹의 군대는 총 70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병력이었다. 이렇게 거대한 병력이라면 오합지졸에 불과한 러시아 군대를 격파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러시아뿐만 아니라 그보다 훨씬 넓은 영토도 정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결과는, 우리가 역사에서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져온 참혹한 패배였다. 나폴레옹이 1812년 12월 초 프랑스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실패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파리로 돌아갔을 때, 그의 주력부대 가운데 단 2만 5천 명만이 고국으로 살아 돌아갔을 뿐이다.


나폴레옹을 몰락시킨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의 방어 전략이었다.


군주는 기분이 나쁘다고 군대를 일으켜서는 안 되고, 장수는 화가 난다고 싸우려 들면 안 된다. 전쟁의 목적은 전략적 이익이다. 그러므로 손자는 "이익에 부합하면 움직이지만, 이익이 안 되면 그만둘 일(合於利而동, 不合於利而止)"이라고 말한다. 공격과 방어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전략적 이익에 달려 있는 것이다.


공격과 방어의 관계는 변증법적이다. 공격과 방어는 서로의 대립을 통해 전략적 이점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공격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때를 기다려야 하고, 때가 왔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는 공격에 나서야 한다. 손자는 《손자병법> 제4편 '형' 편에서 클라우제비츠처럼 방어전략의 '기다림'을 강조한다.


인류 역사상 공격만으로 구성된 전쟁은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전쟁은 공격과 방어의 끊임없는 교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을 포함한 모든 인간 행위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공격하여 결정을 통해 상대방을 완전히 제압할 때까지 전쟁은 '시간'으로 계속될 수 없다. 우리가 모든 일에 매진할 수 없는 것처럼, 한 가지 일에도 계속적으로 몰두할 수 없다. 재충전과 재정비를 위한 휴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공격이라는 시간의 연속을 끊어 놓는 '단절'의 시간, 즉 휴전 시기를 잘 이용하지 못하면 어떤 공격도 효과적이지 않다. 달리기의 경우에도 처음에 너무 힘을 쏟으면 결코 끝까지 달리지 못한다. 속도와 페이스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전쟁의 목적은 이익을 취하는 것이다. 전쟁의 결과로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한다면, 공격이 아무리 멋있게 보여도 무의미하다. 상처뿐인 영광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격은 항상 전체의 관점에서 전략적 이점을 평가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에서 밀리면 싸우지 말라는 손자의 말은 오늘날도 타당하다. 수가 비슷하면 열심히 싸우되 적이 많으면 달아나고, 대적할 만하지 못하면 적을 피해야 한다. 공격 전략은 이처럼 지극히 간단하다. 언제 공격하고 언제 방어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전략의 첫걸음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시작할 때는 항상 “전쟁으로 by the war 무엇을 이룩하려 하고, 전쟁에서 in the war 무엇을 이룩하려 하는지"를 분명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을 통해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설정된 목적이며, 전쟁에서 달성해야 하는 것은 군사적 목표이다. 전쟁을 하다 보면 종종 전쟁의 목적을 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패배로 이르는 지름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쟁이라는 수단을 사용하기 이전에 정치를 이성적으로 해야 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길 수 있는 법을 강구한다. 전투를 하지 않고 이길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클라우제비츠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최대의 병력을 집중하여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가에 집중된다. 클라우제비츠는 이렇게 말한다. “최선의 전략이란 언제나 충분한 전투력을 갖추는 것이다. 먼저 일반적으로 그렇게 해야 하며, 다음으로 결정적인 지점에서 그렇게 해야 한다." 클라우제비츠가 1,200여 쪽에서 분석하는 것은 이 문제로 압축된다. 공격은 결정적 순간에 최대의 병력을 집중하는 것이고 방어도 이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승리의 열쇠는 결정적 전투에서의 수적 우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책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