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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Dec 31. 2022

하얼빈 김훈. 안중근 의사는 아직도 살아있다.

안중근 의사의 정신은 우리 곁에 살아 숨 쉰다.




김훈 작가의 글은 힘이 있다.


긴 문장으로서가 아니라 짧은 문필로 꾹꾹 눌러쓴 글이 에너지를 내뿜는다. 어찌 보면 건조하고 재미없는 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웃긴 건 그런 차가운 문필이 힘으로 느껴지고 헛튼 소리 안 하고 그 상황을 그대로 표현하는 느낌이다. 안중근의사를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 길을 걸어가게 된 이유와 그가 이토를 저격하기 위해 고민했던 모습을 느끼기에는  지금 우리는 너무 먼 시간을 그와 떨어져 살아왔다.



김훈 작가는 안중근의사가 이토를 저격하기까지 안중근의사의 동선과 행동, 심적 고민들을 하얼빈이란 책에 표현을 했다.


그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전투에서 잡았던 일본포로를 풀어준 것이 화근이 되어 대부분의 동료를 잃게 되며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야 했다. 그런 고통과 죄책감 속에서 안중근은 여러 생각들이 오고 갔을 것이다. 이토가 존재하는 세상은 국가가 존재할 수 없다는 걸 느끼며 동료들의 죄책감을 씻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토를 하얼빈 역에서 저격한다. 순전히 신문에 나오는 일부 모습과 주변 이야기를 종합하고 스스로의 상상까지 더해 이토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본 적도 없지만 하얼빈역에서 그가 생각했던 이토를 사살한다. 그만큼 그에게는 너무 간절했던 것이고 스스로가 이일을 꼭 해나야 한다는 압박이 있던 것이다.



스스로가 죽어도 좋으니 이토가 대한민국을 짓밟고 있는 현재를 방치할 수 없다 생각했던 것이다.



이토가 죽어도 변화는 없을 거라는 주변인들의 말들도 안중근에게는 중요치 않다. 이토가 있는 세상은 의미 없고 슬픈 세상이기에 일본의 상징 이토를 죽여야 했다. 이것이 나라를 위한 것이고 동료들의 죽음에 보답하는 것이었다. 결국 안중근의 삶 속에 가족은 없었다. 어머님과 부인 아이 셋은 희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행복이란 걸 느낄 시간조차 없었다.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주변의 모든 분들이 희생을 하게 된다. 가족이  다치는 것을 알면서도 나라가 없다면 의미가 없고 독립을 해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살아온다. 가족들의 희생은 너무 비참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을 나라를 위해 희생한다.


                 하얼빈저자    김훈   문학동네발매       2022.


책 속 인상적인 장면은 우덕순이라는 동료가 나오는 지점이다.



"안중근을 만난 다음날, 우덕순은 대동공보사에 사직서를 냈다. 회사에서 어디로 갈 작정이냐고 물으면 담배팔이에 전념하려 한다거나 광산촌으로 가서 행상을 하겠다고 대답하려고 했는데, 아무도 우덕순의 향방을 묻지 않았다.

안중근이 하숙방으로 찾아와서 술을 사주면서 이토가 하얼빈에 온다는 말을 했을 때 우덕순은 안중근이 왜 왔는지를 대번에 알았다. 안중근은 우덕순에게 동행할 것인지를 대놓고 물어보지 않았고, 우덕순도 같이 가자고 대놓고 말하지 않았다. 안중근이 이토의 만주 방문을 알리는 신문을 보여주었을 때, 우덕순은 안중근과 함께 가기로 되어 있는 운명을 느꼈다. 자신의 생애는 이 불가해한 운명의 예감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고 우덕순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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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예감은 이토를 쏘아야 한다는 뚜렷하고 밝은 목표로 귀결되고 있었다. 이토를 쏘면 이토는 그 사격의 결과로 죽게 될 것이었고, 총알이 급소를 치지 못해서 이토가 죽지는 않더라도 총을 쏜 이유를 말할 자리는 마련될 것이었는데, 우덕순은 총알이 급소에 정확히 박히기를 원했다. 그날, 우덕순과 술집에서 마주 앉았을 때 안중근은 우덕순을 찾아온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음을 저절로 알았다. 우덕순의 사직서는 즉각 수리되었다.

경리 직원이 전별금이라면서 흰 봉투를 내밀었다. 우덕순은 거리로 나와서 봉투를 열었다. 전별금은 십 루블이었다. 하숙비 십칠 루블이 밀려 있었다. 우덕순은 전별금으로 받은 십 루블을 하숙집 주인에게 주었다. 남은 칠 루블은 언제 갚을는지 알 수 없었다. 우덕순은 안중근의 거처로 갔다. 안중근의 방은 마당 모퉁이에 들어선 별채였다. 나무들이 창문을 가려서 방안은 종일 어두웠고 새들이 나무에서 퍼덕거렸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새 울음소리는 조선의 새 울음소리와 같았다.

-들어오라.

안중근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우덕순을 방 안으로 들였다. 온돌방 위에 앉은뱅이책상을 놓고 안중근은 우덕순과 마주 앉았다. 안중근이 흰 종이를 펼쳐놓고 연필로 만주 지도를 그렸다. 엉성한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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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감독윤제균출연정성화, 김고은, 나문희, 조재윤, 배정남, 이현우, 박진주개봉 2022.12.21."


안중근이 우덕순을 찾아가 이토 암살에 대해 말보다는 감정으로 전달한다. 둘은 서로에게 긴 말을 하지 않고 당연히 둘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도 서로에게 묻지도 듣지도 않고 이토 사살을 그냥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라 생각한다. 얼마나 이토 히로부미가 상징하는 억압과 착취가 느껴지는가. 그의 나이는 고작 31살이었다.


"나는(김훈저자)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그의 몸은 대의와 가난을 합쳐서 적의 정면으로 향했던 것인데, 그의 대의는 후세의 필생이 힘주어 말하지 않더라도 그가 몸과 총과 입으로 이미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처참하고 비참한 나라에서 사는 처절한 아픔을 간직한 국민들은 독립운동 외에는 희망이 없었다.


역사를 알면 친일적 행위를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의 역사 속에서 죽어간 독립운동가들의 영혼이 너무 슬프다. 독립이 되면 대한민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선조들의 유언을 지키지도 못하는 지금의 현실이 비참하기까지 하다. 일본과의 과거 관계가 나라의 발목을 잡아 서로의 발전이 없으면 안 되지만 처절한 반성 없는 일본 정치인들의 비양심적 행위들이 공공연하게 한국이란 나라의 아픔을 자극하는 것은 지금도 매우 큰 문제이다. 여기에 한국 정치인과 친일적 색깔의 무리들이 독립을 위해 희생당한 선조들에게까지 욕을 보이는 행위가 지속되고 있다는 게 너무 가슴 아프고 개탄스러운 일이다.


김훈 작가의 하얼빈을 읽으며 다시금 지금의 한국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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