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의 정신은 우리 곁에 살아 숨 쉰다.
김훈 작가의 글은 힘이 있다.
김훈 작가는 안중근의사가 이토를 저격하기까지 안중근의사의 동선과 행동, 심적 고민들을 하얼빈이란 책에 표현을 했다.
스스로가 죽어도 좋으니 이토가 대한민국을 짓밟고 있는 현재를 방치할 수 없다 생각했던 것이다.
"안중근을 만난 다음날, 우덕순은 대동공보사에 사직서를 냈다. 회사에서 어디로 갈 작정이냐고 물으면 담배팔이에 전념하려 한다거나 광산촌으로 가서 행상을 하겠다고 대답하려고 했는데, 아무도 우덕순의 향방을 묻지 않았다.
안중근이 하숙방으로 찾아와서 술을 사주면서 이토가 하얼빈에 온다는 말을 했을 때 우덕순은 안중근이 왜 왔는지를 대번에 알았다. 안중근은 우덕순에게 동행할 것인지를 대놓고 물어보지 않았고, 우덕순도 같이 가자고 대놓고 말하지 않았다. 안중근이 이토의 만주 방문을 알리는 신문을 보여주었을 때, 우덕순은 안중근과 함께 가기로 되어 있는 운명을 느꼈다. 자신의 생애는 이 불가해한 운명의 예감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고 우덕순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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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예감은 이토를 쏘아야 한다는 뚜렷하고 밝은 목표로 귀결되고 있었다. 이토를 쏘면 이토는 그 사격의 결과로 죽게 될 것이었고, 총알이 급소를 치지 못해서 이토가 죽지는 않더라도 총을 쏜 이유를 말할 자리는 마련될 것이었는데, 우덕순은 총알이 급소에 정확히 박히기를 원했다. 그날, 우덕순과 술집에서 마주 앉았을 때 안중근은 우덕순을 찾아온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음을 저절로 알았다. 우덕순의 사직서는 즉각 수리되었다.
경리 직원이 전별금이라면서 흰 봉투를 내밀었다. 우덕순은 거리로 나와서 봉투를 열었다. 전별금은 십 루블이었다. 하숙비 십칠 루블이 밀려 있었다. 우덕순은 전별금으로 받은 십 루블을 하숙집 주인에게 주었다. 남은 칠 루블은 언제 갚을는지 알 수 없었다. 우덕순은 안중근의 거처로 갔다. 안중근의 방은 마당 모퉁이에 들어선 별채였다. 나무들이 창문을 가려서 방안은 종일 어두웠고 새들이 나무에서 퍼덕거렸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새 울음소리는 조선의 새 울음소리와 같았다.
-들어오라.
안중근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우덕순을 방 안으로 들였다. 온돌방 위에 앉은뱅이책상을 놓고 안중근은 우덕순과 마주 앉았다. 안중근이 흰 종이를 펼쳐놓고 연필로 만주 지도를 그렸다. 엉성한 그림이었다.
하얼빈 113
"나는(김훈저자)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그의 몸은 대의와 가난을 합쳐서 적의 정면으로 향했던 것인데, 그의 대의는 후세의 필생이 힘주어 말하지 않더라도 그가 몸과 총과 입으로 이미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처참하고 비참한 나라에서 사는 처절한 아픔을 간직한 국민들은 독립운동 외에는 희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