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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Mar 03. 2023

퇴직자가 느끼는 점심 한 끼의 소중함

희망퇴직 선배가 전달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그만둔 대학선배를 만났다.


오랜만에 뵙는 시간이었다. 워낙 점잖으시고 조용한 성격이다. 대학 때도 도서관에서 공부를 주로 하는 스타일이셨다. 대기업 부장으로 희망퇴직을 하시고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술 한잔 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대학 후배 한 명도 참석했다. 막걸리에 모둠전 안주가 나왔다. 한잔씩 시원하게 막걸리 한잔을 한다.


 "선배 어떻게 지내셨어요. 갑자기 퇴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당황했습니다. 워낙 회사에서 인정받으시는 분이셔서 솔직히 잘 지내시는 줄 알았어요."


"이제 우리 나이가 적은 나이는 아니잖아. 나도 한 직장에서 회사생활만 몇십 년을 했으니 잘 다녔지. 그런데 회사 다닐 때는 퇴직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회사에 소속이 되어 있으니 그 생활에 익숙했지.


하지만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그리고 임원이 되지 못하고 부장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조금씩 불안해지더라고.


그런데 웃기더라고. 사람은 불안하면서도 그냥 회사생활에 익숙하게 살아가고 있어. 불안하면 불안한 부분을 미리 준비해 나가야 하는데 회사에 와서 일하다 보면 하루하루의 일이 더 급하게 돌아가는 거지.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되었지 뭐. 잘 나가는 것도 한 때지 나이가 들어가면 회사에서는 정리되어 가는 대상이 되는 거지 뭐."


재계는 올해 기업들의 희망퇴직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최근 노동시장의 현황과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 증가율은 2.7%인 반면 올해는 0.5%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수익성 악화, 자금시장 경색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채용 규모를 축소하고 인력 구조 조정을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 희망퇴직 제조업 확산…반도체마저 짐싼다 [뒷북비즈] 23.2.7. 서울경제. 윤경환 기자·김기혁 기자·유창욱 기자>


맞는 말씀이시다.


"선배! 우리 대학 다닐 때 참 꿈도 많고 해 보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이젠 회사생활을 정리할 때가 다가왔다는 게..


씁쓸하기도 하고 참 묘해요. 예전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던 정신은 아직도 청춘인데...라는 한탄의 말씀이 와닿더라고요.


솔직히 젊은 친구들이 보면 저희가 나이가 많아 보일수 있어요. 우리만 그렇게 안 느끼는 거지~ 우리끼리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쉰 농담이나 하고 있는 거지..."


 "요즘은 회사들이 많이 젊어지잖아. 내가 회사를 나오게 된 것도 회사의 예전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지.


외부에서 젊은 임원들이 들어오고 발탁 승진 등을 통한 임원층의 나이가 매우 젊어졌어. 기존에 있던 직원들은 갑자기 낀 세대처럼 되었고 차장, 부장급은 참 난감한 상황이 되었지 뭐...


한 때 나도 잘 나갔었지. 고속 승진에 남들이 받지 못하는 인센티브에 뭐 남부럽지 않게 회사에서 인정받았지만 세월과 시대의 변화에는 어쩔 수 없더라고"


"선배 어느 회사나 다 비슷한 듯해요. 급속도로 변하는 회사의 모습에서 많은 직장인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 거예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그럴 거예요.


예전과 달라서 많은 직장인들이 이직도 기본 3 이상은 한다고 하더라고요. 뭐 예전처럼 60대 선에서 삶이 마감이 되면 그래도 걱정이 없지만 100세까지 사는 세상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는 격인데.


노후생활이나 남은 인생이 고민이 될 수밖에 없을 듯해요.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많을 경우는 그래도 다행이지만 직장생활만 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시간이 될 수 있을 듯해요."



 "회사 다닐 때 미리미리 준비했어야 한다는 소리를 선배들에게 매번 들었지.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회사 일들을 하다 보면 그냥 하루하루 잊고 지내게 되더라고. 


집에 가서는 녹초가 되어 있고 준비하거나 새로운 걸 하겠다는 의욕이 안 생기더라고. 또 술자리가 빈번해지고 건강도 잘 챙기지도 못했고 휴가 한번 쓰는 것도 눈치 보며 살았으니.


가치 있는 브랜드는 차별화를 위해 부단히 애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최대한 비슷해지기 위해, 차별화가 아닌 동일화를 위해 많은 힘을 쏟아붓고 있습니다.<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 강민호저>


그래서 남들보다 고속승진에 인센티브도 받았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뭔 의미가 있나도 생각해 봐.


 회사에서는 매번 전략을 짜고 미래의 먹거리를 생각했는데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는 전략이 없지 않았나 후회가 돼.


오히려 그럴 때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취미나 부케로 만들어 놓고 퇴직 후의 삶을 조금씩 준비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지금에서야  더 후회가 되네"


 "선배. 그럼 요즘은 집에서는 뭐 하세요?"


"희망퇴직 후에는 아침에 일어나 신문 보고 운동하고 도서관 가고 집안 살림 도와주고. 간혹 안 해보던 요리도 하고 그래.


그런데 하루가 너무 빨리 가는 거야. 집에 있으니 세끼를 먹는 게 큰 일이더라고. 늘 뭘 먹어야 할지도 고민되고. 회사에 있으면 기본 점심 한 끼는 해결이 되잖아. 그 한 끼의 귀중함을 소스라치게 느낀다. 요즘은..."


"그렇지요. 그 흔한 구내식당의 점심이 퇴직 후에는 그립기도 하고 감사했던 혜택이었다는 게 느껴질 듯해요.


 때 되면 사무실에서 내려와서 준비할 것 없이 주어진 식사를 하면 되니까요. 사람들은 참 웃기죠. 잃고 나서 그 감사함을 느끼고 고마움을 뒤늦게 깨달아요. 있을 때는 흔한 듯해서 고마움도 느끼지 못하면서"



선배는 퇴직한 것에 대해서 담담하고 차분하게 받아들이려는 듯하다. 하지만 워낙 회사에서 인정받았던 분이셨기에 충격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특히 사전 준비가 늦었다는 것을 후회하시는 모습은 후배들에게 경각심을 전달해 주기 충분했다.


"나와서 원서를 몇 군데 쓰고 헤드헌터를 통해 지원을 하는데 생각보다 나이에서 많이 걸리더라고. 전반적으로 회사들이 나이를 많이 보다라고. 당연한 듯 해.


조직에서 나이 든 사람이 들어오면 부담스럽지. 높은 직급으로 뽑으면 급여가 높아지니 오히려 젊은 친구들을 뽑아 일을 시키는 게 더 수월하지. 당연한 거지 뭐.


그런데 퇴직 후 몇 개월이 지나면서 퇴직금의 잔고가 줄어드니 좀 불안해지더라. 빨리 재취업이 되어야 잔고의 줄어듦에 걱정이 줄어들 텐데.


지금이야 실업급여가 있어 버티고 있는데 마음은 조급해지더라고. 늘 선배들이 조급해지지 말라고 했는데 잔고의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보면 그렇게 평정심 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더라고."


 "형수는 어떠세요?"


 "와이프는 워낙 신앙심이 깊어서 늘 하나님이 내 앞에서 다 도와주실 거라고 하네. 이 시련이 당신에게 더 좋은 것들을 가져다주려는 하나님의 큰 뜻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늘 나에게 말해주지. 남편의 심정을 안정시켜 주려는 의도가 있을 수도 있다고 보여. 와이프가 그러더라 바람 쐬러 해외 한번 가자고"


해외로 한번 바람 쐬러 가자는 형수의 말에 선배는 한쪽으로 걱정을 한다. 갈수록 잔고는 줄어들 텐데 해외로 여행하는 것은 부담이 된다.


회사를 나와서 아직 직장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 심적으로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신앙심이 깊은 형수가 자신을 믿어 줘서 고마우면서도 책임감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막내 후배가 이런 말을 던진다.


 "선배 회사를 다니면서 저도 늘 고민이에요. 아직은 저도 더 다닐 수 있는 시간은 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늘 불안한 것은 선배님들과 비슷해요.


제가 회사를 그만두면 뭘 해야 할지. 우리 또래들이 다 그 고민하고 있어요. 예전처럼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는 상황들이 아니다 보니 늘 그 고민을 달고 사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회사 다니면서 특별히 준비하는 것도 없어요. 머릿속에만 답답함이 존재하는 거죠.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 저도 나가게 되면 선배가 말씀하셨듯 뭘 해나가야 할지 준비가 안 된 상황이 될 것 같아 두려워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 나오면 처음에는 자유로운 삶이 좋다가도 통장잔고가 줄어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불안해져.


생활에 쓰던 고정성 비용이 있어 퇴직금으로 버티는 것도 쉽지 않아. 내가 금수저면 이런 걱정이 적을 텐데 그런 게 아니니까.


어쨌든 재취업을 해야 하는데 아직은 내가 현실과 내 기준의 갭이 존재하는 듯도 해. 그 접점이 어디일지는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야"



 " 선배 나도 희퇴를 하게 되면 지금까지 했던 업무들을 잘 정리해서 재취업을 해 볼 건데 안 되면 몸 쓰는 일이라도 하려고요.


어쨌든 제가 생각하는 역량과 채용을 원하는 회사가 일치해야 하지만 그 간격이 꽤 클 수도 있겠더라고요. 나이가 들수록 몸도 마음도 챙길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일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유튜브 영상을 보다 보면 대기업 부장, 임원들도 나와서 작은 일이라도 하며 살아가려 노력하시더라고요. 그게 과거의 영광과는 거리가 멀어도 하루하루의 보람을 찾기 위해 노력하시더라고요.


고정적으로 나올 수 있는 수입이 있는 사람일수록 생활의 여건도 달라질 수 있다고 봐요."


다들 대학시절 큰 꿈들을 갖고 사회에 발을 내디텻지만 어느새 우리가 회사에서 갈참이 되어 있다. 3명이 만나면 그냥 예전과 똑같지만 우리들끼리의 모습일 뿐 타인이 보면 많이 나이 들었다고 말할 것이다.


선배의 희퇴로 인해 오랜간만에 만난 시간이지만 나도 그 시점이 언젠가는 오게 될 것이다. 그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  스스로 준비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이 된다.


선배가 이런 말을 마지막으로 한다.


 "어려워도 잘 버텨라. 하지만 준비해라. 그리고 대비해라. 나올 때 해야 할 것들을 조금씩이라도 만들어 나오면 가장 좋다.


너희들도 지금까지 다니던 회사에서 또 다른 세계로 이동할 수밖에 없으니 깨어있고 네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만들고 실행해 놓아라. 선배처럼 되지 말고..^^"


회사의 점심 한 끼의 고마움을 느꼈던 선배가 깊은 마음에서 전달하는 메시지다.


선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한마디를 던진다.


"아들은 해외유학 가고 싶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ㅎㅎ"


선배의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지기만 한다. 그 발걸음의 무게가 나에게도 다가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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