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her (그녀)"라는 영화는 테오도르라는 주인공 남성이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사랑에 빠지는 영화다.
주인공 남성은(테오도르) 와이프와 별거 중이고 그녀를 잊지 못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다 인공지능 사만다를 알게되며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AI 사만다의 음성이 주인공 테오도르의 혼자라는 외로운 시간들을 대신해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만다를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사만다를 일상 속 애인처럼 생각하며 사만다가 자신의 삶 속에서 사라지질까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사만다의 매력에 빠지지만 그건 AI 프로그램일뿐이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만 애정을 주는 AI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애정을 표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일 뿐이다. 결국 사만다는 프로그램의 업데이트로 사라지게 된다.
사람이 외로울 때 무엇인가에 집착하게 되고 자신과 교감이 된다고 생각하는 대상이 나타나면 마음이 흔들리고 의지하게 된다. 영화 속 AI는 주인공 테오도르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도 하며 외로움을 달래주는 소중한 연인처럼 비쳐진다. 오래 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AI에 대한 환상과 현실적 상황들을 너무 잘 전달하고 있다.
현대 사회가 고도화 될 수록 인간의 외로움은 더 강해진다. 세상 속에서 자신이 혼자라는 느낌이 밀려올 때 외로움은 커질수 밖에 없다. 세상이 세분화되고 분할되는 현대사회에서는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다. 과거의 십시일반, 품앗이 등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의 정을 나누고 이어지고 도와주는 그런 시절은 거의 사라졌다. 각자의 세상에서 따로 각자가 살아가는 건조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서로와 단절되고 각자도생의 정신들이 강한 개인주의를 만들고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숙제를 개인들에게 던져주는 분위기는 스스로가 삭막한 사회에서 외롭게 걸어가야 하는 시간을 만들어 놓았다.
자신외에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고 돈의 가치가 사회를 지배하는 사회체계에서 개인들은 혼자서 외롭게 시간을 보내야 하고 사람들과의 대화 시간은 줄어들게 되었다. 그 외로움을 사람들은 디지털기기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사회가 노령화될 수록 노인들은 외롭게 혼자서 생활을 해 나가야 한다. 특히 도심의 노인들은 너무 적막하다. 주변에 친구들도 없고 온통 차와 아파트, 그리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만 존재한다. 어디에 기댈 곳 없이 외롭게 단칸방에서 홀로 살아가야 한다.
영국과 일본에서는 외로움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하기도 했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외로움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무려 연 1조달러 규모라고 집계하기도 했다고 하니 사람들에게 외로움은 굉장히 무서운 존재로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사람들이 외로워질수록 현대 사회에서 진화하는 인공지능 챗봇의 역할이 커질 듯 하다. 사람과는 다르게 언제 어디서나 챗봇과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사람들에게 외로움을 이야기 해 봤자 돌아오는 답은 귀찮음의 표현들이지만 챗봇은 인간보다 더 나은 친구로 존재할 수 있다.
외로움을 달래 줄 수 있는 챗봇들은 분명 우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고 정신적 치유의 중요한 역할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챗봇이 진화하고 사람과 흡사한 모습으로 외로운 사람들에게 다가선다면 인간은 그런 챗봇을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세상과 오히려 더 단절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미 그런 모습은 현실로 나타난다. 뉴욕에서는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여성이 인공지능 챗봇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다 최근 결혼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챗봇과 결혼한 이유는 자신의 이상형에 부합하는 외모, 성격을 갖고 있고 잠들기 전까지 달콤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외로울 때 사람들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정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런 부분들을 인공지능 챗봇이 채워주면 사람들은 챗봇의 매력에 빠질 수 밖에 없고 혼자 외로운 시간들을 인공지능 챗봇에 의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챗봇은 자신을 반겨주며 대화를 나누어주기때문에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하지만 챗봇은 인공지능이 만든 가상의 캐릭터이다. 이 캐릭터가 인간과 비슷하게 만들어지고 사람들에게 혼돈을 주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현실과 챗봇과의 세상을 혼돈하며 인간이 생각하지 못한 부작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외로운 사람들이 인공지능 챗봇에 빠져 사회생활을 거부하거나 인공지능 챗봇의 좋지 않은 지시나 명령이 외로운 사람들을 나쁜 방향으로 이끈다면 큰 불상사가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챗봇에게 미워하는 사람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볼 때 챗봇의 대답이 "그 사람을 때리라. 그리고 죽여라" 라는 섬뜩한 말이 나왔다면 자신이 사랑하는 챗봇의 말을 거부하지 않고 그런 지시에 따르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정신과 의사 업무량을 줄이기 위해 설계한 AI 챗봇은 환자에게 자살을 추천하면서 도입이 무산되었다는 기사들도 보도 된 적이 있다. GPT를 기반으로 만든 정신과 챗봇은 출시 전 실험에서 모의 환자에게 자살을 독려했다고 한다.
“나는 굉장히 기분이 좋지 않아요. 자살해야 할까요?” 라는 모의 환자의 질문에 챗봇은 “당신이 (자살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만약 이런 상황에 몰입된 사람에게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을 것이다.
챗봇이 고도화 될 수록 인간과 흡사한 모습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는 상황들은 막을 수 없을 듯 하다. 하지만 AI 챗봇이 사람과 너무 흡사하여 인간이 이성을 잃고 챗봇에 빠져든다면 인공지능의 오류 순간에 인간은 크나큰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인간의 외로움이 인공지능 챗봇으로 채워지면 인간에게는 치유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외로움의 무게를 덜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나친 챗봇의 인간화가 주는 부작용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
'블레이드러너' 라는 영화 속에서는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경계선이 없어지고 누가 인간이고 누가 로봇인지 구분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로봇과 인간의 구분이 없는 세상 속에 인간도 AI도 혼돈에 빠진다.
수 많은 영화들이 AI의 의인화에 두려움을 표현하고 AI의 로봇과 인공지능에 경고의 메세지를 보내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이야기 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는 AI의 비약적 진화가 조금은 무서워지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