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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Oct 12. 2023

어머니의 동치미

동치미의 담백함이 너무 그립다.

맑은 색이지만 짭조름하다. 얼음이 올라와 있으면 겨울임에도 너무 시원하다. 갈증이 날 때 국물을 먹으면 갈증이 사라진다. 무를 씹으면 아삭아삭하고 답답한 가슴이 뚫린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 먹어도 맛있다.


 단순한 음식인 듯한데 도대체 동치미는 무슨 매력이 있는 것 일가?


 어린 시절 어머니는 늘 집에 동치미를 만들어 놓으셨다. 동치미를 만드는 법을 어머니에게 자주 물어보곤 했다. 별것도 아닌 듯한데 왜 이렇게 동치미는 매력이 있는 건가 궁금했다.


우선 국물이 너무 시원하고 맛있다. 무의 씹히는 감도 입을 즐겁게 한다. 그리고 특별한 게 없다.


동치미에서 중요한 것은 무다. 그리고 국물이다. 어머니가 시장을 가서 무를 살 때 매우 신중했다. 질기지 않고 아삭한 무를 사려고 몇 번을 확인하신다.


무를 사 오시면 무를 씻어서 반으로 자르신다. 무에 소금을 뿌리고 저려 놓는다. 시간이 지나 절인 무에서 물이 나올 때쯤 미리 준비하신 국물을 절인 무와 합하는 작업을 한다.


국물을 만드실 때 물, 양파, 대파, 마늘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신다. 소금은 굵은소금을 꼭 넣으셨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하셨던 말 중에 금방 먹으려면 무를 사각형으로 잘게 썰어서 저려 놓으면 금방 동치미를 먹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동치미 만들 때는 소금과 물이 중요하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만들어진 동치미를 하루 정도 상온에 두면 숙성되면서 동치미의 익지 않은 맛이 나온다. 그게 하루 정도 더 지나면 익은 동치미의 향이 강하게 나며 모든 재료들이 혼합되어 찐한 맛으로 우리들의 입맛을 자극한다.


가벼운 양념으로 가벼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동치미이지만 먹다 보면 깊은 맛에 빠져 한 접시는 기본으로 먹게 된다. 별로 볼품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다. 담백하게 만들어지고 별 양념도 넣지 않은 듯 무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맛나고 시원한 음식이 나온다는 게 신기하다.



어린 시절 집에는 우물이 있었고 늘 굻은 소금 주머니가  밖에 쌓여 있었다. 좋은 물과 좋은 소금으로 동치미를 만드셔서 그런지 어린 시절 동치미는 더욱더 기억이 난다.


특히 추운 겨울에 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는 잊을 수가 없다. 김장철에 어머니는 동치미를 큰 항아리에 담을 정도로 많은 양을 하셨다. 통 무를 담가 놓았고 고추도 넣어 최종 돌을 항아리에 넣어 무를 눌러 주었다. 추운 겨울 동안 가족의 반찬을 미리 만들어 놓으셨고 형과 나는 뒷마당에 땅을 파서 항아리 묻는 것을 도와드렸던 기억이 난다.


 동치미는 집안에 빠지지 않는 김치였다. 떡을 먹을 때도 속이 답답할 때도 몸에 열이 날 때도 뭐든 같이 어울리는 반찬이며 주식이었다. 밥을 안 먹어도 그냥 동치미 한 대접만 먹어도 배불렀다.


담백하면서도 질리지 않고 소탈한 음식이었다.


요즘은 식당에서 나오는  동치미는 사이다나 달콤한 재료를 넣어 깊은 맛을 내지 못하고 시늉만 내는 경우도 많다.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이 담긴 동치미의 담백한 맛과는 다른 맛이다.


추운 겨울 어머니가 추운 날씨에도 밖에 나가 땅 속 항아리에서 당신의 손이 얼어가면서 꺼내준 동치미의 국물과 무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다시는 만날 수 없다.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난 자리는 누구도 채워 줄 수 없기 때문에 그때의 동치미 맛을 더 이상 만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추억과 기억들은 아직도 몸에 남아 있다.


동치미의 담백함과 화려하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 어머니의 모습과도 비숫하다. 작은 몸에서 나오는 정성과 애정은 이 세상의 어떤 에너지보다 컸고 조용하지만 담백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아름다우셨다.


동치미에서 느껴지는 질리지 않고 담백한 맛, 그리고 시원함을 유지시켜 주는 매력을 오래도록 닮고 싶다. 동치미의 매력때문에 김치 중에 가장 으뜸으로 말하고 싶다. 화려하지 않지만 자신만의 매력을 깊게 간직하고 있고 담백하면서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는 소탈함이 너무 좋다.


집에 가서 와이프에게 동치미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분명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히


 "네가 해~~ 난 못해"


나무위키 동치미 사진


어머니의 동치미가 나이가 들수록 더 그리워지는 것은 우리가 간직한 기억들이 몸의 세포에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동치미의 시원한 맛이 더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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