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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Sep 11. 2023

걷기, 그 순수함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걷기는 순수함이다.

글쓰기 수업 중 나에게 선생님이 물으신다.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 그리고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점이 언제였나요? 고민하지 말고 그냥 바로 생각나는 시점을 이야기해 주세요. 삶의 주기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설명해 주시겠어요. 이번 시간은 그걸 글로 써 보는 시간입니다."


가장 힘들었던 시점은 회사를 다니며 여러 이유로 자존감이 가장 떨어질 때가 있었다. 앞도 안 보이는 터널 속에 갇혀 있던 시점이었다. 가슴속 답답함이 나를 지배했던 시간이었다. 많이 아파했고 좌절했었다. 그 답답함을 극복시켜 준 게 걷기였다.


가장 좋았던 시점은 어렸을 때 어머님이 내 곁에 늘 있어 주었다는 행복감을 느낄 때였다. 초등학교 때 어머님과 같이 비 오는 길을 걷는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가장 좋았던 시간에도 걷기는 늘 나의 곁에 존재했다.


걷는다는 것은 외롭기도 하지만 즐겁기도 하다.



길을 혼자 걷기도 하지만 같이 걸어가기도 한다. 같이 걸어가는 길은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같이 있어도 외로울 때도 있고 같이 있어도 불편할 수도 있다. 반면 혼자 걷는다고 해서 외롭다고 생각하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혼자 걸을 때 행복해지기도 하고 더 깊은 내면을 보게 되기도 한다. 간혹은 외로울 수 있으나 그때는 걷는 것에 몰입하지 못했을 때다.


우리에게 살아가며 힘들었던 순간들은 늘 찾아온다.


그런 힘든 시점마다 나의 옆에 존재해 준 것은 "걷기"였다. 매우 힘들 때는 혼자 걷는 시간이 많았다. 어두운 새벽 시간에 깨어 가벼운 옷을 입고 무작정 밖으로 향했다. 해가 뜨기 전까지 걷다 보면 내 몸에서 부정적 생각은 사라지고 나의 순수한 모습만 남았다. 귀에 음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내 몸 하나로 걸어갔다.


뚜벅뚜벅 걷는 새벽길의 안개는 무섭기보다 행복하다.


느리게 가는 데 걷는 것만큼 좋은 건 일찍이 없었다. 걷기 위해서는 두 다리만 있으면 된다. 다른 건 일체 필요 없다. 더 빨리 가고 싶다고? 그럼 걷지 말고 다른 걸 하라. 구르든지, 미끄러지든지, 날아라. 걷지 마라. 그러고 나서 중요한 건 오직 하늘의 강렬함, 풍경의 찬란함뿐이다. 걷는 것은 스포츠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일단 한번 몸을 일으켰다 하면 그냥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머릿속의 답답함이 씻겨 내려가고 어둠의 안개를 뚫고 새로움을 찾아가는 과정이 시작되는 듯했다. 나의 깊은 내면으로 더 깊게 들어가며 나의 순수함을 찾아 주는 시간이 되어 주었다. 어렵고 지루한 시간의 기억들이 사라지고 나의 걸음에 모든 에너지가 맞추어졌다. 나의 리듬을 찾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걷는 시간은 순수함의 시간이다. 내 몸과 마음의 순수함이 나를 감싼다.



순수함을 말할 때 나는 어머님을 잊을 수 없다.


세상을 알아가기 전 초등학교 어린 시절, 어머님은 늘 내 곁에서 나를 지켜봐 주셨다. 어머님은 당신의 고생과 정성을 자식에게는 전혀 티 내신 적이 없었다. 늘 그냥 묵묵히 어머님의 자리를 지켜주셨다.


어머님은 늘 바쁘셨다.


큰 집안의 살림을 챙기셔야 했기에 부엌에서 나올 시간조차 없으셨다. 밤도 새벽도 늘 부엌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그리고 간혹 내 곁에 오셔서 피곤함을 달래시기도 하셨다. 학교 갔다 집에 오면 가장 먼저 부르는 게 "엄마"라는 단어였다.


초등학교 어느 날 수업이 끝날 때쯤 갑자기 비가 내렸다. 우산을 준비해 오지 않은 어린 마음에 학교 처마 밑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늘 그런 날에 어머니는 학교까지 우산을 들고 찾아와 주셨다. 그 순간은 어느 순간보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머니가 왔다는 기쁨과 어머니가 내 곁에 있다는 안도감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비가 내리는 길을 어머니와 같이 걸어갈 때 나는 너무 순수했다. 그냥 어머니의 마음이 나에게는 순수함으로 전달되었다. 걷는 것이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린 시절 비 오는 거리를 어머니와 같이 걸었을 때나, 나이가 들어 새벽길을 혼자 걸을 때나, 이 모든 순간은 나에게는 순수함의 시간이었다. 어린 시절의 걷기는 길이 있기에 그냥 걸어가는 순수함이라면, 어른이 되어 걸어가는 길은 나를 더 깊게 알고 싶어 걸어가는 순수함의 길이였다.


걷다 보면 주변의 풍경들이 내 눈에 들어오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걷기에 집중하면 순수한 나를 만나게 된다.


걷는 것은 나에게 "인생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매개체이다."


걷는 것만이 우리가 필요불가결한 것의 환상에서 벗어나도록 해준다.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어린 시절 주어진 길을 걷던 추억과 에너지들이 나이 든 지금의 나를 더 깊게 알아가고 멀리 갈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 주었고, 나의 어린 순수한 추억들이 지금의 나의 가슴속 깊은 곳에 순수한 감정의 샘물을 만들어 주었다. 어머니는 떠나셨지만 어머니의 정성은 아직도 나에게 남아 자식에 대한 정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생은 끊어짐의 연속이 아닌 연결의 연속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가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선이다. 이 선 위에 우리는 순수함을 잊고 지내는 듯하지만 우리의 가슴속 어딘가에는 자기만의 순수함들이 존재하고 있다.


 걷기는 우리의 순수함을 가슴속 창고에서 꺼내주는 행동이며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더 깊게 생각하게 해 주는 기회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당신은 오늘도 걷고 있는가요?


우리의 순수함을 잊고 어딘가에 숨어 있다면 밖으로 나와 걷기를 해 보세요. 걷기는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순수함을 드러낼 수 있는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으니까요.


걷기는 우리 인생의 조언자입니다.


오랫동안 걷다 보면 이 포기의 자유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오랫동안 걷다 보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갔는지,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하는지를 더 이상 알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꼭 필요한 것들의 무게가 양어깨에 느껴지면,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렇게 며칠이라도, 몇백 년이라도 계속 걸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낀다. 바로 그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가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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