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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Jan 31. 2024

행복 중독, 행복한 것만이 행복한가?

삶은 복합적이다.

 차를 타고 가던 중 라디오에서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늘 행복하길 바래! 라는 말이 진짜로 행복이란 말을 알고 하는 말일까"라는 주제를 던집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인생이 행복하기만 한 것이 행복한 것만 아니다"  이 말에 내포되어 있는 것은 인생은 행복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이고 인생이 행복으로만 점철되어 있다면 삶은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지루한 일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경험인데, 마치 머리에서 만들어내는 일종의 생각 혹은 가치라는 착각이 들게 한다. 세상의 많은 책이 행복해지기 위해 '의미를 찾아라' '가진 것에 만족해라' '긍정적인 생각을 해라' 같은 조언을 한다. 즉, 생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맞는 말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공허한 말장난 같기도 하다.  불행한 사람은 긍정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본질적으로 '생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생각을 고치라고 조언하고 있다. 왜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지기 어려운 것일까? 행복은 사람 안에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경험이고, 생각은 그의 특성 중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돈이라는 자극이 뇌의 특정 부위들을 흥분시켜 '좋다'는 일시적 경험을 합성해 내는 것이다. 돈은 무조건 누구에게나 행복감을 일으키지 않는다. 훨씬 더 복잡 미묘한 경험이 행복이다. <행복의 기원_서은국 저>


과학적으로 행복하려면 세라토닌 호르몬이 분비되어야 하는데 세라토닌 호르몬이 계속 나오기만 한다면 비정상적 인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인간의 삶이 행복하기만 하길 바라는 행위는 비정상적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고 그런 삶은 오히려 불행한 삶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그 행복은 순간이고 감정은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느끼는 기쁨이란 여러 감정들이 모여 추억이 되고 그런 추억들이 쌓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는 것입니다.


 과연 "행복"이란 단어가 혼자 당당히 존재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고통, 슬픔, 아픔, 좌절, 도전 등 여러 상황들이 존재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이야기하는 "늘 행복하길 바래"라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너는 늘 행복하기만 살 수 없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늘 행복해지는 삶은 절대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영원한 행복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순간의 기쁨은 변화무쌍한 삶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늘 행복하길 바래"라는 말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행복과 슬픔,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하며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길 바란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영원하지 않지만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통해 성숙해지고 그 결과로 인해 더 깊고 의미 있는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이 인생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행복은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이자 삶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이런 행복이란 단어에 질문을 던져 봅니다.


 "행복은 고정된 것일까, 아니면 변화하는 것일까? 행복은 인생의 전체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순간의 감정을 말하는 것일까?"


 심리학, 철학, 사회학, 경제학, 신경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행복에 대한 연구 해왔으나 행복에 대한 합의된 답을 내기는 어렵습니다.


행복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하고 주관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행복은 좋은 일이 많고 나쁜 일이 적은 삶이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여정이지 목적지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라. <헬렌켈러>


 즉, 행복은 인생이 즐겁고 만족스럽고 풍요롭고 평화롭고 안전하고 건강하고 성공적인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통념은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고 측정하고 비교하고 공유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행복을 느끼기 위해 좋은 일을 찾고, 행복을 측정하기 위해 좋은 일의 양과 질을 살펴보고, 행복을 비교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좋은 일과 나쁜 일을 살펴보고, 행복을 공유하기 위해 좋은 일을 말하고 듣습니다.


 행복은 좋은 일이 많고 나쁜 일이 적은 삶이라고 생각하면, 행복은 인생의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행복은 좋은 일을 말하고 듣기만 하면, 행복은 진실되고 깊이 있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이고 얕은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을 느끼기 위해 좋은 일을 무리하게 찾거나, 행복을 측정하기 위해 좋은 일의 양과 질에 집착하거나, 행복을 비교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좋은 일과 나쁜 일에 부러움이나 동정을 느끼거나, 행복을 공유하기 위해 좋은 일을 과장하거나 숨기거나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행복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고 지치게 하는 것이 됩니다.  행복은 인생의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행복의 일부에 불과한 것입니다.


행복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의 양과 질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과 나쁜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고 의미 부여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행복은 좋은 일을 말하고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모두 공유하고 이해하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행복만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라는 하나의 선 위에서 어떤 의미로서 선을 이어가고 채워가느냐가 행복이라는 상징적 단어를 오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행복은 가상의 언어입니다. 인간이 이것이 행복이라는 형태의 상징적 언어를 부여한 것입니다.


행복은 자신의 삶 속에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이해하고 만족할 때 나오는 단어입니다. 각자의 삶의 선상에 행복의 모습은 동일할 수 없습니다. 결국 행복은 자신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 속의 다른 감정들과 복합적일 때 나타나는 일부분의 감정일 뿐입니다.


삶의 선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행복이라는 단어로만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갈 수는 없습니다.  행복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갈 때 나타나는 감정일 뿐입니다.


행복이라는 환상만을 쫒는 사람일수록 불행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선을 너무 분절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 모습입니다. 그 선에는 행복이라는 단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픔, 슬픔, 답답함, 즐거움, 어려움, 고통 등 여러 감정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삶이라는 것은 복합적 감정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들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모습이 정상적인 삶입니다. 그리고 그런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행복만을 바라보며 행복만을 추구하며 살아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행복의 중독에 빠져 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신의 삶을 큰 우주로 바라보며 지금의 삶도 과거의 삶도 미래의 삶도 우리에게는 "삶"이라는 선 상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으면 합니다. "행복 중독"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다양한 감정으로 살아갔으면 합니다.


그게 우리에게 행복을 가까이 두고 살아갈 수 있는 심플한 방법입니다.


그대가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한 그대는 언제까지나 행복해지지 못한다. 그대가 소망을 버리고 이미 목표도 욕망도 없고 행복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때에야 세상의 거친 파도는 그대 마음에 미치지 않고 그대의 마음은 비로소 휴식을 안다.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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