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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Feb 02. 2024

"하얀 눈"이 주는 우리의 시간

나이 들어감은 시인에서 논픽션 작가로

눈이 내리면 하얀 세상에 빠져들고 싶다.


어린 시절 눈은 낭만과 감성의 매개체였다. 눈이 내리면 마음이 설레고 행복했다. 시야에 보이는 하얀 눈들의 잔치가 온몸에 기쁨을 주었다. 밖에 나가서 눈의 감촉을 만져보고, 눈을 뭉쳐 강아지에게 던져주고, 눈을 입으로 받아보고 싶었다. 눈이 내리는 날은 언제나 즐거운 날이었다.


대학시절에는 눈이 내리면 감수성의 바다에 빠져 사랑하는 연인과 손을 잡고 걷고 싶었다. 젊은 시절 연인과의 시간은 어떤 시간보다 낭만적이다. "러브스토리"의 음악이 어디선가 흘러나오면, 연인과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고, 눈꽃을 꺾어 선물하고 싶었다. 그런 추억을 만들고 싶은 마음들이 솔로에게는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부모님들과 동네 아저씨들은 눈의 낭만보다 걱정이 앞섰다. 쌓이는 눈을 치워야 하는 고단함과 넘어져 다치는 사람이 없길 바라는 마음이 그분들의 얼굴에 비쳐 보였다. 아이들과 강아지들의 즐거움을 바라보며 잠시 미소를 짓지만 그분들에게는 눈의 행복감보다 무게감이 더 크셨다.



이제는 그 어르신들의 고단함이 더 잘 이해가 된다. 눈이 내리는 낭만을 느끼기도 하지만 눈을 치워야 하는 책임감도 느낀다. 현장의 직원들이 나와서 제설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면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인다. 자연의 현상을 받아들이면서도 직원들에게는 오늘 하루가 힘든 하루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눈이 내리면 업장은 늘 긴장된다. 고객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도로와 인도가 눈으로 쌓이지 않도록 빠르게 치워준다. 다음날의 날씨로 인해 얼면 위험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제설 작업을 한다.


고객들은 눈이 내린 설경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고 추억을 만든다. 고객들은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서 기분이 좋아진다. 그곳에 보이지 않는 직원들의 손길들이 녹아 있어 고객들은 더 큰 감동을 받는다.


눈이 내리면 영업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적설량이 많아질수록 야외활동 공간이 줄어들어 영업 실적은 어려움을 겪는다. 눈이 내리는 것이 현장은 반갑지 않은 이유이다.


땀 흘리며 눈을 치우지만 자연의 무게에 맞서기 힘들기도 하다. 여러 이유로 눈의 아름다움보다 현실의 이해가 우선이 되어 제설작업을 하지만 자연은 무심하게 눈을 더 내리게 한다.


하얀 세상이 진짜 순수한 하얀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다.


순수함을 이야기하기에는 현실이란 세상이 우리의 생각들을 바꾸고 있다. 현실은 멀리 있지 않기에 본인이 처한 상황에서 무시할 수 없다.


문뜩 아이가 이야기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나는 어른이 되기 싫어요. 공부해야 하는 의무, 살아가며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부담 등 이런 거 어린 시절에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 라며 어린 시절의 무책임함과 낮은 부담의 무게감을 추억하며 서서히 성장해 가는 아이의 말이 어디선가 다시 들려온다.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책임감과 인생의 무게감이 커지는 것이다.


 눈이 쌓일수록 느끼는 무게감을 오롯이 자신의 무게로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눈의 순백함이 주는 감정들이 나이가 들수록 현실로 다가오는 나이가 되어간다는 게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현실을 잊고서만 순수함을 이야기하는 것도 너무 철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가슴속 어딘가에는 순백함을 간직하기도 하고 현실에 놓여 있는 시간들을 이해하며 우리의 무게감을 느끼며 살아가기도 해야 한다.


 눈의 무게감이 오늘은 크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눈이 쌓이는 양이 더욱 커져만 간다. 우리의 마음도 무거워지는 시간이다.


우리의 감정은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고 그런 나이 듦이 아쉽지만 그것 또한 자연의 흐름에 우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좋은 포도주처럼 익는 것이다. -필립스 -


나이 들어감이 시인에서 논픽션 작가로 변해가지만 우리가 어린 시절에 간직한 감성의 선율은 가슴 어디선가에서 흐르며 현실의 무게감을 덜어주고 있을 것이다.


우린 그렇게 시간을 간직하며 나이를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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