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비를 만났다.남의 집 처마 밑에 들어가서 비를 피하고 내리는 비를 내다본다. 떠나가는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빗방울이 발등에 떨어지고 한번씩 휘익 치고 지나가는 찬바람에 빗방울 가루가 가슴에 후드득 뿌린다. 비는 이내 그칠 것 같지 않고 방안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나는 얼마만의 나그네인가 <비 치는 남도 _고형렬 시인>
"대기업 임원의 색을 빼는데 시간이 꽤 걸릴거예요. 만약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자신이 어디에서 일했던 기억들을 지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대기업의 시스템조차 없을 것이고 본인이 직접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 연습을 지금부터라도 해 나가셔야 해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회사 다니는 동안 계속해 왔던 일들이지만 대부분 직급이 올라가면서 직접 하지 않았었지요.
그래서 처음에 다시 직접 하려 하니 힘이 들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니 지금은 오히려 안정감이 생기더라고요. 처음 퇴직을 통보받을 때는 어리벙벙해요. 왜 나였을까?라고 의문도 생겼었습니다.
분명 스스로가 임원의 임기는 짧고 언제라도 나갈 수 있다는 자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렇게 되니 당황스럽긴 하더라고요. 하지만 늘 생각하고 있던 것은 나가도 내가 해 왔던 것들을 찾아 스스로 다시 나를 만들어 가자라는 생각이었어요.
지금은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나와서 많은 고민과 힘든 시간들을 보내며 스스로 대기업 임원의 두꺼운 옷을 벗어 버리려고 노력했어요.
후배도 언젠가는 지금의 직업에서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자신이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를 미리 생각해 놓는 게 좋을 듯해요. 그래야 혼돈의 시간을 줄일 수 있어요
지금은 대리 때처럼 직접 ppt도 만들고 문서도 작성하며 새벽까지 일을 하기도 해요. PT도 직접 발표하며 세일즈를 하기도 해요.
대기업 임원으로서 여러 다양한 스트레스는 줄어들었어요. 뭐랄까 대기업 임원의 두꺼운 옷을 벗어던지니 오히려 부담감에서 벗어나 가벼워진 느낌이 들기도 해요"
임원으로 퇴직한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들은 남은 생애를 무엇으로 채워가며 활동을 할지이다. 회사라는 틀 속에서는 임원이라는 타이틀은 높은 위치는 맞긴 합니다. 당연히 조직에 있는 직원들은 임원의 생각과 방향에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팀장과 임원으로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실무를 놓고 조직관리와 경영의 방향 설정에 고민을 하게 됩니다. 실무는 위임하는 게 되고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판단을 합니다.
하지만 회사를 떠날 시점에는 사회라는 현실에서 냉정히 회사의 틀을 벗어던지고 직책이 있는 명함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실력으로만 경쟁하게 됩니다. 그때는 자신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야 합니다. 당연히 조직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회사 내에 있을 때는 자신이 갑의 위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조직과 시스템이 있어 일을 해 나가기가 수월해집니다. 그리고 조직과 시스템에 대한 가치가 자신의 능력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혼자서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본인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시스템과 인력으로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지점에 있습니다. 막상 회사를 떠나면 평범한 하나의 직원과도 같은 상황이 됩니다. 본인이 해 왔던 성과들도 시스템 내의 직원들이 다 도와주고 협조해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대기업 임원으로 혼자서 해 나가야 하는 현실에서는 그런 걸 기대하는 것은 자신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모습입니다.
현실은 냉혹합니다. 퇴직하면 본인이 할 줄 알아야 하고 본인이 작은 것부터 큰 실무까지 해 나가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퇴직임원이 되면 나이도 사회에서 부담이 되는 시점이고 연봉도 부담되는 시점이기에 회사들은 대기업 퇴직임원을 부담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회사에 있을 때 그런 마인드셋을 장착해 놓고 자신의 전문 분야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회사를 나와서 전문 분야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현실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을 통해 전문성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당연히 실무적 센스도 잊히지 않게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퇴직임원들의 부류도 여럿입니다. 어떤 임원은 아직도 자신이 회사의 임원인 듯 대우받고 싶어 하며 허세를 부리는 분도 있고 어떤 임원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 자격증과 사회 커뮤니티에 참석하여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가려는 임원도 있습니다.
어떤 임원은 일을 하고 싶어 예전의 대기업 때를 벗고 육체를 쓰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일을 하시는 분도 있고 작은 점포를 열어 장사를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가장 힘들어하시는 임원은 자신이 회사를 다니는 동안 경제적 준비가 되지 않아 생계를 고민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현직 대기업 임원들 중에는 회사 다니는 동안 품위 유지를 위해 돈을 더 많이 쓰며 스스로의 경제적 자립을 덜 고민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임원의 임기는 늘 한정되어 있고 장기간 유지되는 게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결국 퇴직 후 경제적 준비가 되지 않은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일수록 급해지고 판단력이 흐려져 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임원은 계약직입니다. 언제라도 회사의 상황에 따라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임원이 회사에서 잘 나가도 그건 순간일 뿐입니다. 임원은 매년 계약여부가 결정됩니다.
정성적 평가와 정량적 평가가 모두 중요하고 상사와의 관계도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됩니다. 대기업 임원까지 하게 되면 명예를 얻고 혜택도 받지만 그건 순간일 뿐 영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냉엄하게 생각해 보면 정직보다 계약직으로 회사의 눈치를 더 봐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합니다.
위와 아래 직급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어 경쟁력 없이 회사를 떠나게 될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퇴직임원이 조언한 것처럼 대기업 임원의 때를 벗어던질 수 있으려면 충분히 자신이 회사를 다니는 동안 준비할 수 있는 분야에 전문성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당연히 회사를 다니며 자신의 역량도 발휘하고 회사의 방향에 맞게 성과도 창출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라도 떠났을 때 자신 스스로에게 가능성을 만들 수 있는 분야를 미리 준비할 필요는 있습니다.
만약 자신이 가진 자산이 충분하다면 다른 고민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은 하루하루 그리고 남은 삶을 살아가는데 에너지가 되어줄 수 있기에 일을 통한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임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회사를 다니는 리더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50대의 나이가 되어 퇴직하게 되는 리더들은 절약또는 투자를 통해 경제적 자립을 해 놓고 자신의 분야를 개척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퇴직 후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퇴직임원의 조언이 와닿습니다.
"회사에서 근무할 때 자신이 떠날 시점을 늘 생각해 보고 떠나야 하는 상황에 미련 없이 떠났으면 해요. 그리고 대기업의 두터운 혜택의 편리성을 빨리 잊어야 해요.
하지만 그게 현실로 다가올 때는 아무리 스스로 다짐을 해도 미련과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