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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May 23. 2024

꼬인 회사 일을 풀어 주는 '마음의 비문'

회사 일이 당신의 인생을 꼬이게 할 수는 없습니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낯섦에 대한 용서할 수 없음, 실망스러움에 대한 인정할 수 없음, 비겁함에 대한 치 떨림, 거절당함에 대한 납득할 수 없음, 부당함에 대한 조건반사.... 우리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정답 이외의 것이 너무나 엉뚱하고 실망스러울 때에 분노를 느끼고 치욕스러워한다.

표정을 바라보고 흘리는 눈물이 슬픔과 연민이라면, 표정이 아닌 태도 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분노와 감격이다. 분노는 그만큼 근원을 본다. 용서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고 납득할 수도 없는 상황에 대하여 치가 떨리고 노여운 것은, 상황 자체보다는 그 배후에 도사린 잘못된 태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릇됨을 응축하고 있는 자세, 그것을 볼 줄 줄알 때에 우리는 분노하며 운다. <마음사전, 김소연>



후배가 전화로 답답함을 호소합니다.


"회사 일들이 꼬이네요. 일들도 잘 안 풀리고 상사와도 관계가 썩 좋지 않아요. 자꾸 화사 일들이 꼬이는 느낌이 들어요"


친한 후배가 답답해 하지만 내가 그 친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전후 사정 이해 없이 쉽게 답을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하도 답답하니 저한테 하소연을 푸는 듯합니다. 제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들어주고 간단하게라도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일들이 꼬였다면 시간이 지나면 그건 풀릴 거야. 만약 풀리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이 너 인생이 꼬이는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말았으면 해"


당연히 일들이 잘 안 풀리면 답답합니다. 그런데 일들의 문제가 아니라 상사와의 소통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마다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고 접근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다른 점들을 서로 이해시키고 접점을 찾아가는 것이 매우 어려운 과정이기에 회사생활 하는 동안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문제를 푸는 것은 쉽지는 않습니다. 결과를 보는 입장과 과정을 보는 입장이 다르고 직원들은 과정에 대한 부분들을 이해해 주길 원합니다. 하지만 상사는 결과를 바라는 부분들이 강하다 보니 서로 충돌할 때가 많습니다.


모든 일들은 과정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이 험난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와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과정들을 칭찬으로 인정해 주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회사 내에서는 결과가 과정을 이야기해 주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였다 해도 그 결과가 나빠 나와 회사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면 과정의 의미가 퇴색되게 됩니다. 결국  마무리까지 잘 되어 결과가 좋아야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결과를 만들어 내기까지도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직원과 상사와 의견이 다를 수 있고 과정이 지난하고 서로의 감정에 상처를 주며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가 안 맞는다는 걸 알게 되고 서로 불편한 시간들이 오래 갑니다. 그럴 때 직장인들은 답답함을 느낍니다.


서로의 감정들이 서로를 아끼는 과정이라면 어럽게 겪게 되는 시간도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지만 오직 목적만 갖고 달려드는 이유라면 그 시간은 지치고 상처받는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혼한 부부도 그리고 자식과 부모도 다른 관점과 시각으로 세상을 보며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의견에 평행선을 그으며 살아가는 경우도 많은데 하물며 직장 내에서 직급을 갖고 만난 사이라면 더욱더 간극을 좁히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회사 생활이 꼬여진다는 느낌은 무엇인가 답답함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상사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자신이 하는 업무에 대한 불만일 수도 있고 주변 환경에 대한 답답함들이 종합적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 상황들이 복합적이겠지만 이런 답답함이 지속될수록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의욕도 떨어지게 됩니다.


회사 속에 자신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 답답함이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갑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버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까요? 아니면 때려치우고 다른 곳을 찾아볼까요?


그것에 답을 누가 줄 수 있을까요?


답답함에 대한 응어리를 풀어 주기 위해 후배의 말을 들어줄 수 있어도 정답을 줄 수는 없습니다. 어설픈 답을 던져 놓고 후배를 이해하는 척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우선 그냥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회사에서 일이 꼬인다는 느낌이 든다고 후배의 인생이 꼬이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꼬이는 것은 풀어집니다. 풀어지는 방법을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이 세상 살아가며 꼬이는 실타래는 계속 존재합니다. 그게 회사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원들은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꼬여 있는 시간이 회사에서가 가장 길 것이고 학생은 학교가 메인 무대이기에 학교에서 꼬여 있는 시간이 가장 길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을 살아가며 꼬여있는 느낌을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 꼬임을 풀 수 있는 것도 스스로의 마음과 자세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내면에 부처가 있다'는 불교의 말처럼 자신이 느껴지는 꼬임도 자신의 내면에서 어떤 생각과 태도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꼬인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답을 찾기보다는 현 상황에서 자신이 해 나가야 할 것을 그냥 해 나가며 앞으로 나가는 게 어떨까요!


정답은 절대 없습니다. 자신의 선택과 자신이 그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며 접근하느냐만 존재할 뿐입니다.


꼬였던 게 자연스럽게 풀리는 순간이 올 때 우리 주변의 운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자신 스스로의 마음이 풀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회사의 일이 당신의 인생을 꼬이게 할 수는 없습니다.


몇 번 넘어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몇 번 일어섰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에이브러햄 링컨>


자신의 인생에서 회사 일이 지금 이 순간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듯 하지만 인생은 작은 돌을 던져도 흔들리지 않는 대양이기에 절대로 회사 일이 꼬여도 당신의 인생을 꼬이게 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늘 시작일 뿐 아직 끝을 바라볼 시간이 되지도 않았고 우리는 인생이라는 먼 여정을 아직도 걷고 있는 중입니다.




후배가 던진 말에 답답함이 묻어 있고 힘듦이 묻어 나옵니다.


그래도 선배로서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 말뿐입니다.


"회사 일이 꼬인 듯해도 그게 너 인생을 꼬이게 할 수는 없어. 힘내라! 후배야!"


오늘 하루 회사를 다니는 저에게도 '마음의 비문'으로 위로를 합니다.  


"회사 일이 꼬인 듯해도 그게 너 인생을 꼬이게 할 수는 없어.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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