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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30. 2024
가장 맛있는 비빔밥 랩소디-50대 혼자 사는 일상
양푼 비빔밥이 기억하는 어머니의 미소
나의 어머니는 가늘고 작은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커다란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이 마음은 모두를 반겨 주었고 이곳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숙소와 같은 곳이었다. <마크 투웨인>
냉장고에 있는 나물과 김치로 비빔밥을 해 먹었습니다. 비빔밥 하면 격이 있는 전주비빔밥을 떠 올리지만 집에서 먹는 비빔밥은 고민 없이 만드는 음식입니다. 넓은 그릇에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담아 밥과 비비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맛을 냅니다. 재료는 고민 없이 냉장고에 있는 잔반들입니다.
어떤 반찬도 괜찮습니다. 볼이 넓은 그릇에 그냥 넣어 비비면 끝입니다.
어릴 적 어머니는 마땅한 반찬이 없을 때 자주 비빔밥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남은 반찬들을 모아 양푼에 비벼주시면 그게 그렇게 맛났었습니다.
어린 시절은 늘 배고팠습니다. 먹어도 또 배고팠습니다. 특별하게 사 먹는 음식이 없었습니다. 거의 어머니가 해 주시는 밥과 반찬이 전부였습니다. 집안 냉장고에는 고기반찬은 없었습니다. 나물반찬, 김치, 오이무침, 콩나물 등 야채 반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대가족이다 보니 밥을 많이 해 놓았고 집에는 찬밥이 늘 남아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부엌에서 일하시며 끼니때마다 반찬을 하시고 계셨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 갔다 오면 배가 고픕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늙은 오이로 만든 노각무침과 마당에서 뜯어 만든 비듬나물을 넣고 김치를 쓸어 넣어 찬밥과 비빕니다. 당연히 고추장을 한 스푼 넣습니다. 마지막은 참기름입니다. 그리고 쓱쓱 비빕니다.
그리고 다른 반찬은 필요 없습니다. 어머니와 나 두 사람의 숟가락만 있으면 양푼 비빔밥은 금방 사라집니다. 어머니도 자식과 먹는 밥이 맛있나 봅니다. 어린 시절 꼬마였던 제가 어머니 눈에는 얼마나 귀여웠겠습니까!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지는 비빔밥을 먹으면 나른해집니다.
나이가 들면서 소화력은 약해졌지만 어린 시절에는 밥 먹고 낮잠을 자도 개운했습니다. 나무 마루에 누워 세상 걱정 없이 낮잠을 잡니다. 낮잠 자는 동안 어머니는 부엌에서 계속 일을 하십니다. 무슨 일이 그렇게 많으신지 쉬지도 않고 일을 하십니다.
푸른 하늘에 떠 있는 흰 뭉게구름을 보며 나무마루에 누워 잠에 듭니다.
살다 보니 저도 어머님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삶이 양푼 비빔밥처럼 편안하고 즐겁게만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받고 멍들 때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내고 살아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 세상 늘 편안할 수는 없고 늘 불편할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양푼비빔밥은 냉장고의 잔반들이 모여 만들어진 음식이지만 어머님의 손맛이 같이 녹아들어 간 음식입니다. 잔반이 존재하기도 전에 어머니가 만드신 반찬이 존재했기에 비빔밥은 존재할 수 있던 것입니다. 잔반이기 전에 정성이 들어간 반찬이었습니다.
누군가 존재했기에 지금 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손맛이 존재했기에 냉장고에 잔반이 있었던 것입니다. 비빔밥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큰누나가 만들어 준 반찬들을 꺼내 큰 그릇에 담아 비빔밥을 만듭니다. 아주 간단하고 편하게 만듭니다. 한 입 먹어보니 예전 어머니와 같이 먹던 맛과 비슷합니다. 누나도 어머니의 손맛을 잊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결혼 후에는 이런 맛을 보기 힘들었습니다. 어머니에게서 느껴지는 양푼비빔밥 맛을 잊고 있었습니다.
양푼비빔밥은 어려운 음식이 아닙니다. 그냥 있는 음식들을 혼합하여 만들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음식의 궁합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양푼에 담고 비비면 됩니다. 다양한 반찬들이 서로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수긍하고 이해하고 밥과 잘 섞입니다.
서로가 눈치 보고 서로가 뽐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서로가 섞여 하나의 양푼비빔밥으로 탄생됩니다. 그 과정까지 오기에는 음식을 만드신 분의 정성이 있었을 겁니다. 반찬에 손맛을 더한 누군가의 애정이 있었을 겁니다. 그 애정을 오늘 다시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가 계신 곳에서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며 양푼 비빔밥을 한번 더 먹고 싶습니다. 어머니에게도 한 숟가락 떠 드리고 미소 지으며 그 시간을 즐기고 싶습니다. 따듯했던 어머니의 마음과 자식에 대한 애정 어린 눈빛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습니다.
지나온 시간이 아쉽기도 합니다. 매번 말씀하셨던 "살아 있을 때 한번 더 보자. 죽으면 아무 소용없다"라는 말씀이 비빔밥을 보며 다시 생각납니다. 회사일로 바쁘다 와이프와 아이일로 바쁘다 하며 핑계되던 아들이 미안함을 느낍니다.
어머니는 늘 착하게 성실하게 사셨고 주어진 상황을 버티며 살아오신 분입니다. 양푼비빔밥 안에 있는 반찬들이 서로에게 양보하며 조화를 이루 듯 어머님은 그렇게 살아오셨습니다. 인덕이 넘치셨던 분입니다. 그런 아름다운 마음이 저에게 전달됩니다. 그리고 남은 삶을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어머니라는 단어는 잊힐 수 없는 단어입니다. 죽을 때까지 간직하는 단어입니다.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제 곁에는 살아 있습니다. 그냥 어머니의 미소 짓던 모습이 그리워집니다.
엄마_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는 말. 외로울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 절망이나 공포에 휩싸일 때 가장 먼저 찾는 말. 가장 늦게 죽는 말. 죽는 순간까지 완전히 놓지 못하는 말. 아빠는 짧지만 엄마는 길다. <마음사전_카피라이터 정철 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