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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IM May 09. 2020

초상화를 그립니다.

우사단 홍작가

 

스튜디오 옥상에서 바라본 남산

 


 초여름 햇살과 늦가을 바람이 동시에 들이치는 날을 봄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아무래도 4월은 여기저기서 조금씩 빌려 쓰는 달인가 봅니다. 보아하니 제 것이라고는 꽃가루뿐인 듯한데 이건 정말이지 비처럼 쏟아진 하루였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체질이 바뀌는 걸까요? 어릴 때는 없던 알러지 덕에 이제는 봄이 곤욕입니다.


그래도 아름답습니다. 서서히 푸르러지는 공원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지요. 벚꽃 잎을 떨쳐낸 남산은 진한 녹색으로 물들어 갑니다. 산이 갈아입는 옷이 눈에 들어오는 건 상당히 기쁜 일이지요. 남산이 좋아서 이 후암동 자락에 자리를 잡았거든요. 다만 이 사실을 자각하는 건 조금 씁쓸한 일입니다. 안 그래도 요즘 친구들이 부쩍 한탄하더군요. 이제는 꽃과 자연이 눈에 들어올 나이가 되었다면서 말이지요. 술과 여자와 농담이 삶의 전부였던 시절은 그렇게 지나가나 봅니다...... 농담입니다. 벌써 그럴 수는 없죠.


오늘은 홍성용 작가가 제 스튜디오를 찾아왔습니다. 편의상 홍작가라고 부르겠습니다. 홍작가는 옻칠과 타투를 소재로 작품 세계를 펼치는 현대미술 작가입니다. 특히 홍작가의 타투 작업은 제 작업과도 비슷한 지점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밖에 없는 타투 도안을 만들어 주거든요. 물론 몸에도 새겨 드립니다. 예쁜 여성에게는 최대한 아프지 않게 시술한다는 근거 있을 수도 있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농담입니다.


홍작가는 페도라를 즐겨 씁니다. 검은 안경테는 얼굴에 맞춘 듯 어울립니다. 오늘은 품이 편안한 네이비 블레이저에 잘 빠진 슬랙스를 입고 깔끔한 단화를 매치했습니다. 멋진 가죽 가방을 크로스로 매고 세련된 느낌의 전동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습니다. 소문난 멋쟁이답게 스타일을 몸에 맞추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이탈리안의 감성과 런던 동부의 느낌, 그리고 이제는 세계적으로 핫한 서울러의 느낌까지 배어 납니다. 뭐 늘어놓고 보니 잡다한 스타일에 불과하군요. 어쨌거나 홍작가는 자전거를 타고 여유롭게 제 스튜디오를 그냥 지나쳐버렸습니다. 스타일은 좋은데 뭐랄까, 길치입니다.


스튜디오를 찾은 홍작가



항상 수염을 길렀던 홍작가가 오늘은 말끔히 면도를 하고 왔습니다. 머리 색도 바뀌었는데, 작가 주제에 부끄럽지만 정확한 색상은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금발인 듯합니다. 감탄했습니다. 이런 스타일이 좀처럼 어울리기 힘든데 말이지요. 언뜻 저와 동년배로 보이는 홍작가는 실은 저보다 8살이 많습니다. 말은 안 했지만 부럽습니다. 제가 저 나이에 저렇게 어려 보일 수 있을까요?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술과 여자와 농담의 바다에서 영원히 헤엄칠 텐데요. 농담입니다.


사실 작가로서도 한 사람의 인생으로서도 저보다는 선배라 오늘은 조금 긴장됩니다. 대충 쓱쓱 예술가인 척 넘어갔다가는 이 세계에서 뒷소문이 떠돌겠지요. 그럼 저는 어디에선가 날아오는 빈 깡통을 맞으며 버림받은 외톨이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예술 세계에서 밀려나 홍작가가 먼저 죽기만을 기다리며 힘겨운 나날을 살아가겠지요. 아마 저 양반은 저보다도 오래 살아버릴 테니 저는 그렇게 땅에 묻히고 말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한번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끝이 없군요. 어쨌거나 그만큼 긴장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같은 작가이기에 미주알고주알 설명 안 해도 되는 점은 편하더군요.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태원에는 명물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이슬람 사원이 자리하고 있지요. 밤이면 사원의 두 타워가 은은한 불을 밝힙니다. 신의 성전의 불빛이 밤의 성전 이태원에 축복을 내리는 것이죠. 이 영험한 불빛 아래 홍작가의 작업실이 있습니다. 이태원의 핫플레이스, 홍작가는 우사단 길의 터줏대감입니다. 이 양반, 이래저래 핫하게 삽니다.


출처 홍작가 인스타 @tattooist_moment



믿기지 않겠지만 홍작가는 한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이름은 야곱, 벌써 11살입니다. 대학 3년에 결혼식을 올렸다니 적잖이 되바라진 남자였습니다. 부인은 한 살 연상의 미쿡-한쿡 분입니다. 장인어른은 케냐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목사님이시더군요. 종합하자면 홍작가는 예술가인 주제에 모태신앙 신자인데다 무려 목사님 딸을 대학 3년에 채간 남자입니다. 뭔가 핫한 듯한데 어째 좀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나는 홍작가를 좋아합니다.


홍작가는 서울대 박사 수료생입니다. 석사는 영국에서 마쳤고, 여기저기 대학 강의도 나갑니다. 앞서도 언급했듯 뭐가 좀 안 맞는 듯합니다만 그게 홍작가의 매력이지요. 게다가 못 다루는 게 없습니다. 타투는 물론 목수 일도 합니다. 어지간한 인테리어는 혼자 맡아서 처리합니다. 상당 기간 입시 강사로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기도 했습니다. 문득 궁금해져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다 잘하는 게 당신이 원했던 거냐고 말이지요. 주저 없이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작품 활동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세월이었기에 이것저것 하다 보니 이것저것 하게 되었다고 말이지요. 하나만 해도 모자랄 시간에 모든 걸 했어야만 하는 시간이, 그리고 그 시간의 고단함이 공기의 떨림에 묻어났습니다. 누구보다 그 심정을 이해하기에 저는 잠시 입을 다물었습니다.


가정을 지켜가며 그 많은 일들을 소화하고 작품 활동을 지속한다는 게, 아니 해낸다는 게 어느 정도의 무게일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나는 감당할 수 없어 피해왔던 무게라는 것만은 고백해야겠군요. 선배란 그저 나이가 많다고 되는 건 아닌가 봅니다. 

스튜디오에서




홍작가는 언제나 웃습니다. 웃음이란 홍작가 얼굴에 있어서 일종의 디폴트 값이죠.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홍작가의 웃는 얼굴을 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홍작가가 이 프로젝트를 신청했을 때부터 그랬습니다. 내게는 항상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 세상에서 가장 슬퍼 보였습니다. 선입견이라기보다는 뭐랄까, 그냥 저만의 느낌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웃음기 가득한 얼굴이 세상을 향한 방패만은 아닌듯싶더군요. 타고난 유쾌함과 에너지가 어느 정도는 분명 느껴졌습니다. 두 가지가 모두 공존하면서 살아낸 얼굴인 듯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웃기 직전의 얼굴, 조금은 생각에 잠긴 듯도 한, 그러나 조금은 모호한 얼굴을 그리려 했습니다.


지루한 게 세상에서 가장 싫다는 홍작가는 무려 3시간을 의자에 앉아 모델이 되어 주었습니다. 펑퍼짐한 엉덩이를 적잖이 움찔거리며 말이죠. 그 하찮은 꼴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혼내주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어쨌거나 형이니까요. 이 자리를 빌려 홍작가에게 정중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당신의 인생을 그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어서 말이지요. 고맙습니다.



                                                                                                                         



저는 한 사람의 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초상화를 그립니다. 앞으로 할 수 있는 한 꾸준히 해볼 요량입니다. 당신 삶의 이야기는 그림과 글, 그리고 유튜브 영상을 통해 남겨질 예정입니다. 물론 민감한 이야기는 저만 듣겠습니다. 얼굴 공개를 꺼리시는 분들은 미리 말씀해 주시면 영상 또한 편집하겠습니다. 완성된 그림은 구매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어쨌거나 당신의 인생을 그리고 싶습니다. 가볍게 노크해 주세요. 

Link: instagram@woodyplanb


                                                                           -작가 김성우-

                                                                                                                                                       -작가 김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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