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힘들었나요
#0. Prologue: 퀀텀 리프의 시작
#1. 지원동기가 삶의 목적으로
#2. Reality : 월급쟁이의 현실
#3. 사모펀드의 투자
#4. 인턴 : 대학생과 직장인 그 중간 (1)
#5. 인턴 : 대학생과 직장인 그 중간 (2)
#6. 연애와 일 Balance
#7. What Now?
인턴은 끝이 있어요. 아 그래서 버틸 수 있습니다!
대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직장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인턴 생활을 거치면서 배운 것들이 꽤 많았다. 다만 그 과정이 힘들었던 것뿐이지. 나열하자면,
아침에 일어나기
조직생활
일에 대한 책임감
늦잠 자는 게 이렇게 좋은 건지 몰랐어
대학생활과는 차원이 다른 기상이다. 학교에서 걸음으로 5분 정도 거리에 살기에, 1교시 수업이어도 오전 8:30분에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8시까지 출근인 회사에선 6시 30분 정도엔 일어나야 안전하다. 다행히 회사가 가까워서 망정이지 판교나 강남이었다면 지옥일 뻔했다. 결국 매일 -2교시를 경험하며 살아가야 한다.
두 달 정도는 매일 잠들기 전 지각을 면하기 위해 되게 긴장하고 잠에 들었다. 6시 30분... 6시 30분... 불경을 외우듯 잠에 들고일어나서 헐레벌떡 준비하였다. 인턴 생활 중의 내 유일무이 목표는 지각 안 하기였음을 고려하면 목표를 이룬 인턴 아니었을까라고 자만에 빠져본다.
사실 세후 100 중반을 버는 인턴이 이러면 곤란하지만, 카카오 택시는 출근길의 구세주인 경우가 많았다. 머리가 예쁘지 않아 다듬다가, 쓸데없이 SNS를 뒤적거리다 2-3분을 흘러 보낸다면 그땐 귀여운 라이언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택시 타다가 느낀 건 '카카오 택시' 시간이 정말 정확하다는 거였고, 나중에 카카오 홈페이지까지 들어가 봤더니 AI가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AI 만세!
인턴이 지난 지 1주 정도 지났으나 때때로 회사 생활이 그리울 때가 있다. 다만, 늦잠과 여유 있게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건 양보할 수 없다.
군대에서 조직 생활 선행 학습한 게 이리 도움될지는 몰랐지
다들 좋으신 분들이고 잘 챙겨주셨기에 적응해 나가는데 무리는 없었으나, 다시 이등병이 된 느낌이었다. PEF 특성상 다들 경력직이시기 때문에 말단 직원이신 분도 나이 차가 꽤 난다. 따라서 맞선임이 없는 것 같은 기분에 조직 자체의 특성도 타이트하니 조금 더 힘든 막내 생활을 보냈다고 생각한다.(자기가 제일 어려운 법) 때로는 다른 회사들의 인턴 무리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했던 적도 있지만, 오히려 나이 차이도 좀 나는 직원분들과 있었기에 조금은 불편했어도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Professional 하다 = 책임감
'책임감'이 바로 대학생과 직장인의, 아마추어와 프로를 구별하는 가장 큰 차이라고 느껴진다. 대학교 생활을 하다가 마음에 안 드는 팀 프로젝트가 있거나 과제가 있으면 '어느 정도 / 대충' 마무리하면 되지만, 회사에선 얄짤없다. 맡은 일은 책임감 지고 완벽하게 끝내야 한다. 설령 그게 마음에 드는 업무가 아니더라도...
인터넷에서 군대 선임들이 하는 잔소리 중 최악은 "네 일이라고 생각하고 좀 해봐."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군대에서는 아무래도 선임들이 후임들에게 모든 일을 떠넘기기 때문에 그렇지만... 직장에서는 저 말이 곧 진리라고 여겨도 괜찮을 것 같다. 사람은 책임감이 생기면 달라진다.
주니어의 가장 긍정적인 태도는
Senior의 일이 곧 자기 일이요,
Senior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고 믿는 것
-사수님-
사모펀드에서 나는 선배님들이 믿고 맡겨주신 덕분에 실제 투자 의사 결정과 관련된 재밌는 업무들도 많이 했으나, 단순 리서치나 다소 흥미가 떨어지는 업무들도 꽤 많았다. 처음에는 무작정 했으나 재밌는 업무도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조금 지루해져 갈 찰나에 A 선배님이 내게 지나가듯이 "귀찮은 일도 네 일이라고 생각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질 걸."라고 말하셨다. 지루해하는 것이 내 표정에서 드러났나 보다. 그냥 지나가는 잔소리였을지 몰라도, 저 말이 얼마나 날 세게 때렸는지 모른다.
이렇게 글로 쓰다 보니 정말 힘들었던 점은 이른 아침 기상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내게는 좋은 직장이었고 사람들도 좋았으며 배우는 게 많았던 즐거운 인턴 생활이었다. 하지만 첫 출근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이불 킥이 저절로 나오곤 한다. 출근하기 2일 전 종강파티 기념으로 술을 너무 마셨더니 숙취로 출근 전 날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었다. 전 날에 룸메이트 형이 죽을 사주지 않았다면, 출근을 못할 불상사가 생겼을지도 모른 일이다. 한 여름날 술병이 난 상태로 머리를 올리고, 넥타이를 매고, 불편한 새 구두를 신고 출근한 그 날은 정말 매 순간 칼날 위를 걷는 것만 같았다. 이 글을 읽는 인턴 분들은 꼭 2일 전부터는 금주하시길 바란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