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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geun Jun 20. 2019

만렙 직전 사피엔스

lv.99 이후에는 뭐하지


"사피엔스"라는 책을 산 건 순전히 베스트셀러였기 때문이었다. 별다른 고민은 없었다. 한편으로는 두꺼운 책을 완독 하고 싶었다는 욕심 정도...? 이렇게 샀던 책들은 대부분 몇십 페이지가 채 읽히지 못한 채 책장의 한 구석으로 가고는 했다. 이 책도 그럴 뻔했다.



"인류"와 "역사"라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 둘의 조합은 날 지치게 만들었다. 역사는 이제 조금이나마 관심은 갖게 되어 그렇다 치자. 인류라는 단어는 교과서에만 나올 것 같은, 실생활에서 전혀 쓰지 않는 단어였다.



그래도 교환학생을 오고는 조금이나마 인류라는 단어에 적응이 되었다. 방음이 되지 않는 기숙사의 옆방에는 핀란드 친구가 여자 친구와 통화를 자주 했고 그 건너편에는 항상 시끄러운 슬로바키아 친구가 살고 있었다. 주방에서 항상 떠들고 있던 친구는 브라질에서 온 착한 친구였다. 평소 뉴스를 보면 미국, 중국 아니면 뭐 브렉시트로 화제인 영국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같이 살다 보니, 어쩌면 우리가 같은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에 속해 있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있았다. 살아왔던 배경도, 언어도 다르지만. 라면을 맛있어하고 보드카를 마시고 얼굴을 찌푸릴 때. 우리는 똑같은 종이야!라는 게 본능으로 느껴졌다.



이런 이유일지는 몰라도 사피엔스를 꾸역꾸역 두 달만에 완독 하게 되었다. 500쪽이 넘는 이 책을 읽고는 브런치에 글을 안 남긴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쓴다.




사실 역사라 하면 조선시대, 고려시대, 제2차 세계대전, 미국 독립전쟁 등 국가의 개념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면 셰익스피어나 아인슈타인, 마틴 루터 킹 같은 특정한 인물에 한정된다. 사피엔스는 달랐다. 크게 크게 봤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종의 역사, 즉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흘렀는지 바라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책은 인류의 역사를 크게 3개의 단원으로 분류했다.



인지 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지극히 주관적인 정리이고 단순화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비약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 주시면 좋겠다.



인지 혁명: 동물 vs 사람


지구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요


RPG 게임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레벨 99를 찍는 것이 이 게임의 목표다. 인지 혁명 이전에는 우리는 지구라는 게임 세계 속에서 주인공이 아니었다. 오히려 게임에서 가장 낮은 레벨의 몬스터 정도라 할까. 다른 동식물들과 미친 듯이 싸워가며 생존해가는 것이 이 몬스터의 목표였다. 레벨을 올리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굶어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이 시대의 주인공인 공룡에서 보자면, 인간은 무리 지어 뛰어다니지만 느려 터지며 날 수도 없고, 물속에서 숨을 쉴 수도 없는 불쌍한 먹잇감에 불과했다.


우리는 다람쥐 정도?


하지만 인지 혁명이라는 패치가 인간에게 적용됐다. 그때부터 인간은 유연한 언어를 무기로 협력하고 자기보다 높은 레벨의 몬스터들을 물리치기 시작했다. 인간의 순수한 힘은 동물에게 한참 모자랐기에 얼마나 뭉치느냐가 결국 그들의 힘을 결정했다. 즉, 많은 사람들을 유혹할만한 상상의 질서가 필요했고 인간의 언어로 신화와 종교 등을 창조해냈다.



예전 우리가 살 던 이 땅에서는 곰이 인간으로 변했다는 신화를 다 같이 믿음으로써 이 최하위 몬스터들에게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협력으로 이어졌다. 호모 사피엔스는 신화를 바탕으로 동물들을 이겨내며 서서히 게임의 주인공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농업혁명: 저렙일 때가 힘들어



힘들었지만 필요했던 과정



바람의 나라나 메이플스토리 아니면 WOW같이 한 때 유행했던 RPG 게임들을 하다 보면 유저들이 가장 게임을 힘들어하고 많이 접을 때는 2~40대의 저렙 구간이다. 무엇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생각보다 렙은 잘 안 오르고. 게임에 재미가 붙지는 않는 그런 구간이다. 이 힘들었던 기간이 바로 농업 혁명 이후이다.



책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이 희대의 사기라 말한다. 수렵채집 시대보다 인간은 잘 먹지도 못했으며 온갖 질병들로 인해 오히려 더 불행한 시대를 살았다. 다만, 추수 시절이 오면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 고된 노동을 해왔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가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우리가, 지구에서 무서울 것이 거의 없는 고렙의 인간들이 될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레벨일 때 RPG 게임에서 우리는 온갖 노다가로 길들여진 능력으로 좋은 무기와 방어구를 구하고 앞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DNA를 탑재하게 된다. 저자도 말했다. 농업혁명 시대 때는 불우한 환경에서도 살아나가는 법을 배운 것이라고.



농업혁명 시대는 정착 문화와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를 불러왔다. 그리고 이때부터 상상의 질서는 더욱더 확장되고 정교해진다. 더욱더 많은 인간을 하나의 믿음에 묶어놓으려면 단순한 신화로는 역부족이었을 것이기 대문이다. 크게 세 가지의 목표가 혼합되었다. "화폐, 제국, 종교".  


힘들지만 다 같이 열심히...


이러한 질서들이 봉건주의와 기독교를 대표로 한 여러 종교들이 고된 농사에 지친 사람들을 하루하루 버텨가게 했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전에 90%의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었다는 통계를 보고 유추한다면 아직도 인간은 자기 몸 하나 스스로 건사할 수 없는 저렙에 머물러 있었다.





과학혁명: 마지막 업그레이드 그리고 자본주의



지구에서 무서울 것이 하나 없는 개체가 되었지만 인간은 여전히 질병과 굶주림 앞에서 너무나도 연약했다. 그런 인간은 과학으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의료 기술은 감기만으로도 잘못하면 죽던 인간의 기대수명을 미친 듯이 끌어올리기 시작했고,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증기기관은 인간이 힘을 빌리던 소의 힘과도 견줄 수 없었다.



그리고 상상의 질서는 더욱더 견고하게 되었다. 상상의 질서의 요소인 화폐, 제국, 종교는 주식회사를 구심점으로 삼아 자본주의라는 이름을 가진 채 엄청난 힘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본주의를 신봉하지 않는 나라가 하나 없으며 이렇게 상상의 질서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상호작용인 "신용"을 바탕으로 기하급수적 성장을 하면서 인류는 레벨업을 미친 듯이 하게 된다. 자본주의는 상상의 질서 끝판왕으로 인류를 끊임없이 동기 부여하며 원화는 재화를 언제든지 얻을 수 있고 심지어 "길가메시" 프로젝트로 인간이 더 이상 죽지 않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  이제 인간은 게임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 알기에 만렙을 찍는 건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인류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올라섰다. 과연 인간은 유토피아에서, 모든 것이 충족된 lv.99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유발 하라리는 인간은 좋은 일이 있더라도 행복은 순간이며 다시 정상적인 수치로 돌아온다고 한다. 결국, 유토피아가 디폴트인 세상이 된다면 행복은 순간이요, 어쩌면 인간은 지금처럼 고뇌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그때 인간은 선택해야만 한다. 자본주의 같은 새로운 상상의 질서를 만드는 사회적 방법을 취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DNA를 만들어내 호모 사피엔스 시대를 끝내는 생물학적 방법을 취할 것인가?



게임에서도 만렙이 되면 유저의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1) 아예 새로운 캐릭터를 새로 생성하거나 다른 게임을 하는 유형 2) 만렙 이후에서도 더 좋은 아이템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유형. 어떤 것을 선택하건 유저의 선택이지만 인류의 경우에는 "호모 사피엔스"가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1. 인류는 상상의 질서 속에 레벨업을 지금까지 해왔다.

2. 현재의 상상의 질서인 자본주의가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인류에게 모든 재화와 건강과 평화가 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3. 행복을 위한 또 다른 사회학적 시도가 올 수도, 아니면 생물학적 시도가 올 수도?

4. 근데 난 모르겠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난 정말로 잘 모르겠다.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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