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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geun Jul 27. 2019

당연하지만 하고 싶지는 않아

환경 & 예술 & 건강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베를린에는 비건이 참 많다. 어딜 가든 비건을 위한 음식이 메뉴판에 꼭 있으며, 대학교 학식에서조차 비건 메뉴는 필수적으로 구비되어있다. 이외에도 베를린에서는 금요일마다 열리는 환경보호운동 “Friday For Future”가 활성화되어 있기도 하고, 비닐봉지도 비싸게 팔기에 항상 장바구니도 가지고 다녀야 한다. 솔직히 한국에서 넷상으로 접했던 힙하거나 젊은 예술가의 도시 이미지보다는 “환경 보호”의 도시로 느껴질 때가 더 많았다.


헬스장가다가 봤던 비건 홍보 문구. 그런데 맞는 말 아니야 이거?



환경보호 꼭 해야 하는 거야?



솔직하게 말하자면 불편했다. 물론 환경보호야 정말 좋은 말이고 필요한 것은 알겠지만, 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왜 이리 집착할까 싶기도 했다. 조금 고지식스러워 보였다고나 할까.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냥 말로만 안다는 것이었고 진심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했던 “green trend(녹색 트렌드)” 발표에서도 기업과 환경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기업의 이익을 선택하겠다는 답변에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다. 환경이 중요한 것도 알겠지만,. 아니 이렇게 나를 죽을 정도로 달려들만한 문제인가 싶기도 했다.




예술도 이러했다. 유럽에 교환학생을 오면서 박물관에 가는 경우가 꽤 생기는데, 교과서에서 봤었던 유명한 작품들을 제외하면 뭐가 좋은지 하나도 몰랐었다. 오히려 힘들게 박물관까지 가는 게 시간낭비 같기도 하였다. “아 어차피 아무 감흥이 없을 텐데... 굳이 시간과 돈을?”




하늘이 이런 나를 보고 너무 답답했나 보다. 최근 파리에서 보았던 팔레 드 도쿄의 충격적인 전시는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예술의 한 부분을 느끼게 했다. 정확히 말로는 표현을 하지 못하겠지만, 이제 예술에 진심으로 관심이 생겼다고, 의무감만으로 전시에 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포스팅에). 예술에서 첫 발자국을 뗀 것 같아 너무나도 기쁜 순간이었다.



팔랭 드 도쿄



남들이 다 당연하다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거야. 나는 진심으로 느끼지 못했을 뿐이고




내게는 여태껏 예술과 환경 보호는 같은 부류였다. 둘 다 “아 당연하지, 필요한 거야! 그런데 난 어려워서/귀찮아서 잘 모르겠어. 나중에 시간 나면 하지 뭐” 그 정도의 명사들이었다. 그러다 이제야 예술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흥미가 생긴 지금, 예술은 정말 필요한 것이라는 걸 느꼈을뿐더러, 환경보호도 우리 삶에  진심으로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이 든다.




누구보다 환경보호에 열성이던 베를린 사람들은 이미 이런 각성의 순간이 한 번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이들을 비웃는 하찮은 사람에 불과했었고...




독일 친구의 말을 빌려보자면, 요즘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지역이 이상 기후를 보이며 40도를 넘기는데 과거에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고 한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필요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정도의 온도가 되었으니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당연한 것을 잃었을 때
상실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번 겨울 즈음에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내 인생은 우울감으로 가득했다. 한평생 입원하지도 않아 무병장수 할 것이라고 믿었던 내 몸에 통제력을 잃었을 때, 인생이 여기에서 끝일 수도 있겠다는 불안한 생각이 매일 밤 나를 덮쳐왔다. 두 달간 원인도 모른 채 앓았던 내 몸은 어느 순간 갑자기 다시 괜찮아졌지만, 이때 깨달았다. 세상에서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을 가장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옆에 같이 있어주는 가족, 여자 친구, 건강, 친구들 등등. 클리셰지만 옆에 있는 것들이 가장 중요했고 더 이상 잃기는 싫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당연하게 여긴 것들이 삶에서 도망가는 순간 정말 최악의 순간들이 찾아온다. 왜냐하면 대게 당연하게 여긴 것들은 삶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머리가 너무 아파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때 정말 삶은 절망적이었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환경 & 예술 & 건강은 당연하지만 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진심이 부족했던 것들이었고 사실 나에게만큼은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다. 이러한 단어를 듣게 되면, “아 정말 좋은 말이지! 근데 뭐 알아서 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 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최근 건강도 나빠져봤고, 예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긴 지금. 세상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것들은 이제야 나에게 의미가 생겼다. 그리고 앞으로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심으로 여기지 않는 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여기에 창업의 기회가 있지도 않을까. 재미있지 않아 보여도 알고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진심으로 매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번 파리 여행은 꽤나 소득이 있지 않나 싶다.




이 글은 파리 한인민박집과 영국 도서관에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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