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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geun Jun 21. 2019

진흙탕도 우아하게

그 남자가 살아가는 방법_우아한 세계


스포가 있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야?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취향 중 가장 으뜸을 물어보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하나에 몰입하지 못하는 성격일 때문일지도 모르죠. 다만 영화배우에서 만큼은 논외인데, 국내 배우로는 송강호 배우님 그리고 국외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정말 0.1초 만에 떠오릅니다.



특히 송강호 배우님이 나온 영화는 다 챙겨봤다고 자부했지만, 검색하다 보니 "우아한 세계"를 보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어쩌면 예전에는 한 번쯤 볼까 스쳐갔지만 한국 조폭 영화의 진부한 클리셰를 모두 담았을 것 같은, 그런 올드한 분위기의 포스터가 송강호 배우의 매력을 이겼었을지도 모릅니다.



보고 나서 아 왜 이 수작을 진작에 보지 않았을까 라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스토리가 전개되는 방식과 몰입 정도 그리고 전하는 메시지들 다 훌륭했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조폭 영화들과 달리 보기 편했습니다. 최근 송강호 배우님이 칸 영화제 상을 받으셨는데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분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철이 드는 그 남자



영화의 스토리는 강인구(송강호)가 현실을 받아들이며 철이 드는 과정과 함께 흘러갑니다. 강인구는 배운 것이 깡패 생활밖에 없는 삼류 시민이지만 자신의 가족과는 번듯한 주택에서 함께 살고 싶어 하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할까요.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은 강인구 자신이 깡패짓을 하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는 의식 치도 못하게 합니다. 강인구 자신은 진흙탕 같은 삶에 자신은 속해있지 않다고 생각하죠. 깡패는 단지 "잠깐" 가족을 위해서 하는 일 그뿐입니다.




이러한 강인구의 생각은 한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영화 초반 강제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하려고 잡아둔 사장이 도망치자 자신의 부하들은 도로 한 중간에 내러서 미친 듯이 쫓습니다. 풀밭에서 서로 부어 잡고 싸움하는 건 몸개그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송강호는 "아름답다. 아름다워"라고 말하며 밖에서 지켜봅니다. 저들과 나는 다른 세상에 속해있다는 무의식을 표출한 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대장이라 안 가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현실과 자신이 속해있다고 생각하는 준거집단이 다르면 사람은 본디 불행합니다. 하지만 강인구는 짜증내면서도 가족을 위해 꿋꿋이 노력해나갑니다. 다른 사람들은 욕하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요. 그러나 자신의 전부인 가족들마저 인구를 버리고자 하니 인구는 무너지고 맙니다. 아내는 "깡패짓 그만하지 않으면 이혼하겠다"라고 하며, 딸은 "아빠가 죽었으면 한다"라고까지 일기에 쓰죠. 여기에 엎친 격 덮친 격으로 조직 내부에서 배신이 일어나며 조직에서 손을 씻어야 하는 일들까지 벌어집니다.





일련의 사건 이후로 강인구는 자신의 현실을 깨달은 듯합니다. 풀숲에 들어가 상대방과 개싸움을 해야 하는 나 자신이 있는 곳은 우아한 곳이 아니라 진흙탕인 걸요. 이후에 일들이 잘 풀리고 나서 아내는 당연히 강인구가 손을 씻을 줄 압니다. 하지만 강인구는 친구의 조직에 다시 들어가며 깡패 생활을 유지하죠.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강인구가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가족이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진흙탕에 남아 미친 듯이 싸우고 가족이라도 우아한 세계에 살고 싶게 하는 것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지막 엔딩씬입니다. 라면을 먹으면서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강인구는 웃다가 슬퍼서 울어버리고 마는 그런, 송강호 씨의 연기가 너무나도 빛이 나던 순간입니다. 저는 어쩌면 그때 강인구가 자신과 가족은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결국 가족들은 우아한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웃플 수 있었다고 생각해봅니다. 자신은 번듯한 집에서 라면만 먹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요.



씁쓸하지만 이해되는



저는 이 영화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 점은 인구에게 많은 공감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씁쓸하지만 이해되는 현실적인 면이 가장 와 닿았거든요. 한국에서 우리는 항상 우아한 세계를 그리며 살아가라고 합니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좋은 대학에 가라 하고, 좋은 대학을 가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라고 강요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좋은 집을 사서 행복한 가정을 꾸미라고 합니다. 마치 삶에 하나의 피라미드를 집어넣고 더 위의 위치를 올라가게 강요하고 그곳이 우아한 세계라고 계속 귓속말을 합니다.



하지만 송강호는 우리나라 관점에서 보자면 실패한 사람입니다. 우아한 세계와 정반대의 위치에 서있지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방법대로 가족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자신은 실패했지만 남은 가족을 캐나다로 이민 보낸 것은 인구 자신의 희생으로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물론 조폭이나 범법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행위들은 단기적으로는 좋아도 절대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감독이 묻는 것은 만일 너는 이미 진흙탕이고 우아한 세계로 올라갈 수 없어. 그런데 네가 하는 것에 따라 다른 가족은 우아할 수도 아니면 똑같이 진흙탕에 살아갈 수도 있어. 어떻게 할래?라고 묻는 것 같습니다. 가족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풍토 상 대부분이 어쩔 수 없이 인구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인구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이란?




이 영화의 중심은 가족입니다. 보면서 아무래도 가족의 의미를 많이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 든 것이 최근 빚투 관련한 "가족 연좌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족 연좌제에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우리는 가족이기 이전에 하나의 개인이니깐요. 한 개인의 개별적인 행동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요즘 불거지는 빚투는 연예인과 같은 공인이 위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인들의 커리어가 부모님의 빚 문제나 다른 범법행위로 끝나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왜냐면 연예인이나 정치인과 같은 공인들의 핵심은 "이미지"이니깐요. 제가 피해자였어도 가해자의 자식이 연예인이나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건 차마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확실한 건 그 사람에게 잘못이 있는 건 아닙니다. 전 오히려 사회가 보듬어줘야 하는 피해자라고도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범법행위를 보면서 자랐던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인구의 딸에게 넌 깡패의 딸이야 라고 하면서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네가 유학 간 돈은 다 아버지가 깡패 생활하면서 번 돈이니깐 너도 범죄자야!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힘들어하고 하루도 떳떳하게 살아간 날이 없는데. 오히려 공감해주고 아픔을 보듬어줘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이야기가 좀 샌 것 같지만 그만큼 이 영화는 이야기가 인구 이외에도 가족을 중심으로 흘러가기에 많은 생각거리를 가져다줍니다.






우아한 세계는 너무나도 현실적이기에 지금 바로 옆사람에 앉아 있는 가족사일 것 같기도 합니다. 그만큼 편하게 볼 수 있고 배우분들의 연기도 훌륭하니 추천드릴만 합니다. 시간 날 때 꼭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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