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교환학생 경과 보고

적응 - 여행 - 위기 - 귀국

by woogeun



적응했다



어느새 교환학생을 온 지 3개월이 지났다. 기대와는 달랐지만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하며 지내고 있다. 독일에 들어온 직후에는 험난한 비자 발급 과정을 통과하기 바빴다. 형식적인 행정절차는 한국에서나 독일에서나 나를 짜증 나게 한다. 독일은 그 절차가 더 복잡하고 일반 동사무소조차 한 달 전에 예약하기 때문에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그래도 결국 끝냈고 얻은 교훈이라면 귀찮은 일일수록 더 빠르고 척척 해내자는 것이다. 나중에 첫 집 장만 후에도 이러겠지. 그때는 짜증을 덜 내야겠다.



비자 발급 뒤에는 순조로웠다. 처음에는 소매치기가 심하다고 하여 왠지 등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았고, 휴대폰도 꽉 쥐고 걸어 다녔다. 하지만 이젠 걸음걸이는 한결 가볍고 긴장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적응해나갔다. 그래도 카페나 도서관에서 짐을 놔두고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것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스타벅스가 아니면 대부분 카페에서 팔지 않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적응하고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다른 교환학생들과 여타 마찬가지로 여행을 떠났다. 정말 고맙게도 여자 친구가 와서 누구보다 행복하게 3주 동안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3주 여행 전에는 독일-오스트리아-폴란드로 동 대학교에서 온 친구들과 같이 다녔는데 그것 또한 좋은 경험이었다. 쾰른, 슈체친, 빈, 잘츠부르크, 할슈타트, 뮌헨, 파리, 인터라켄, 융프라우, 런던, 프라하. 사실 유럽은 처음이라 랜드마크를 보는 것만으로도 벅찼지만, 나 자신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인생에서 유럽 랜드마크 단계는 지나간 것 같다.



사실 sns에서 보는 것처럼 내게 여행은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매일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도 딱히 들지 않고. 에펠탑 같은 랜드마크를 제외하면 계속 보다 보면 그게 그것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물론 내가 공부를 덜하고 가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여행”이 “일상”을 뛰어넘어 주가 되는 삶은 내게 맞지 않는 듯하다.



일상에 찌들어서 가는 여행은 좋지만, 여행 베스트셀러에 나오는 1년 동안 세계 일주하고 그런 건 내게 맞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도 알아서 다행이다. 나중에 멀쩡히 회사 다니고 있는데 남들 다하는 세계일주 하고 싶다고 퇴사했는데 알고 보니 안 맞는 걸 그제야 알게 되면 얼마나 손해인가. 그래도 교환학생은 뭔가 왔으니 가야 하지 않겠냐는 한국인 특유의 본전 찾는 심정 + 베를린에서 딱히 할 게 없으니, 심심해서 한 번쯤 가보고 싶기도 하다. 한 번쯤이라는 게 참 재수 없고 배부른 말 같다. 그래도 그렇다.



그래서 최근에 파리와 런던 11박 12일 여행 관련된 모든 것을 다 예약했다. 여자친구와 돌아다니면서도 파리와 런던은 한 번으로는 충분히 느낄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다시 가보고 싶었다. 여행 기간이 꽤 돼서, 교환학생 와서 자소서를 뒤치닥 거리는 일상에 찌든 나에게 꽤나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이렇게 적응했고 여행을 다녀왔다.




위기가 찾아왔다



다녀와서는 스트레스가 폭발하는 3주였다. 오 이런 적이 있었나. 특히 전혀 예기치 못했던 것들이라 정도는 더욱 심했다. 최악이었던 것은 독일 공보험 사기(?)였다. EU 외에서 온 학생들은 비자를 받으려면 독일 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그리고 독일 보험은 공보험과 사보험으로 나뉘는데, 가격차이가 꽤 커서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사보험에 가입한다. (한 달 기준, 공보험 13만 원 / 사보험 5만 원) 보장 범위를 보면 공보험에 가입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재정상태가 받쳐주지 않아 사보험에 가입했다. 사보험에 가입하면 보장 범위가 비자 조건에 적합하다는 것을 공보험 회사에 가서 인증받아야 한다.



비자를 받으려면 이것 말고도 꽤나 많은 것들을 해야 하는데, 이건 난이도 easy 과정이라 나 또한 다른 친구들처럼 금방 끝나리라고 믿었다. 먼저 했던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 5~10분 정도 소요된다고 했지만 꽤나 복잡하게 흘러갔다. 직원 분은 신원 확인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나에게 어떤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 독일어로 되어 있기도 했고 딸랑 1장이기도 해서 직원이 적어준 거의 채워준 종이에 이메일과 서명만 했다. 그리고 다음에 알려줄 테니 다시 오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이게 미친 듯이 커질 일이라고 는 예상하지 못하고, “아 내가 다른 과정들이 술술 풀리더니 결국 하나에서 막히는군 ㅋ” 하면서 웃어넘겼다.



이게 재앙으로 다가온 건 서명한 후 약 2달이 지난 후였다. 기숙사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우편함 있었는데, 한 번도 가지 않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 그날은 메일을 확인하러 갔다. 그리고 그곳엔 자그마치 555유로를 내라는 청구서가 있었다. 80만 원 정도 되는 돈을 갑자기 내라니!!! 아 한 달 생활비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주식들을 팔아야 하는 건가? 장도 안 좋은데? 청구서 옆에는 독촉장까지 와있었다. 졸지에 불법체류자 같은 취급을 받는 느낌이었다. 잘못한 거 하나 없는데.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신원 확인이라면서 건네준 종이가 사실은 공보험 가입 신청서였다. 물론 나의 잘못이 없는 건 아니다. 서명하는 건데 알아보지 않고 그냥 공보험 직원이라는 것 하나 믿고 그분이 했던 말을 믿고 사인한 내 잘못이다. 구글 번역기라도 돌렸어야 했는데. 조심성이 없었다. 그래도 변명을 해보자면, 가입 신청이라고 하기에는 가격도, 보장 내역도 하나 듣지 못했고 그냥 너무나도 쉽게 끝났다. 한국에서 보험을 들려면 온갖 종이 뭉텅이에 사인해야 하고 전화도 오고 이메일도 오는데. 여기에서는 이메일도 안 오고 그냥 a4 1장에 내 싸인 하나면 계약 완료였다. 그리고 내가 사보험 계약이 이미 됐다는 증서를 들고 갔는데 거기서 공보험을 하나 더 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상식적으로!



내 잘못도 있지만 이대로 80만 원을 빼앗기기에는 주식 계좌에 너무 미안했다. 그렇게 종목 분석하고 나름 원칙도 만들면서 주식 투자를 하고 있는데 80만 원을 빼앗기면 이 투자했던 게 다 무슨 소용인가…. 과거에 고생했던 나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했다.



우선 독일 교환학생 버디에게 부탁해 고객센터에 전화해 진짜로 내가 가입해있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하필 그 날이 토요일이어서 사무실에 직접 찾아갈 수도 없고 그런 상황이었다. 그리고 교환 버디가 알려준 건 넌 가입되어 있고 해지도 못한다라는 것이었다. 아니 내가 가입되어 있기가 싫은데 이게 무슨 국민연금도 아니고 끔찍했다. 화요일까지 3일 동안 할 수 있는 게 하나 없으니 너무나도 답답했다. 우우우우우!!!



그리고 대망의 화요일이 되었고 군대처럼 나를 강제 가입시켜버린 사무실에 찾아갔다. 너무 화날 것 같고, 그러면 영어도 제대로 안 나올 것 같아서 친한 동생에게 부탁해 같이 갔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갔더니 나를 강매시킨 직원은 잠깐 휴가인 것 같았고, 1시간가량 기다려서 다른 직원이랑 겨우 얘기할 수 있었다. 그 직원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으며, 다른 직원에게 진술서 같은 서류만 보내줄 수 있다고 했다. 겨우겨우 흥분을 가라앉히고 친한 동생이 도와준 결과 사건을 자세히 얘기한 진술서가 완성되었고 나는 거기에 다시 서명을 했다. 이번에는 신중하게 서명을 했다.



결과는 2~3일 뒤에 알려준다고 했지만 그때까지 가슴이 벌렁벌렁했다. 이러다 한 번 더 여행 못 가고 교환 끝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만 들었다. 여행 더 이상 가기 싫다고 입이 마르고 닳도록 말하고 다녔지만, 막상 못 떠날 것 같다고 하니 슬펐다. 그러던 중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학교에서 공보험 돈 내라고 독촉장 왔다고 메일이 왔다. 아니 이 시 키들… 난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리고 문제가 있으면 학교 담당 공보험 직원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희망은 없어 보였지만 직원에게 거의 구걸하듯이 구구절절 적어서 메일을 보냈다. 제발... 550유로는 나에게 너무 큰돈이다. 제발 나를 구원해달라. 제발 제발.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이게 웬걸,,,



내 가입이 없어졌단다. 이제 돈 안내도 된단다. 나는 못 믿겠어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메일을 보냈고 그때도 대답은 예스였다!!! 세상에서 정말 너무 기뻤다. 이렇게 기뻤던 적이 언제였나 싶다. 교환을 오면서 운 좋게 장학금을 수령했는데 그 당시 액수가 700만 원이었는데도 이렇게 기쁘지는 않았는데. 역시 수업시간에 배운 인간의 행동경제학 그래프가 맞기는 맞나 보다. 사람은 손실을 더 두려워한다는 것.



물론 이때도 백 프로 안심된 것은 아니었다. 독일 행정이라면 언제든지 우편함에 응 너 돈 내야 돼 라고 메일이 올지 몰랐다. 그래서 뺀질나게 들락나락거렸고 겨우 이제 난 공보험에서 해방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오 할렐루야.



이외에도 이 기간에 이 사건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이 겹쳐 그것들이 내게 스트레스 폭탄을 안겼다. 여자친구가 보내준 택배는 DHL 창고에서 전혀 올 생각은 안 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었는데도, "왔었는데 네가 없었다"라는 변명만 늘어놓은 채 줄 생각을 안 했다. 결국 본사에 클레임을 넣으니 배송을 하고 싶은데 주소를 모르겠으니 너희 주소를 다시 한번 얘기해줄 수 있냐는 말만 돌아왔다. (그러면 너희들이 2번 찾아왔다는 얘기는 무엇임?) 독일 택배는 정말 이해를 못하겠다. 아니면 우리나라 택배 시장이 너무나도 선진국적인 것인가. 그래서 CJ대한통운 투자해볼까 리포트 뒤져보고 있다. (근데 좀 비싼 듯)



발표 도중 자기 파트이지만 "이 슬라이드는 너 담당 아니었어?"라고 말하는 팀원이 있는 무책임한 팀플도 겨우겨우 끝났다. 그렇고 여러 저러 스트레스받는 일들이 있었지만 사라졌고 다시 일상이 찾아왔다. 마음속으로 정해둔 시작점이 지나서 이제 자소서도 한 번씩 작성하고 그렇지만 더없이 행복하다. 위기가 지나서 일지도 모르지만, 오랜만에 일상이 쳇바퀴 굴러가듯 굴러가니 너무나도 행복했다.




다시 일상이다



그래도 이제는 행복해서 다행이다. 한때는 진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더운데 에어컨도 안 나오는 이 곳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곧 취업해야 하는데 뭐하러 교환을 왔을까 진지하게 후회하기도 했다. 그래도 와서 다행이다.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나 자신에 대해 더 고민할 수 있던 기간이었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돼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게 돼서 속이 후련하고 마음이 가볍다. 진짜!



지금까지 베를린에 있으면서 느낀 건 생각보다 한국이 살기 좋구나. 한국이 최선진국이고 자랑스러워야 할 일이구나.라고 느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서비스가 노력의 산물이었구나. “헬조선, 헬조선” 하지만 한국이라고 해서 절대 꿀릴게 하나 없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겠구나. 그렇다고 베를린이 안 좋은 도시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제부터는 한국에서의 삶을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한 달 반 정도 남았다. 전처럼 예기치 않은 일만 일어나지 않으면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을 것 같다. 가끔 취업 걱정이 목을 옥죄이지만 뭐. 한국에 있었어도 해야 했던 건데 뭐.



오랫동안 여행을 가지 않았더니 이번 파리-런던 여행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와서 처음 혼자 가는 여행인데 기대 반 설렘 반이다. 남은 한 달 반, 부디 행운과 함께였으면 좋겠다. 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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