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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geun Jul 25. 2019

그냥 심심해서 책 읽는다

갑자기 너드가 되었네?


학창 시절 책을 끼고 사는 학생은 아니었다. 읽은 권수로 다독상을 주던 초등학교 2학년 시절에 다른 친구들을 이겨보겠다는 승부욕으로 미친 듯이 책을 읽었던 때를 제외하면, 책은 내게 가까운 존재가 아니었다.



멋있어 보여서...



그러다 대학에 입학하고 한 선배를 만났다. 항상 과방에서 술 한 잔 걸치며 책을 읽고 글을 쓰시고 계셨던 분이었는데, 쓰신 글이 너무나도 재밌어 새내기들은 과방에서 둘러앉아 다 같이 돌려보고는 했다. 그저 선후배에 관한 글이거나 일상 얘기가 전부였는데, 읽어본 활자들 중에 가장 매력적이었다.




무엇이라도 흡수하고 싶었던 스무 살이었기에, 그 선배를 자연스레 따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형을 자주 관찰했는데 다른 선배들과 달랐던 건, 1) 술을 좀 더 마시고 2) 독서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 두 가지를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기 시작했었다.




술을 자주 마시는 습관을 따라 하는 건 당시 학기 학사경고까지 이어졌지만, 다행히 책을 읽는 습관은 학사경고를 상쇄하고도 남는 좋은 영향을 주었다. 처음에는 형에게 책 추천을 부탁하여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었는데, 당시에는 5 페이지 정도로 끝났지만 지금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알랭 드 보통인 건 우연이 아닌 듯하다..



시간 좀 때우려고...



맞지 않던 전공 때문에 학교를 바꾸었기에, 더 이상 그 선배님을 볼 기회는 없었다. 자연스레 책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들었고, 군대라는 인생 최대 숙제가 다가왔다. 어쩔 수 없이 견뎌내야 하는 것이기에, 시간이라도 빨리 갈 수 있게 나에게 도움이 될 숙제들을 만들었다. 첫 번째는 독서 100권이요, 두 번째는 운동 습관, 마지막은 전공 공부였다.




다행히 이 숙제들은 잘 끝내서 지금 나에게 가장 좋은 습관들을 가져다주었다. (물론 군대가 도움이 되었다는 건 절대 아니다. 그 안에서 내가 잘한 거지... 군대 안 갔으면 더 큰 성장을 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운이 좋았던 건 당시 맞선임이 독서광이어서 사무실에서 어느 정도의 독서는 묵인되었으며, 핸드폰이 당연히 사용 불가이던 시절이라 군생활의 괴로움과 슬픔을 독서와 운동으로 극복하려 했기에 목표는 32% 목표 초과인 132권을 끝으로 군생활을 마쳤다.




하지만 돌아보면 군대 시절에는 책을 진짜 “그냥” 읽는 시절이었다. 100권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그저 읽어나갈 시기였다. 읽으면서 필사나 밑줄 정도는 했지만, 생각이 부족했다. 100권을 부셔버릴 생각에 활자를 읽는 데 급급했고, 무슨 좋은 얘기가 나오면, ‘아 난 지금 군대에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 ㅅㅂㅅㅂ’라고 가끔 되뇌었던 것도 기억난다. 독서 후에 유연한 사고를 할 환경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런 시기가 있었기에 독서가 지금은 더 흥미로워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더 단단한 나를 위해...



제대한 후에는 실력에 비해 자만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여러 일을 겪으며 나 자신이 정말로 부족하단 걸 많이 느꼈다. 학교 공부를 하면서도, 인턴을 하면서도... 내 모든 것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삶을 대하는 태도도, 전공 공부 등등. 그리고 돌아보니 몇 권되지는 않았지만 읽었던 책들이 내 삶에 꽤 중요한 뿌리를 잡아주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그저 멋있어지거나 아니면 시간을 때우려고 보다는 단단한 나를 위해 읽었다.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최근 유튜브에 책 추천을 검색하는 나를 발견했다. 예전이었으면 농구나 게임 아니면 예능을 찾았을 나였는데, 5년 전이었으면 “으, 유튜브에서 책이나 찾아보고 완전 너드잖아 ㅋ”라고 말했을 것 같은데, 이런 나를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여기서 포인트는 무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다가 “그냥” 책을 찾았던 것이었다. 칸트 형님이 말한 ‘수단이 아니라 모든 것을 목적으로 대하라’가 실현되는 시절이었다. 이제 누군가가 쉬는 시간에 뭐해요라고 물어보면 ‘책 읽어요’라고 말해도 이제는 어색하지 않을 듯싶었다.



그냥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의 마지막 단계인 듯 싶다



정리하자면! 어렸을 때는 그저 멋있어지고 싶어서, 군대 때는 할 게 없어서, 다음에는 성장하기 위해서. 지금은 그냥 읽는다. 너드로 등극했다. 책 유튜버와 국제도서전을 검색하는 내가 어색하지 않고 행복했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던 분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읽지 않던 나에게는 신기할 따름이다




이런 경험을 미래의 자식이나 동생들과 나누고 싶어 기록하고 있다. 좋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지만, 책 읽기를 재밌어하는 친구들로 자라면 좋겠다.




책을 읽게 해 준, 스무 살 시절 멋있었던 선배에게, 폐쇄된 환경을 강제로 부여해준 군대에게(?), 외국에서도 국내 책을 읽게 해주는 e-book기업에게, 좋은 글을 써서 원 없이 나눠주는 작가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하다! 덕분에 행복을 느끼는 방법이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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