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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geun May 23. 2020

여의도에 봄이 오고 있을 때 즈음

점심시간에 몰래 맥주 한 잔


그냥 점심시간에 맥주   하다가 떠오른 생각이다.



원하던 투자를 업으로 삼게 되고, 알면 알수록 배울 점이 넘쳐나는 팀원 분들과 함께한 첫 신입사원 6개월이었다.  ‘운이 너무 좋은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분에 차게 행복했다. 월급으로 바라던 라이프스타일을 실현해 나가는 '소비잼'도 꽤나 달달했다.



하지만 어디에선가 갈증이 있었다. 이 정체 모를 갈증은 행복에 도취되려는 나를 자꾸만 방해했다. 수없이 고민을 했던 첫 커리어 패스에 무엇인가 허점이 있었던 건 아닌가 싶었다. 자기소개서와 면접만을 위해 나를 투자업에 세뇌시킨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더 이상 면접관의 기분을 살필 필요가 없으니 눈치 보지 않고 다시 고민했다.


왜 하필 투자일까?


투자는 남들이 모방하지 못할 예술이라 생각했다. 투자 과정을 간략히 보면, 처음 본 투자 대상을 공부하고 이에 대해 다방면으로 생각하며 인사이트를 도출하고, 이를 숫자로 변환한다. 여기에 인적 네트워크가 더해져 좋은 투자가 완성된다. 전략과 재무를 함께 버무리고 다른 이들과 연결되어 투자를 진행해나가는 건 복잡하면서고 흥분되는 일이다. 그러니깐 나는, 이 고려 요소들마다 각기 매력이 있는데 잘 섞이는 걸 보고 결국 예술과 같다고 생각했다. 대개 문과 출신 대학생들은 차별화를 위해 맹목적으로 자격증을 선택하고는 하는데, 난 오히려 이런 투자의 예술성이 앞으로 더 높은 진입 장벽이 될 거라 믿었다.



또한 투자는 무엇보다 사회에 중요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고 책에서 봤다).  투자는 돈의 흐름이자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세계가 나아가는 방향이다. 모든 업과 연결되어 있는 투자와 금융업은 누군가에게는 돈놀음이나 숫자 장난 혹은 도박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너무 중요해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산업이다.



제일 중요한 점! 현실적으로 금융권에서는 근로소득으로 꽤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고, 성과급 제도가 정착되어 있어 호봉제인 타 산업들과 달리 능력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또한 투자로 전문성을 살려 근로소득을 너머 사업소득까지 연결될 수 있었다. 소득에는 근로 / 투자 / 사업 소득이 있는데, 이 세 가지를 다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 같았다. 그리고 난 그냥 투자를 좋아했고, 열정보다 강한 차별점은 없기에 누구보다 더 잘할 수 있다 믿었다.



결국 아무 문제없이 투자는 여전히 좋았다. 모든 게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좋았다. 세상에 있는 모든 걸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투자업을 하게 되면 본디 세상에 있는 모든 걸 경험할 수 있으니 좋았다.



유에서 유가 아닌, 무에서 유를



투자가 모든 걸 연결하고 업그레이드 시켜준다는 건 한편으로 기존에 존재하던 것에만 영향력을 미친다는 걸 의미했다. 유에서 더 많은 유를 창출할 뿐, 무에서 유를 만들지는 못했다.



아 이게 내 갈증이었구나. 깨달은 순간 무척이나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밸류체인의 하단에 있는 기업들이 수직계열화를 하고 싶어 하듯이, 투자업을 하던 나도 마음 한 켠에는 창조활동을 하고 싶은 생각이 남아있었나 보다.



그래서 요즈음 기쁜 마음으로 이것저것 하며 지내고 있다. 테니스와 PT로 체력도 기르고 있고, 코딩과 미술 투자도 기웃거리고 있다. 독서모임도 다시 시작했고. 아직 열정을 쏟아낼 무언가를 찾지는 못했지만 내가 왜 한편으로는 공허한지를 알았기에 이대로 시도하며 당분간 지내면 될 듯하다. 행복하고,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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