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geun Jan 21. 2019

지원동기가 삶의 목적으로

#0. Prologue: 퀀텀 리프의 시작
#1. 지원동기가 삶의 목적으로
#2. Reality : 월급쟁이의 현실
#3. 사모펀드의 투자
#4. Intern : 대학생과 직장인 그 중간 (1)
#5. Intern : 대학생과 직장인 그 중간 (2)
#6. 연애와 일 Balance
#7. What Now?


전 이제 '왜?'라고 묻는 사람입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에요.
이전의 난, 왜라고 물으면 건방져보인다고 생각했다.



면접 후기: 울 뻔했다



시간은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인 6월 초로 돌아간다. 운이 좋게도 사모펀드 투자팀 인턴 서류전형에 합격했었다. 날아갈 것만 같았던 난 정장도 사고 포마드로 머리를 가지런히 넘겼다. 이미 합격한 듯한 기분이었고 의기양양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면접이 끝나고 이러한 건방진 태도는 그 후로 볼 수 없었다. 면접이 끝나고 친구들에게 들려준 후기는 이러했다. "울 뻔했어 나..."

자신감만은 디카프리오였다


당시 상황은 이러했다. 인터뷰 도중에 들어오신 A 직원님은 내게 물어봤다. "사모펀드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셨는데 신입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없으니 그전에는 어디에서 커리어를 쌓으시고 싶으신가요?" (매우 시니컬한 어투였다. 면접이 처음이었기에 일상생활에서 듣지 못한 공격적인 어조에서 100% 지고 들어갔다.)



"IBD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유는...  바로 다시 들어오는 대답, "그 이유 말고 진짜 왜 IBD에 가고 싶어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어조가 공격적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머리가 하얘졌고 나는 얼버무렸다.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민이 덜 된 답변이네요."

 이 말은 인생의 궤적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기회를 망쳤다



하지만 운이 정말 좋았다. 인턴직에 합격하였고 근무한 지 이제 6개월 정도 지났다. 지금 생각해도 사실 왜 뽑혔는지 알 수 없다. 경쟁 상대가 나보다 더 긴장했을 수도 있고, 직원분들이 그저 無근본인 사람을 키워보고픈 욕심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덕분에 정말 많은 것들이 변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인 선배님들에게 배운 일, 스킬들은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이보다 더 소중한 변화는 생각하는 방식과 스펙트럼의 확장에 있다. 끊임없이 '왜?'라고 고민하기 시작했으며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삶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이어졌다. 왜냐하면 점심을 먹을 때든, 잠시 휴식을 취할 때든, A 선배님께서 갑자기 내게 '왜?'라고 질문하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계속 물어보셨고 점심시간은 면접 단련의 시간이었다.)


 

직원분들의 질문을 대답하기 위해 생각하면 할수록 스펙트럼은 확장되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 일을 할까?', '이렇게 커리어를 쌓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처음 생각나는 건 돈이었고 또 이 질문은 돈의 의미 등의 논제로 이어졌다. 이후 나는 과연 행복이 돈으로만 이루어져 있는지도, 행복이 삶의 전부인지 까지도 고민하였다. 면접 이전의 나였더라면 구차하다고 고민하지도 않았을 '왜?'가 머리를 한동안 지배했다.



결국 A 선배님의 말 한마디는 삶의 목적까지 사유하는 나를 만들었다.


이전의 나는 그저 열심히만 살아가는 대학생이었을 뿐이다.


생각의 흐름



영화 '더 킹'을 보면 아무 이유 없이 그저 사회에서 성공의 길을 보장해주는 검사가 되는 조인성을 볼 수 있다. 사회적 소명감 없이 검사가 된 조인성은 별다른 목표가 없으니 너무나도 쉽게 유혹에 빠져들고 사건에 휘말린다. 보면서 양심의 가책을 많이 느꼈다. '나였어도 과연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을까?' 나 자신의 생각보다 남들의 시선을 더욱 의식하는 이전의 나는 분명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 목적 없이 남들이 원하는 길로만 살아왔던 나에게 큰 경종을 울린 영화였다.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더 킹(2016)



6개월 동안 고민을 한 끝에, 결국엔 삶의 목적을 어렴풋이나마 찾았고 의문은 이제 다시 커리어로 돌아왔다. 다만 이제는 '왜'가 아닌 '어떻게' 단계로 옮겨갔다. 글의 첫 말에 썼듯이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전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행동과 생각들이 머릿속에 들어오고 앞으로의 꿈은 뚜렷해져만 간다. 더없는 즐거움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다니던 피조물에 불과한 내가 드디어 생각을 시작한다.


이제 A 선배님이 물어본다면 적어도 내 나이 수준에 맞게는 '왜?'를 답할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Prologue: 퀀텀 리프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