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노트북을 짊어지고 나왔다.
늘 하던 루틴처럼 카페에 앉아 커피를 시키고, 노트북을 켰다.
아무 일 없는 듯, 자연스럽게.
누가 보면 꽤 멋진 작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내 손끝은 고요하다.
글은 써야 하고, 마음은 조금은 불안한데,
나는 습관처럼 유튜브를 먼저 연다.
아무 이유도 없다. 아니, 이유가 너무 많아서 문제다.
오늘은 헤드셋을 두고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심란해진다.
나는 글을 쓸 때 늘 음악을 듣는다.
차분한 피아노 선율이나 낙엽처럼 떨어지는 기타 소리,
그 조용한 감정의 결이 나의 문장 속에도 스며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음악이 없으면, 마음도 함께 막힌다.
물론, 카페 안에서도 음악은 흘러나온다.
사실 귀를 조금만 열면, 이곳의 공기도, 잔잔한 노랫말도 충분히 감정을 움직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핑계로 삼는다.
“내 루틴이 아니니까.”
내가 정한 방식이 아니니까, 오늘은 글이 안 써진다고.
이상하다.
언제부터 내가 그렇게 예민한 작가가 되었는지.
언제부터 글을 쓰는 데에 조건이 필요해졌는지.
고흐는 귀를 잃고도 그림을 그렸다는데,
헤밍웨이는 전쟁터에서도 썼다는데,
나는 고작 헤드셋 하나 없다고 멈춘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타박한다.
“너, 언제부터 그렇게 대단한 예술가였다고.”
그럼에도 나는 또 다른 핑계를 찾는다.
마음이 준비되지 않아서.
생각이 정리가 안 되어서.
지금 쓰면 별 게 안 나올 것 같아서.
그 수많은 ‘~해서’를 줄줄이 늘어놓으며,
나는 쓰지 않는 것을 정당화한다.
그렇게 하루가, 그렇게 또 한 페이지가 빈 채로 넘어간다.
그런데도 나는 노트북을 들고 나온다.
오늘도. 내일도.
글을 쓰지 않을 거면서도, 나는 이 무게를 지고 나온다.
마치 아직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조용한 외침처럼.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핑계’라는 건, ‘그래도’라는 의지의 또 다른 얼굴 아닐까.
오늘은 안 돼도, 내일은 쓰겠다는.
오늘은 엉망이어도, 그래도 나는 아직 여기 있다는.
누군가에겐 그게 게으름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게 내가 내 글과 나를 잇는 가장 인간적인 다리라는 걸.
결국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핑계를 주제로, 핑계를 둘러대며,
핑계처럼 흘러가는 오늘 하루를 조용히 적고 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아무것도 안 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조용히, 묵묵히, 아주 천천히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는 날.